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배우 호흡이 빚는 상상의 힘… 피로 물든 타지마할이 그려진다

이태훈 기자 2025. 12. 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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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
두 주역 이승주와 최재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 중인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에서, 살아남기 위해 2만명의 손목을 잘랐던 말단 병사 ‘휴마윤’(최재림·오른쪽)과 ‘바불’(이승주)은 친구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선택에 직면한다. /해븐프로덕션

인도 북부 아그라의 야무나 강변, 17세기 무굴 제국 황제 샤자한은 부인이 죽은 뒤 아내와 자신을 위한 영묘(靈廟) 타지마할을 세웠다. 2만여 명을 동원해 22년이 걸린 이슬람 예술의 불가사의한 걸작. 그 압도적 아름다움이 여러 설화를 낳았는데, 그중엔 완공 뒤 황제가 건축에 참여한 모든 예술가·기술자의 양손목을 자르고 두 눈을 파냈다는 ‘전설’도 있다. 궁극의 미(美)를 다시는 재현하지 못하도록.

/해븐프로덕션

그때 타지마할에, 황제의 명령에 따라 2만명의 손목을 잘라야 했던 두 친구가 있었다면?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 중인 2인극 ‘타지마할의 근위병’은 타지마할을 지키던 두 말단 병사가 지고(至高)의 아름다움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 우정과 충성심, 도덕과 생존 같은 충돌하는 가치들 사이에서 선택에 맞닥뜨리는 이야기다. 지난해 이호재·전무송·박정자·손숙 등이 출연한 손진책 연출의 ‘햄릿’에서 주역 햄릿을 맡았던 이승주가 상상력 충만하고 장난기 넘치는 ‘바불’을, 우리 뮤지컬의 대표 스타 배우 최재림이 규칙대로 살려고 애쓰는 바른생활 사나이 ‘휴마윤’을 맡았다. 미국 극작가 라지프 조셉의 희곡으로 2015년 뉴욕에서 초연됐다. 국내에선 2017년 초연에 이어 8년 만의 재연이다. 두 배우를 최근 만났다.

◇“대본을 읽는데 색깔이 보였다”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 '휴마윤' 최재림과 '바불' 이승주 배우. /해븐프로덕션

이 연극의 무대는 두 친구가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고 미래를 상상하는 공간인 동시에, 독점하고 싶은 절대적 미(美), 숨 막히는 권위, 피 말리는 비명과 공포로 가득한 세계이기도 하다.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이나 2만명의 손목을 자르는 참극을 시각적으로 재현하지 않는데도, 관객은 두 배우가 쌓아올리는 세심한 리듬과 긴장, 감정의 파동을 통해 낯선 세계를 체험한다. 최재림은 “눈으로 대본을 읽는데 색깔이 보이더라”고 했다. “피의 붉은색, 환한 노란색, 태양같이 타오르거나 얼음처럼 한없이 차가운 여러 색깔이 매 장면마다 바불과 휴마윤의 언어에서 보였어요. 수만 마리의 철새가 날아가고 새 떼 사이로 햇살이 비쳐 들어오는 이미지가 마치 그림 그리듯 펼쳐져요.” 이승주도 “실제 타지마할과 손목 자르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오히려 관객의 상상은 쪼그라들었을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선명해서 좋아요. 배우가 채우고 메우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전달하는 힘이 대단해요.”

◇장난기 넘치는 두 친구 ‘찰떡 호흡’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의 '휴마윤' 최재림. /해븐프로덕션

두 사람은 “연습 시간을 전후해 둘이 따로 많이 맞춰봤다. 띄어쓰기, 마침표, 대사의 ‘사이’를 집어넣으며 대화에 감정의 깊이를 입히는 과정이 즐거웠다”고 했다. 최재림은 “뮤지컬은 음악 등으로 시간이 95% 이상 동기화되니까 멀티 캐스팅이 가능하지만, 연극은 배우마다 템포와 리듬이 다 달라 변수가 많은 만큼 호흡이 중요하다”고 했다. 두 배우의 찰떡 호흡은 이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이다.

진지하고 무거운 역할을 많이 했던 이승주는 무대 위에서 장난기 넘치는 ‘바불’이 된다. 그는 “저 원래 코미디도 잘한다. 잘 웃길 수 있다”며 웃었다. “코미디는 결국 호흡이고, 그게 연극의 본질이기도 하니까요. 희극적 캐릭터를 잘 표현하는 게 즐거워요.” 뮤지컬이 익숙한 최재림은 “음악이 굉장히 절제돼 있는데, 2장에서 바불의 옷을 갈아입혀줄 때 음악이 나와 제일 편하다”며 웃었다. “나 대신 숨 쉬어주던 음악 없이 끊임없이 스스로 호흡을 하는 연기가 배우로서 큰 도전이 돼요. 저를 덮고 있던 껍질을 한 단계 깨는 경험입니다.”

◇미의 독점과 희생의 딜레마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의 '바불' 이승주. /해븐프로덕션

황제의 명령에 따라 2만명의 손목 4만개를 잘라야 했던 참혹한 날, 두 친구는 여기저기 핏물이 고인 지하실에서 눈을 뜬다. 휴마윤은 자른 손목을 태운 연기에 앞이 보이지 않고, 바불은 칼이 손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명령을 따랐지만, 두 친구의 비극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승주는 “무대에 오르며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끝없이 질문하게 되더라”고 했다. “인공지능이나 기계의 실용적 사고론 쓸모없는 무언가를 사람은 아름답다고 느끼잖아요. 아름다움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것의 최후 보루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 아름다움을 위해 무엇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 아닐까요.” 최재림은 “내겐 아름다움과 같은 고결한 정신적 가치와 권력이나 생존 같은 세속적 가치 사이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로 느껴진다”고 했다.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 /해븐프로덕션

미국 공연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 연극을 “부동산 가격 폭등 속에 높아만 가는 마천루 숲, 거기서 소외된 청년들과 보통 시민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최재림은 “무한 경쟁 속 탈락과 소외 대신 더뎌도 함께 가는 삶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고 했다. 이승주는 “정답은 없다. 커튼콜이 끝나면 계속 생각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질 것”이라고 했다.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 내년 1월 4일까지, 4만~7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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