밴에서 팔던 서퍼의 부츠, 어떻게 사계절 ‘잇템’ 됐을까 [언박싱프로]
호주 출신 창업자 美 해변 돌며 영업활동
미·호주 상표권분쟁 속 글로벌브랜드 부상
신세계인터, 2012년 국내 독점유통 계약
겨울 부츠→사계절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샌들·의류 등 완판, 매출 두자릿수 성장
Z세대 어그 부츠 유행, 남성고객층 확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트렌드 속에서 누군가는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릅니다. 소비자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일순간에 외면받기 일쑤입니다. ‘메가 브랜드’를 향해 고군분투하는 유통가의 속사정, ‘언박싱 프로’를 통해 들려드립니다.
2004년 겨울,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속 주인공들이 입고 쓰고 신는 모든 것이 유행으로 번지던 시절. 작품의 여주인공이었던 배우 임수정이 신었던 어그 부츠는 안방을 뛰쳐나와 거리를 점령했다.
복고 열풍이 다시 달아오른 최근 몇 년, 그때의 어그 부츠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젊은 세대가 어그부츠를 힙한 패션으로 인식하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블랙핑크 제니 등 인기 있는 셀럽이 착용한 제품이 입소문을 타며 품절 대란을 부르기도 했다.
최대 성수기인 겨울을 맞아 다시 거리 곳곳에는 어그 부츠를 신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어그가 따뜻한 나라, 호주에서 서퍼들이 신던 신발이었다는 것을 아는가?
![미국 어그 창립자 브라이언 스미스(맨왼쪽)와 그의 친구들 [브라이언 스미스 공식 홈페이지]](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9/ned/20251209113255682riwi.png)
회계 공부하던 호주인, 미국서 ‘UGG’ 창립
1970년대 후반, 호주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던 대학생 브라이언 스미스는 마음 한구석에 늘 답답함을 안고 있었다. 서핑과 음악, 명상에 끌렸지만, 현실은 숫자와 보고서로 채워지는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미스는 우연히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을 듣게 된다.
노래 가사를 따라 부르던 스미스는 그의 삶을 통째로 흔드는 순간을 마주한다. 오랜 시간을 들여 회계사가 되려고 애썼지만, 정작 본인은 그 길이 전혀 맞지 않다는 사실만 더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주변의 친구들은 각자의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데, 자신만 제자리에서 헤매고 있다는 현실이 뼛속까지 와닿았다.
스미스는 결국 회계사를 포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길을 택하기로 한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서퍼 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던 시기였다. 브라이언은 다음 트렌드를 캘리포니아에서 찾겠다는 기대감을 품고 호주를 떠난다.
캘리포니아에 온 지 3개월.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말리부로 서핑하러 온 그의 친구가 한 권의 서퍼 매거진을 건넸다. 스미스는 별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기다 한 장의 사진에서 손을 멈췄다. 벽난로 앞에 놓인 양가죽 부츠를 신은 인물의 다리 사진이었다.
스미스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확신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호주에서 흔히 신는 양가죽 부츠를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호주에서는 서퍼들이 차가운 바닷물에서 올라온 뒤 체온을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 양가죽 부츠를 즐겨 신었지만, 캘리포니아 서퍼들에게는 다소 낯선 문화였다. 그의 친구는 “미국은 날씨가 따뜻해 이런 부츠가 필요 없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스미스의 생각은 달랐다.
호주에서는 두 명 중 한 명이 양가죽 부츠를 신는 만큼, 제품 자체의 실용성과 편안함은 이미 검증돼 있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서퍼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었다. 양가죽 부츠를판매하는 경쟁자도 없었다. 가능성을 본 스미스는 호주에서 양털 부츠를 들여와 판매하기 시작했다. 어그 브랜드의 출발점이었다.
![어그 브랜드 소개 이미지 [브라이언 스미스 공식 홈페이지]](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9/ned/20251209113255952tsnc.png)
초기 시장 개척은 쉽지 않았다. 그는 양모 부츠 몇 켤레를 들고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 150여 개 매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제품이 팔릴 리 없다’며 판매를 거절했다. 여름용 슬리퍼나 반바지 옆에서 두꺼운 양털 부츠가 인기를 얻을 리 없었다.
