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seas Trip] 우리가 몰도바에 대해 아는 것들...“우리는 변화한다, 고로 존재한다”

2025. 12. 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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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만 국가가 100만 난민 받아들여 UN에서 수상
매일 밤 호스텔 난민들에게서 듣는 전쟁 이야기
수도 키시나우에서 만난 공산국가의 흔적
세계 최대 와인 마을 크리코바의 120km 와이너리
미승인국가 트란스니스트리아 티라스폴
몰도바 트란스니스트리아 티라스폴 도심의 중앙 광장인 ‘수보로프 광장’
몰도바? 바로 떠올리기 어려운 곳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반 미디어에 자주 오르내렸던 주변국 중 한 곳인 몰도바. 국토 면적이 경상도 만한 작은 크기에 불과한 몰도바는 유명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특색 있는 여행지다. 수도인 키시나우를 시작으로 세계 최대 와인 마을 크리코바, 몰도바로부터 독립했지만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트란스니스트리아 티라스폴을 차례로 둘러봤다.

몰도바의 수도 | 키시나우

전쟁과 난민 그리고 소련의 흔적

(위)키시나우 대국민의회광장에 자리한 개선문 (아래)키시나우를 대표하는 교회인 탄생 대성당
몰도바(Moldova)의 지도상 위치에 대한 설명을 가장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몰디브(Maldives, 스리랑카 서남쪽 인도양 위에 있는 섬나라로 허니문 여행지로 인기 높은 곳)로 자칫 오해할 수 있으니. 사실 몰도바를 여행하는 동안 실제로 이런 오해가 몇 번 있었다. 세계 오지만 찾아 다니는 내가 난데없이 럭셔리한 허니문 여행지를 갔다면서 놀라워했던 내 주변 사람들은, 이를 통해 몰도바라는 국가의 존재와 위치까지 정확히 파악한 일화가 있다.

몰도바는 지리적으로 동유럽에 위치한 내륙 국가로, 루마니아 및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국토 면적은 경상도 만한 작은 크기에 불과하다. 수도인 키시나우(Chisinau)를 벗어나면 대부분 발전이 멈춘 시골지역으로,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듯 도시 간 빈부격차가 꽤 심각한 편이다.

탄생 대성당 내부 예배당
동쪽으로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몰도바는 이웃국가로서 전쟁의 여파가 여실히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몰도바의 난민 포용정책이다. 전체 인구가 250만 명에 불과한 몰도바는 2022년 2월 본격적인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국경을 넘어온 사람이 100만 명이 넘었으며, 2025년 현재 10만 명이 넘는 난민이 키시나우를 중심으로 몰도바 전역에 머무르고 있다.

정부 최고위층부터 일반 시민까지 난민을 환영하기 위한 몰도바 국민의 집단적 노력은 2024년 유엔난민기구(UNHCR) 난센 난민상 시상식에서 명예 표창을 받기에 이른다. 일례로, 키시나우에서 묵었던 호스텔에는 여행자의 수보다 그곳에 장기체류 중인 우크라이나 난민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난민을 통해 듣는 전쟁,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관한 이야기는 매일 밤 호스텔 공용공간을 가득 채웠다.

(좌)몰도바 정교회를 대표하는 치우플레아 수도원 (우)치우플레아 수도원 내부 예배당
‘전쟁’, ‘난민’ 등의 키워드 외에도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와 몰도바의 밀접성에는 ‘소련’이 따라붙는다. 세 나라 모두 소련 구성국에 속하는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몰도바가 독립한 이후 키시나우는 소련의 흔적과 더불어 현대적인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적 가치를 내세웠다.

키시나우의 많은 거리는 역사적 인물과 장소 또는 사건의 이름을 따서 개명되었고, 이는 공산주의적 주제에서 국가적 주제로 명칭을 바꾼 대대적인 변화였다. 또한 도시의 건축양식은 구 소련의 자취를 엿볼 수 있는 건축물들이 현재에도 많이 남아 있으며, 강철과 콘크리트, 유리로 지어진 현대적인 건물 또한 도심 곳곳에 자리해 있다.

19세기 중반 문을 연 중앙시장 입구
키시나우 도심의 핵심 랜드마크는 대성당 공원과 그 일대에 몰려 있다. 공원 한가운데 키시나우를 대표하는 교회 ‘탄생 대성당’이 있으며, 공원 입구에는 15세기 튀르키예 침략에 저항하여 유럽의 명성을 얻은 슈테판3세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남서쪽 대국민의회 광장에 1841년 건설된 개선문이 자리하며, 이탈리아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역사적, 건축적 기념물인 키시나우 시청 건물이 인근에 자리한다.
중앙시장 내부 치즈 가판대 전경
시청 건물을 지나 메인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걷다 보면 중앙시장이 등장한다. 19세기 중반에 문을 연 중앙시장은 예나 지금이나 도시의 상업 중심지로 인식된다. 다만, 그 풍경이 현대적이기보다 마치 소련 시절로 회귀한 것 같은 예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모습이다. 시장 건물 내부에는 치즈와 곡물, 채소, 잡화 등 각 품목에 따라 공간이 나뉘어 있는데, 특히 치즈를 판매하는 공간은 그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코를 찌르는 치즈 특유의 짠내와 시큼함이 상상을 초월한다.

