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사고 조사에서 학습 조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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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충남 천안 교량 건설 현장에서 거더(Girder) 붕괴로 4명이 사망했다.
학습하는 조직은 사고 사례와 RCA 결과를 본사, 다른 공장, 관련 부서 전체와 공유한다.
많은 조직이 안전 성과를 이야기할 때 "올해 사고 건수가 줄었다"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런 지표들은 사고가 나기 전에 조직이 안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신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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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사고 생존자의 증언은 뼈아프다. “배터리가 위험하다는 말만 들었지, 비상구가 어디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이 짧은 증언이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규정과 매뉴얼은 존재했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사회는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규정과 절차는 충분한데, 왜 사고는 줄지 않는가?” 이 질문은 서류상 완벽한 규정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절박한 경고다. 그리고 이 문제의 핵심에는 사고 조사 방식과 근본원인 분석(RCA, Root Cause Analysis)의 활용 방식이 자리한다.
근본원인 분석 - ‘누구 탓’이 아니라 ‘왜 그런 환경이었나’를 묻는 과정
많은 조직에서 사고 조사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 정리한 뒤 “원인은 부주의, 규정 위반”이라고 작성하고 끝난다. 하지만 실제 사고는 한 사람의 실수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여러 방어층이 동시에 무너지고, 여러 조건이 겹치면서 비극이 일어난다.
근본원인 분석의 핵심은 “누가 잘못했는가”보다 한 단계 더 들어가는 것이다. 왜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위험한 관행이 계속 반복되었는지, 왜 그 현장에서는 위험이 보이지 않았는지를 묻는다. 환경, 조건, 조직 구조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나 RCA를 열심히 수행하고도 그 결과가 실제 절차나 설비, 교육에 반영되지 않으면, 그 사고 조사는 결국 보고서로만 존재하는 분석에 머문다. 배운 것이 없는 조사가 되는 셈이다.
RCA에서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4가지 실천법
첫째, 맥락 이해가 출발점이다. 피해자를 탓하거나 “규정을 어겼다”는 사실만 강조해서는 사고의 뿌리를 뽑을 수 없다. 천안과 화성 사례를 보면, 단순히 한두 사람이 규정을 어겨서 생긴 사고가 아니다. 그 뒤에는 제대로 된 안전 교육의 부재, 언어 장벽, 현장 상황과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절차, 인력 부족으로 인한 위험한 관행, 촉박한 일정과 생산 압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좋은 RCA는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누가 잘못했나?”가 아니라 “왜 이런 행동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나?”를 묻고, “왜 규정을 안 지켰나?”가 아니라 “규정을 지키기 어렵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둘째, ‘주의하자’가 아니라 진짜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사고 후 대책으로 자주 등장하는 문구는 거의 비슷하다. “안전수칙 준수 철저”, “주의환기 및 교육 강화”, “매뉴얼 재교육 실시”, “개인보호구(PPE) 착용 지도 강화”. 이런 문장은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실제 현장을 바꾸지 못하는 선언문인 경우가 많다.
실제 변화를 만들려면 다음을 물어야 한다. 이 작업을 덜 위험하게 설계할 수는 없는가? 한국어가 서툰 작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 색, 다국어 안내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가? 지키기 어려운 절차는 아닌지, 현실적인 작업 절차로 다시 설계할 수는 없는가? 위험 상황이 생겼을 때 작업자가 조기에 알릴 수 있는 감지·경보 시스템이 있는가?
행동과 환경을 바꾸는 대책이 나와야만 RCA가 살아 있는 분석이 된다.
셋째, 조직 전체가 함께 배우는 구조를 만든다. 사고가 발생한 한 사업장만 교훈을 가져가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느 한 현장에서 드러난 문제는 같은 업종, 비슷한 공정에서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
학습하는 조직은 사고 사례와 RCA 결과를 본사, 다른 공장, 관련 부서 전체와 공유한다. 단순 공유를 넘어 “우리 현장에는 비슷한 위험이 없는가?”를 함께 점검한다. 사고 및 아차사고를 데이터베이스로 모아 패턴을 분석하고, 보고서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 작업자가 참여하는 토론과 워크숍을 운영한다.
이 과정이 쌓이면 조직은 하나의 사고를 계기로 여러 현장을 동시에 개선할 수 있다.
넷째, 선행지표로 성과를 본다. 많은 조직이 안전 성과를 이야기할 때 “올해 사고 건수가 줄었다”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사고 건수는 이미 일이 벌어진 뒤에 집계되는 결과 지표다. 조직이 정말로 달라지고 있는지는 행동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라는 선행지표를 통해 더 잘 드러난다.
다국어 안전교육 이수율, 비상구 위치와 대피 동선 인지율, 신규 입사자를 위한 온보딩 (Onboarding) 프로그램(신규 입사자가 새로운 조직에 빠르고 원활하게 적응하도록 돕는 교육 및 적응 프로그램)의 품질, 표준 작업 절차 준수율, 설비 이상을 조기 발견해 신고한 건수, 자발적 안전 제안 활동 증가 여부 등이 그것이다. 이런 지표들은 사고가 나기 전에 조직이 안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신호가 된다.
사고 조사의 진짜 목적은 ‘책임 추궁’이 아니라 ‘시스템 변화’다
천안과 화성 사고에서 피해자의 다수는 정보와 보호에서 소외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던 노동자들이었다. 이는 개인의 부주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 시스템의 설계와 운영이 실패했다는 신호다.
학습하는 조직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이런 행동이 생길 수밖에 없었나? 준비해둔 보호 장치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작동하지 못했나? 앞으로 같은 실수가 일어나도 이번에는 안전하게 끝나도록 설계를 바꿀 수 없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답을 토대로 설비, 절차, 교육, 문화까지 손대는 조직이 바로 학습 조직이다.
RCA는 보고서가 아니라 행동 변화를 위한 도구여야 한다
천안, 화성,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사고들은 같은 메시지를 반복한다. “서류는 점점 완벽해지는데, 사람들의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사고 조사와 RCA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 결과가 실제로 절차를 바꾸고, 설비를 개선하고, 교육을 현실적으로 만들고, 위험한 관행을 줄이고, 리더와 작업자의 판단 기준을 바꾸는 데 사용될 때 비로소 조직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진짜 학습 조직으로 성장한다.
사고를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 그러나 같은 유형의 사고를 반복하지 않는 것은 가능하다. 그 차이가 곧 생명과 안전, 그리고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임정훈 매경경영지원본부 산업안전 칼럼니스트/ 안전공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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