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창준 칼럼] 보이지 않는 한국학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2025. 12. 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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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30만명 유학 세계 10대국 꿈
그러나 교육 현장은 여전히 열악
한국학 연구도 비슷… 겉만 화려
묵묵히 일하는 이들 조명 받아야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2025년도 벌써 연말에 접어들었다. 성남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학위논문 심사와 입학 전형이 한창 진행 중이다. 누군가는 졸업을 앞두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얼마 전에는 새로 들어올 학생을 뽑는 입학 전형이 치러졌다. 전형(銓衡)이라는 말은 ‘됨됨이나 재능 따위를 가려 뽑는다’는 뜻이다. 흥미롭게도, ‘전’(銓)과 ‘형’(衡) 모두 저울을 뜻한다. 저울을 두 번이나 겹쳐 쓴 셈인데 그만큼 사람을 평가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연구원에서 지내면서 늘 흥미롭게 여기는 점 하나는 외국인과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한 특별전형 지원자의 수가 내국인을 위한 일반전형 지원자 수를 웃돌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한국학을 공부하겠다는 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이곳으로 모인다. 특별전형에 응시한 외국인 지원자들을 만나다 보면 자주 놀란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건 한국을 향한 그들의 뜨거운 마음이다. 머나먼 타국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글을 쓰고, 연구를 하겠다는 이들의 각오는 때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반짝이는 재능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한국에 애정과 관심을 지니게 되었는지 들려줄 때면 나도 모르게 뿌듯함이 밀려온다. 소위 ‘국뽕’이라는 감정이랄까.(공부하기 어려운 시절에도 일반전형 학생들이 보여주는 전공 공부를 향한 애정에서도 놀란다는 말을 덧붙이자!)

하지만, 이내 다른 생각에 빠져든다. 이들이 여기까지 오는 길은 결코 쉬웠을 리 없다. 언어 하나를 제대로 배우는 데에도 수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반짝거림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했을까. 그 과정은 또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서 나는 이들이 가져온 추천서를 유심히 들여다보곤 한다.

대개 이들을 추천한 이들은 이들에게 직접 한국어를 가르친 교원들이다. 추천서 곳곳에선 학생에 대한 애정, 성실성에 대한 신뢰, 언어 능력에 대한 평가가 솔직하게 묻어난다. 추천서를 읽다 보면 낯선 땅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한국이라는 나라와 그 언어를 소개했을 교사·교원들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들의 노고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어쩌면 이 모든 과정의 첫 단추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과연 이들의 헌신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까.

요즘 한국학은 겉으로 볼 때는 매우 화려해 보인다. 유학생 30만, 세계 유학 10대국을 꿈꾼다는 뉴스도 보인다. 하지만 정작 한국학의 기반을 이루는 한국어 교육을 향한 관심과 조명은 부족하다. 그 교육의 현장은 여전히 열악하며 교육 노동은 ‘보이지 않는 일’로 취급되기도 한다. 최근 한국어 교육 노동자 이창용이 쓴 ‘한국어의 투쟁’(빨간소금, 2025)이라는 책에서 드러난 현실은 이 분야가 얼마나 제도적으로 방치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숨은 영웅들을 대접하지 않고 홀대하는 것은 ‘외화내빈’의 전형이다.

외국에서의 한국어 교육만이 아니라 사실 한국학 연구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몇몇 스타 연구자, 몇몇 성과 지표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 속에서 조용히 연구를 이어가거나 이런 연구의 구조를 뒷받침하게 해주는 수많은 이들은 가려진다. 학문이 자라는 토양은 화려함보다는 축적이, 경쟁보다는 공동체적 협력이,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이름 없는 헌신이 늘 중요했다. 순간의 반짝거림보다도 중요한 것은 질 좋은 학문적 생태계를 마련하는 일이다.

어쩌면 지금 한국학이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행사나 구호가 아니다. 묵묵히 일하는 이들의 이름이 조명받는 체계를 갖추는 일이다. 지속 가능한 고용,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제도, 세대 간 지식이 전승되는 구조, 그리고 서로의 연구를 존중하는 학술 문화. 그것이 한국학을 자연스레 세계 속의 학문으로 만드는 길이다. 무대 위의 환호 너머 무대 뒤편에서 묵묵히 헌신으로 버티는 이들이 있다. 언제까지 이들의 희생과 헌신에만 기댈 것인가. 우리는 그들이 계속 그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는가? 마음의 저울에 지금의 상황을 올려보자.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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