한데 고약한 향과 달리 문제는 한번 맛을 보면 치즈의 신선한 맛에 절로 지갑을 열게 된다는 것. 갓 구운 빵에 치즈를 풍성히 올려 맛을 보면 몰도바가 유럽 대륙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혀가 먼저 알아챈다. 키시나우에 머무르는 동안 더 많이, 더 열심히 치즈를 먹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스럽다.

와인 마을 | 크리코바

지하 터널에 형성된 거대한 와인 저장고

(좌)크리코바 와이너리 외부 전경 (우)크리코바 와이너리의 스파클링 와인 생산 시설 전경
몰도바 하면 와인이 빠질 수 없다. 5,000년이 넘는 긴 와인 제조 역사를 가지고 있는 몰도바는 그리스와 로마의 영향을 받아 와인 산업을 성장시켰다. 중세 시대 몰도바의 와인 제조는 유럽대륙에서 주요 생산국으로 손꼽혔으며, 유럽은 물론 중동 국가들과 긴밀한 무역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날로 번성하던 몰도바의 와인 산업은 20세기 들어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여러 곳의 포도원과 와인 제조지에 크나큰 피해를 입었다. 파괴된 포도원의 재건은 소련 통치 기간인 1950년대 시작되었고, 이후 소련 통치 하에 품질보다는 양을 우선시하는 대량 생산에 입각한 시스템을 갖추며 몰도바는 소련 최대 와인 생산국으로 명성을 떨쳤다. 당시 소련 내 소비되는 와인의 약 60~70%를 공급했을 정도다.

프랑스 전통 방식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는 몰도바 최초의 와이너리, 크리코바에는 100년 이상 된 빈티지 와인 저장고가 있다.
그러나 1991년 소련 해체와 맞물려 몰도바의 와인 생산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더욱이 2000년대 초 러시아와의 외교적 갈등은 금수조치로 번졌고, 러시아 시장을 상실한 몰도바의 와인 산업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이러한 러시아와의 갈등은 결과적으로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현대화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유럽국가를 상대로 한 몰도바 와인 산업에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온 배경이 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몰도바 와인이 품고 있던 고품질 와인 생산자로서 명성을 되찾으며 서유럽 시장 및 그 외 지역으로의 수출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그 결과 몰도바 전국 각지에 위치한 260여 개의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와인의 60~70%가 유럽연합 국가로 수출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와인은 몰도바의 자랑이자, 국가의 성장과 성공을 상징한다.

총 120km에 달하는 와이너리 내부 통로. 그중 4~5km 정도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키시나우에서 북쪽으로 약 15km 떨어진 크리코바 마을에 위치한 와이너리를 찾았다. 마을의 이름을 따서 크리코바 와이너리(Cricova winery)라 불리는 이곳은 고품질의 와인 생산은 물론 거대한 지하세계에 미로처럼 나 있는 독특한 와인 저장고로 널리 알려진 장소다. 이곳의 와인 저장고는 몰도바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크리코바 마을에는 15세기 키시나우 건설을 위해 석회암을 채굴한 이래로 터널이 존재해 왔는데, 이 중 일부 구역이 1950년대 이곳 와이너리의 지하 와인 저장고로 개조되어 현재에 이른다.

지하 60~100m 아래에 총 120km에 달하는 미로 같은 도로가 뚫려 있고 그 위를 기차로 이동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기차가 달릴 때마다 살갗을 감싸는 지하세계의 찬 공기는 바깥의 여름 날씨를 순식간에 겨울로 바꾼다. 외투가 필요할 만큼 서늘하다 못해 싸늘한 기운이 감돌고 코끝에는 진한 포도주 향의 시큼함이 번진다. 현실을 벗어나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와이너리 투어라기보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판타지 놀이 같다.

(좌)스파클링 와인 숙성 공간 (우)빈티지 와인 코르크 마개를 덮은 곰팡이균
1952년부터 와인 생산이 시작된 크리코바 와이너리는 몰도바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제조 전통이 고스란히 보존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유명한 수도사 피에르 페리뇽의 방법인 ‘메토드 트라디시오넬(Méthode Traditionnele: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는 프랑스 전통 방식)’에 따라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는 몰도바 최초의 와이너리다. 병입 후 2차 발효를 거쳐 최소 3년간 숙성하는 것이 맛의 핵심.