그러던 중 스미스는 뉴욕에서 무역 박람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캘리포니아보다 추운 날씨에 익숙한 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부츠 세 켤레를 챙겨 박람회로 갔다. 하지만 3일 동안 아무도 스미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작은 가게를 돌아다니면서도, 박람회에서도 반응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부츠 500켤레를 샀지만, 첫 해 판매량은 고작 28켤레였다. 스미스의 방에는 400개가 넘는 부츠가 남아있었고, 이를 처분해야 했다.
부츠의 품질은 말할 것 없이 좋았다. 호주와 비슷한 캘리포니아의 기후도 희망적이었다. 하지만 스미스는 당시 미국인들이 양가죽에 대한 인식이 호주와 다르다는 걸 몰랐다. 호주인들은 양가죽이 거칠고 젖으면 세탁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미국인들은 양가죽이 덥고 땀만 난다고 생각했다. 스미스는 그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전략을 바꾼 스미스는 말리부, 다나 포인트 해변에서 자신의 밴에 부츠를 가득 채우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서핑할 때마다 밴 뒤를 바로 열고 직접 영업을 시작했다. 그는 ‘밴에서 부츠를 파는 남자’로 알려지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자 부츠를 구매하려는 고객이 줄을 서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후 어그 부츠는 남부 캘리포니아의 새로운 유행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고, 도매상들의 주문도 빠르게 늘었다.

미국 어그? 호주 어그?…로고에 담긴 진실
호주는 어그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UGG라고 써있는 로고를 보면 미세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가운데 알파벳 ‘G’가 큰 로고와, ‘UGG’ 알파벳 크기가 모두 똑같은 로고 2가지다. 호주 어그는 후자다. 가운데 ‘G’ 글자가 큰 로고의 어그가 바로 스미스가 만든 미국 브랜드다.
스미스는 1985년 미국에서 해당 브랜드의 상표를 등록한다. 어그의 성장세가 커지자 1995년 미국의 신발 회사인 데커스 아웃도어는 1500만 달러를 투자해 브랜드를 인수했다. 이후 어그는 겨울용 부츠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데커스 아웃도어는 1999년 ‘UGG’를 상표 등록해 브랜드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UGG 상표권을 둘러싸고 미국 어그와 호주의 한 어그업체가 상표권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2016년 어그를 만드는 호주 업체 ‘오스트레일리안 레더’는 웹사이트를 통해 미국 고객에게 어그 부츠 13켤레를 판매했는데, 데커스 아웃도어는 이에 대해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UGG가 양털 안감이 있는 부츠를 뜻하는 일반적인 명사인지, 미국 고객이 인식하는 브랜드(데커스 아웃도어) 이름인지를 두고 다퉜다. 프랑스의 샴페인이 다른 나라에서 상표로 등록될 수 없는 것처럼 호주의 양가죽 아이템 어그도 미국에서 상표로 등록될 수 없다는 취지였다. 결국 법원은 1과 2심에서 미국 어그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법원은 어그가 국제적인 브랜드가 된 것은 미국 업체의 노력 때문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기도 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공식 수입하는 미국 어그(왼쪽)와 어그 오스트레일리아(UGG Australia) 호주 어그 제품. 가운데 알파벳 G의 크기가 다르다. [각 브랜드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9/ned/20251209113256407gvxz.png)
어그, 사계절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
어그의 국내 사업은 2012년 신세계인터내셔날과 국내 독점 유통계약을 체결한 뒤부터 급성장했다. 이전까지는 겨울 시즌 제품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할 만큼 계절 의존도가 높았고, 대부분 상품이 양털 부츠에 집중됐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어그를 겨울 양털 부츠 브랜드에서 사계절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재정비하고 계절별로 슬리퍼, 레인부츠, 샌들, 의류 등의 다양한 라인을 선보였다. 기존 시즌성으로 운영하던 매장도 상시 운영체제로 변환해 큰 성공을 거뒀다.
