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종업계지만 쿠팡 지독해”···미국기업이라 규제 어렵다?[점선면]
규제 미비한 사이 소비자들은 피해 노출
윤 정부 땐 자율규제, 미국은 입법에 경고

“저도 유사 직종이지만 쿠팡의 회원 탈퇴를 방지하는 절차가 너무 지독하고 복잡하더라구요. ‘다크패턴’도 그냥 쓰입니다.”(지난 3일 점선면 독자님)
쿠팡 사태 직후 활성 이용자 수가 지난 1일 1798만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는 통계(모바일인덱스)가 나왔습니다. 사상 초유의 3370만명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겪고, 20만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서는 상황에서 오히려 이용자가 늘었다는 건데요.
이에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탈퇴하기 위해 접속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실제로 점선면이 지난 7일까지 네이버 데이터랩에서 ‘쿠팡 탈퇴’와 ‘쿠팡 가입’ 일간 키워드 검색량을 비교한 결과 탈퇴 검색량은 지난 3일, 집계가 시작된 2016년 이래 최대치를 찍었습니다. 같은 날 가입 검색량은 탈퇴의 0.4% 수준에 불과했고요.
탈퇴 검색이 많은 이유로, 소비자들의 탈퇴를 어렵게 만드는 다크패턴(이용자의 선택을 왜곡하는 웹디자인)도 지목됩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가 소비자 권리 침해 여부 조사에 나설 정도인데요. 최근 플랫폼 기업들이 급격히 성장하는 와중 제도 정비는 더뎌 이처럼 소비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9일) 점선면은 쿠팡 사태를 계기로 어떤 규제 공백들이 드러났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

점(사실들): 구독 모델로 급속 성장한 플랫폼 기업
플랫폼 기업은 웹사이트·앱 등 온라인상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수익을 창출하는 회사를 말합니다. 시·공간 제약이 적은 온라인 특성상 소비자를 잡아둘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한데요.
한국 시장에서 크게 성공한 건 ‘구독 모델’입니다. 한 번 익숙해지면 이탈이 적은 ‘락인 효과(Lock-in)’를 노린 거죠. 코로나19 시기 쿠팡·넷플릭스·유튜브(구글)·배달의민족 등 대기업들은 독자적인 콘텐츠와 서비스, 가격 경쟁력 등을 기반으로 성장해 구독 모델을 정착시켰습니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서울시민 95.9%가 구독서비스를 이용 중이고, 월평균 지출은 4만원을 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선(맥락들): 소비자, 피해에 무방비 노출
문제는 그동안 소비자 보호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피해 사례가 다크패턴입니다. 지난 2월부터 5개월간 다크패턴 의심 사례를 점검한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45건의 불공정 행위가 적발됐는데요. 복잡한 탈퇴뿐 아니라 구독 갱신 및 가격 표시 숨기기 등이 해당합니다.
구독 플랫폼들은 다크패턴이나 ‘끼워팔기’로 소비자들이 가격 인상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플랫폼 기업들은 구독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든 2023년 말을 기점으로 잇달아 가격을 올렸는데요. 쿠팡은 지난해 와우멤버십 가격을 올리면서 소비자가 누를 수 있는 미동의 버튼을 작게 표시해 공정위 제재를 받았고요. 유튜브는 프리미엄 요금제에 뮤직을 끼워 판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아 자진 시정 조치를 했습니다.
이렇게 매출을 늘린 기업들이 보안 강화 등 책임을 다하는 데는 소홀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지난 7월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 분석에 따르면 1000만명 이상 대규모 고객을 관리하며 보안 필요성이 중대한 플랫폼 기업들이 오히려 관련 투자에 소극적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구독 계정은 반복적으로 정보가 업데이트된다는 점에서 해커들 입장에서는 표적으로 삼을 유인이 커 기업의 책임이 더욱 요구됩니다.
플랫폼 기업이 입점업체를 상대로 하는 ‘갑질’도 문제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0월 보고서에서 온라인 플랫폼이 창설한 거래 공간에서 절대적 지위를 가져 이익을 착취한다고 지적했는데요. 수수료·광고비 부담을 입점업체에 전가하거나 판매대금 정산을 지연하는 식입니다. 정산이 늦어질수록 플랫폼 기업의 이자수익은 느는데 입점업체는 손해를 보는 셈이죠.

면(관점들): 온플법 추진됐지만 윤 정부 폐기·미국은 경고
이에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부터 입법이 추진됐습니다. 소비자와 입점업체 권리 보호가 큰 두 축이었는데요. 소비자 보호, 특히 다크패턴 규제를 위한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은 지난해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번에 방미통위에서 쿠팡의 복잡한 탈퇴방식을 조사하는 근거가 된 시행령도 2022년 3월 방송통신위원회(방미통위 전신)에서 ‘이용자의 해지가 가입보다 불편하지 않도록’ 개정한 결과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선 입점업체 보호를 위해서는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제정을 추진했는데요. 윤석열 정부 들어 자율규제 기조로 바뀌면서 폐기됐습니다. 쿠팡은 최근 5년간 5대 그룹 수준으로 퇴직 공직자를 영입해 규제 회피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재명 정부 들어 달라질 거란 기대가 나왔는데요. 이번엔 미국이 가로막았습니다. 미국 하원이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7월 온플법이 미국 기업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며 반발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추가 관세를 운운하며 경고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지난달 14일 한·미 관세협상 결과 미국 기업을 차별하거나 불필요한 규제를 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온플법에 제동이 걸릴 거란 예상이 나왔습니다.
일단 정부·여당에선 미국 개입에 대한 우려만으로 온플법 논의를 중단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결정적으로 쿠팡 사태를 계기로 온플법과 소비자 피해를 방지할 입법에 힘이 실리게 됐고요. 정부는 정보보호 인증 강화, 인증 의무 부과를 골자로 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하고, 2015년 도입 이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방안도 강구하기로 했습니다. 일각에선 소송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모든 피해자에게 효력이 미치는 집단소송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옵니다.
쿠팡 등 플랫폼 기업들의 책임 있는 태도도 요구됩니다. 쿠팡은 지난 6월9일 유출 의심 정황에도 안일하게 대응하고, 유출을 ‘노출’로 공지해 피해 축소에 급급했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아직 피해 방지책이나 보상안도 내놓지 않았고요. 이명희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은 미국 국적을 이유로 논란이 터질 때마다 국회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한국 소비자를 얼마나 우습게 보면 이러겠나”라고 지적했는데요. 쿠팡은 탈퇴를 막는 데 골몰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을지, 그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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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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