이곳의 클래식 스파클링 와인 총 생산량은 연간 100만 개가 넘는다. 전통적인 스파클링 와인의 맛을 내기 위해 오랜 시간, 느린 생산 과정을 거치는 것을 철칙으로 여긴다고 하는데, 지하 90m 깊이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수작업 생산 과정이 맛의 자부심을 지킨다. 지하세계에서 맛본 이곳의 스파클링 와인은 몰도바 여행을 기억하는 최고의 순간 중 하나다.

(위로부터)영광의 기념관 외부에 전시된 제2차 세계대전에 사용된 소련의 T-34 탱크, 빈티지 소련 기념품으로 장식된 티라스폴 대표 레스토랑인 ‘칸티나 우르스’ 전경
다른 세계 | 트란스니스트리아 티라스폴

존재하지 않는 공산주의 국가의 얼굴

몰도바인 듯, 몰도바가 아닌, 몰도바 같은 국가, 바로 트란스니스트리아(Transnistria)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사실상 몰도바로부터 독립했지만 몰도바 정부는 공식적으로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몰도바 법률상 여전히 몰도바의 영토에 속해 있는 데다 국제적으로도 독립국가로 인정받지 못해 ‘미승인 국가’로 인식된다.

키시나우 도심 버스 터미널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인 티라스폴(Tiraspol)을 오가는 미니밴이 상시 운행된다. 앙숙관계에 놓인 두 국가의 상황과는 별개로 도시 간 이동은 위험이 도사린다거나 여러 대의 장갑차가 난무한 풍경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좌)트란스니스트리아 국경 검문소 (우)트란스니스트리아 화폐(上) 몰도바 화폐(下)
다만, 한 가지 예상했던 대로 트란스니스트리아 국경에 도착하자 검문소를 지키고 있는 군인들에 의해 여권검사가 이뤄지고 방문목적 등의 간단한 인터뷰가 진행되며 다소 긴장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키시나우에서 티라스폴까지 약 70km 거리, 미니밴을 타고 2시간가량 이동해 도착한 그곳은 예상과 달리 몰도바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 다른 세계로 여행자를 맞았다. 일단, 국가 통화도 다르다. 트란스니스트리아 화폐의 공식 명칭은 프리드네스트로비아 루블, 약자로 ‘루블’이라 칭한다. 이와 함께 식당이나 상점, 마트 등을 이용할 때 트란스니스트리아 내에서 발행된 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하다는 안내를 들었다. 당일치기 여행이었지만 환전소 방문을 시작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티라스폴을 세운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동상이 도심 광장에 위치해 있다.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오지를 많이 돌아다녀봤지만 티라스폴은 오지의 개념을 넘어서 눈 깜짝할 새 100년 전 과거의 어느 한 시점으로 돌아간 기분을 선사했다. 그 시대를 살았던 경험이 전무하기에 TV나 영화에서 봤을 법한 공산주의 시대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매우 특별하고 진귀한 경험이다.

현대에도 100년 전 시대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 중 하나, 바로 트란스니스트리아가 가진 관광지로서의 특장점이 아닐까 싶다.

티라스폴 도심의 중앙 광장인 ‘수보로프 광장’
그중 티라스폴 도심의 중앙 광장인 ‘수보로프 광장’은 공산주의 시대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눈길을 끈다. 광장의 명칭은 티라스폴을 세운 알렉산드르 수보로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영광의 기념비, 트란스니스트리아 최고회의 건물과 궁전, 교회 등이 광장 주변을 에워싸고 자리한다.

또한 이 주변에 위치한 영광의 기념관에는 많은 구 소련 도시와 마찬가지로 탱크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소련의 권력을 상징하는 도구이자 오스만 제국의 확장을 멈췄다는 자부심의 표현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다.

(위)크리스마스 대성당 (아래)빈티지 소련 기념품으로 장식된 티라스폴 대표 레스토랑인 ‘칸티나 우르스’
티라스폴의 볼거리 대부분은 레닌 스트리트를 따라 걷다 보면 하나둘 등장한다. 광장을 지나 러시아 정교회 성당인 크리스마스 대성당을 둘러본 뒤 드네스트르강으로 향해 강 주변을 한참 동안 산책했다. 사막이나 산악지대가 아닌, 한 국가의 가장 큰 도시에서 게다가 그 중심에서 이토록 고립된 기분에 잠겨 깊은 황폐함에 몸서리 쳐본 적이 있었던가.

공항이나 항구도 없는, 독립국가지만 외국대사관조차 존재하지 않는 나라, 외부 세계와 단절된 독립국의 얼굴을 마주한 기분은 산책의 발걸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살아가는 것은 곧 존재하는 것, 독립국의 내일은 고립되지 않고 존재하기를 빌어본다.

[글과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05호(25.11.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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