![어그가 선보인 여름 샌들 피크모드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9/ned/20251209113256682wqyx.jpg)
현재 여름을 겨냥한 어그 샌들은 여름철이 되면 완판돼 구매할 수 없는 인기 아이템으로 급부상했다. 어그 양털 부츠 또한 겨울이 되기도 전 신상이 입고되는 9~10월에 인기 사이즈가 빠르게 동나고 있다. 미리 장만해야 하는 아이템이 된 것이다.
이번 여름에는 밝은 색감과 독창적인 디자인을 앞세운 샌들 컬렉션이 큰 인기를 얻었다. 의류 역시 편안한 착용감과 다양한 캐주얼룩에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출시 초반에는 플리스, 조거 팬츠, 후디 등 캐주얼웨어가 인기였다. 최근에는 무스탕, 패딩 등 겉옷까지 성장세가 확대되는 추세다. 로고를 활용한 귀마개, 장갑, 모자 등 액세서리 역시 출시되는 족족 품절 대란을 일으키고 있다.
매출은 매년 호조세다. 어그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실적을 이끄는 핵심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실제 지난해 어그 브랜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1% 신장했다. 특히 의류(116%)와 남성 라인 매출(161%)이 크게 늘었다. 올해(1월1일~11월26일)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23.9% 늘면서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어그부츠의 귀환, Z세대가 이끈 제2의 전성기
어그는 더 이상 일시적 유행이 아닌 ‘어그’라는 카테고리를 새롭게 만들어냈을 만큼 패션 시장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고객들은 ‘이번 시즌에 어그가 유행일까’ 대신 ‘이번 시즌에는 어떤 어그가 유행일까’를 생각하고 제품을 구매한다.
유행의 중심에는 어그를 새롭고 트렌디한 스타일로 받아들인 Z세대가 있다. 어그는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적으로 양털 부츠 열풍을 일으켰으나 한동안 유행에서 비켜 있었다. 이후 2020년대 들어 Y2K 패션의 부상과 코로나19 이후 편안한 옷차림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재주목받기 시작했다. 해외 셀럽들이 일상생활에서 어그를 착용한 모습이 잇따라 공개되고, 국내 아이돌 역시 어그 부츠를 즐겨 신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관심은 빠르게 확산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채널을 중심으로 노출이 늘자, 국내 소비자 인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3040세대에게는 익숙한 겨울 신발이던 어그가 1020세대에게는 새롭고 트렌디한 스타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젊은 층의 관심이 커지면서 대표 제품들이 다시 주목받았고 최근 몇 년간 매출도 뚜렷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1020세대를 겨냥한 디지털 마케팅도 재유행에 힘을 실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2022년 당시 인기를 끌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와 협업해 양털 부츠, 슬리퍼, 트레이닝 수트 등 아바타용 어그 아이템을 선보였는데 출시 직후 완판을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제페토 속 ‘어그 월드’를 현실 팝업스토어로 확장해 온오프라인 경험까지 연결하며 젊은 층의 관심을 더 끌어올렸다.
또 하나 최근 어그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남성 고객층의 확대다. 그동안 여성 신발 이미지가 강했던 어그가 트렌디한 디자인과 편안한 착용감을 앞세워 남성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시작한 것이다. 스트리트, 캐주얼 등 다양한 착장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스타일 특성이 2030 남성 고객을 중심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고 있다.
어그는 지난 9월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연준을 아시아·태평양(APAC) 지역 앰버서더로 선정하며 남성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특정 제품의 단기 모델이 아닌 정식 남성 앰버서더 기용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준이 착용한 노란색 ‘클래식 울트라 미니 웨더 하이브리드’는 캠페인 공개 직후 전 사이즈가 빠르게 품절됐다.
한때 서퍼들의 보온용 아이템이던 어그는 이제 남녀노소가 사계절 내내 즐겨 찾는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성장했다. 브라이언 스미스가 창업 초기부터 강조한 창의성, 독창성, 자유로운 감성은 오늘날 어그가 내세우는 ‘캘리포니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핵심으로 발전했다. 이는 제품 디자인과 소재 선택, 캠페인 기조 전반에 반영되고 있다.
전새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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