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악물고 ‘손해 연금’ 버틴다…‘조기 노령연금’ 첫 100만명 돌파

양호연 2025. 12. 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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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제도시행 37년 만에 처음
2025년 7월 기준 100만명 돌파
8월엔 100만5000명 넘어서
건보료 피부양자 탈락 공포가 ‘기폭제’
국민연금 노령연금 [연합뉴스]


국민연금을 정해진 시기보다 일찍 수령하는 ‘조기 노령연금’ 수급자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해당 제도가 도입된 지난 1988년 이후 처음 있는 현상이다.

연금을 조기 수령할 경우 평생 수령액이 깎이는데도 불구하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선택하는 이유는 당장 생계를 해결하려는 은퇴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다시 말해 은퇴 후 연금을 받기까지 소득 없이 지내야 하는 이른바 ‘소득 크레바스(소득 공백기)’를 견내내지 못하는 장년층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9일 국민연금공단의 최신국민연금 통계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조기노령연금 수급자는 100만717명을 기록했다. 사상 처음으로 100만명 선을 돌파한 것이다.

이런 증가세는 그대로 이어져 한 달 뒤인 8월에는 100만5912명으로 늘어났다.

성별로 보면 8월 기준 남성 수급자가 66만3509명, 여성 수급자가 34만2403명으로 남성이 두 배가량 많다. 가계의 주 소득원이었던 남성 가장들이 은퇴 후 소득 단절을 메우려고, 손해를 감수하고 조기 연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조기노령연금은 법정 지급 시기보다 1년에서 최대 5년까지 앞당겨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조기노령연금을 선택할 경우 1년 일찍 받을 때마다 연금액이 연 6%(월 0.5%)씩 깎인다. 따라서 5년을 당겨 받으면 원래 받을 연금의 70%밖에 받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조기노령연금은 ‘손해연금’으로 불린다. 그런데도 수급자가 100만 명을 넘었다는 것은 그만큼 당장의 현금 흐름이 절박한 은퇴자가 많다는 의미다.

조기노령연금 100만 명 돌파는 이미 그 전조증상이 2023년부터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공표통계 자료를 보면, 2023년에 조기 연금 신청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당시 1월부터 6월까지 상반기에만 신규 신청자가 6만3855명에 달해 불과 반년 만에 전년도(2022년) 1년 치 전체 신규 수급자 수(5만9314명)를 단번에 뛰어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뒤로 밀리면서 생긴 현상이다. 국민연금은 재정 안정을 위해 1998년 1차 연금 개혁 이후 수급 개시 연령을 단계적으로 늦춰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2023년에 수급 연령이 만 62세에서 63세로 한 살 늦춰지면서 1961년생들이 직격탄을 맞게 된 것.

1961년생들은 55세 무렵 은퇴 후 ‘이제 만 62세가 되었으니 연금을 탈 수 있겠지’라고 기대했으나 제도 변경으로 인해 갑자기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퇴직은 했는데 연금은 나오지 않는 이 1년의 ‘소득 절벽’을 버티지 못한 이들이 대거 조기 연금 신청 창구로 몰린 것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연구원의 당시 조사에 따르면 조기 연금 신청자의 상당수가 ‘생계비 마련’을 최우선 사유로 꼽았다.

생계비 부족뿐만 아니라 건강보험료 부담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연금 조기 수령을 선택한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22년 9월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가 개편되면서 피부양자 자격 요건이 강화됐다. 직장에 다니는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보료를 내지 않으려면 연 소득이 3400만원 이하여야 했으나, 이 기준이 2000만 원 이하로 대폭 낮아진 것이다. 즉, 공적연금을 포함한 월 소득이 약 167만원을 넘으면 피부양자 자격을 잃고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매달 건보료를 내야 한다.

이 때문에 은퇴자들 사이에선 “차라리 연금을 일찍 신청해서 매달 받는 액수를 줄이는 게 낫다”는 생각을 퍼지기 시작했다. 연금을 제때 다 받아서 소득 기준을 초과해 건보료를 내느니 차라리 손해를 보고 연금액을 깎아서라도 연간 수령액 2000만원 선을 넘지 않게 조절해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결국 2025년 현재 조기 연금 수급자 100만명 돌파라는 수치 뒤에는 은퇴 후 소득 공백을 메우려는 생계비 걱정과 함께 건보료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은퇴자들의 서글픈 셈법이 얽혀 있는 셈이다.

문제는 당장의 생활비와 건보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금을 앞당겨 받으면 죽을 때까지 감액된 연금을 받아야 한다. 연금액이 최대 30%까지 줄어든다는 것은 노후 빈곤이 그만큼 심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법정 정년(60세)과 연금 수급 개시 연령(현재 63세, 향후 65세) 간의 불일치를 해소하고, 은퇴 후 재취업 시장 활성화 등 소득 크레바스를 메울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양호연 기자 hy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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