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일한 '인간극장' 외주제작 PD에 "프리랜서 아닌 노동자" 판결
법원, 노동자성 인정하며 외주제작사에 6000만원 지급 판결
"보고하고 지시받고 유기 업무, 의무 송년회도"…사측은 항소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인간극장'을 제작해 온 외주업체 프리랜서 PD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을 받았다. 법원은 회사가 A PD에게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9단독 김동현 판사는 지난 10월28일 '프리랜서' PD로 일해온 A씨가 B 외주제작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A씨는)는 근무기간 동안 피고(B제작사)에 대해 인적으로 종속된 근로자였음이 인정된다”며 원고 전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A씨는 2011년 3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약 12년 9개월 간 해당 업체에서 근무했다. 방송프로그램의 촬영과 편집 업무를 맡는 '계약직 연출 프로듀서' 위탁계약서를 작성한 프리랜서 신분이었지만, 판결문에 따르면 실제 업무 형태는 프리랜서와 달랐다.
A씨는 팀장 아래 총 14명의 제작진의 일부로 유기적으로 팀을 이뤄가며 일했다. 제작진은 팀장급 프로듀서 1명과 A씨를 포함한 연출 PD 4명, 작가 3명, 조연출 3명, 취재작가 3명으로 이뤄졌다. A씨를 대리한 손익곤 변호사(법무법인 인사이트)에 따르면 이들 중 팀장급 프로듀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프리랜서 신분이었다고 한다. 재판부는 제작진 팀 구성이 팀장 프로듀서의 권한 아래 이뤄졌고, A씨는 이에 따라야 했다고 밝혔다. 방송업계에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판단할 때 핵심 기준으로 논의되는 '유기적 협업'과 회사의 업무 지휘가 모두 드러난다고 지적한 셈이다.
재판부는 업무 시간과 장소도 회사 사정에 맞춰 정해졌다고 밝혔다. A씨는 팀장 프로듀서에게 제작 중인 프로그램 편집물의 업무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 편집물을 수정했다. 회사 회의실에서 열리는 전체회의엔 외부 촬영 등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모든 팀원이 참석했다. 팀별로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앞으로 작업 일정과 과제를 보고하는 회의였다. 재판부는 여기에 “PD가 임의로 해당 업체의 촬영 스케줄과 편집 스케줄을 바꿀 수 없었다”고 밝혔다. PD가 수행하는 업무에 필수 도구인 카메라, 영상편집 프로그램인 '파이널 컷 프로', 마이크, 현장용 노트북 등 업무 필수 장비도 모두 회사가 제공했다.
워크숍과 송년회 참석이 의무였던 점도 노동자성 판단에 반영됐다. 재판부는 “(회사가) 팀워크 고양을 위해 매년 워크숍과 송년회 등을 개최하고 그 참석을 의무화하였다”고 적시했다.
제작사 B사 측은 A씨가 사업자 등록을 하고, 사업소득세를 납부했다는 점을 들며 “도급계약을 체결한 프리랜서 신분이었을 뿐 근로자성이 없으므로 퇴직금 청구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사측이 추가 업무를 맡기며 별도 보수를 지급한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이들 사정에 대해 “A씨의 근로자성을 부정하기에 충분치 않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B사가 A씨에게 퇴직급 6000만 원과 미지급 기간의 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B사는 지난달 19일 항소장을 제출해, 사건은 2심으로 넘어가게 됐다.
5년여 전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가 '무늬만 프리랜서'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며 사망한 뒤, 법원에서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프리랜서 직군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방송사 등에 작품을 납품하는 외주제작사도 '무늬만 프리랜서' 구조가 만연한 업계로 꼽힌다.
일례로 KBS '생생정보'를 제작하는 외주제작사에서 11년간 프리랜서로 일한 또다른 PD는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에 퇴직금을 청구 진정에 나선 바 있다. 고용노동청은 해당 PD가 사업소득세를 내왔다는 점과 계약형식, '상당한 지휘감독을 했다고 볼 만한 것이 없다' 등을 이유로 들며 기각했다. 해당 PD를 대리한 샛별 노무사사무소가 입수한 이 사건 내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제작사 노무제공자 20명 중 경리 1명을 제외하고 PD·작가·조연출 등 19명 전원이 프리랜서 계약을 적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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