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에세이〉한강과 민주주의…역사와 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사회사

전남일보 2025. 12. 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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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호·서현호 감독의 '한강전(傳): 그녀의 일곱 인생'
김정숙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한상호·서현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한강전(傳): 그녀의 일곱 인생'. EBS 방송 캡처

광주독립영화관에서 지난 9월부터 매월 기획하는 시네라이브러리 특별영화상영전이 있다는 것을 가보고서야 알았다. 광주독립영화관은 ACC옆 중심지에 위치해 있음에도 늘 객석이 비어 있어 안타깝다. 필자로서는 자연스레 전주 독립영화관과 비교를 하게 된다. 전주의 독립영화관은 매우 활성화되어 있어 예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곳에 가면 타대학 교수들과 맞닥뜨리는 일이 많다. 자연스러운 문화적 공간이 되어주는 곳이다. 이런 비교열세라면 아무래도 홍보를 위해 지역신문‧방송들이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각설하고, 12월의 특별영화상영전은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 기념으로 '한강과 민주주의'를 기획하고 있었다.

어느덧 1주년이다. 2024년 10월 10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는 온 국민을 환호하게 했다. 특히, 광주사람들에게는 각별했다. 광주의 아픔을 직시한 《소년이 온다》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역사적 트라우마가 해소되지 않은 채 왜곡된 시선에 지친 광주사람들을 위무하고도 남음이 있는 쾌거였기에.  

46분짜리 다큐멘터리 〈한강전(傳): 그녀의 일곱 인생〉은 바로 1년 전인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한강 작가가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문학상을 받던 그날, EBS에서 기획방송되었던 프로그램이다.

한강의 대학시절을 잘 아는 유성호 한양대 교수와 소설가 김중혁은 잘 알려지지 않은 한강 작가의 소소한 뒷이야기를 풀어갔다. 한강의 소설에 담긴 시적 심미성은 그녀의 10년간의 시작(詩作) 활동이 기반이라는 견해를 덧붙였다. 영화감독 박찬욱은 "한국인들이 어떤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살고 있는지 이해된 것 같은 기분"이라 했다. 그리고 가수 잔나비의 최정훈, '범 내려온다' 안무로 유명한 김보람, 도슨트 정우철 들이 한강의 글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는지를 다각도로 조명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공인 음악, 미술, 춤으로부터 바라보는 한강의 작품세계를 공감하며 문화적 교환 또는 교호로써 공명해가고 있었다. 영화는 여기까지다.

무엇보다 대중이 그녀의 작품세계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스웨덴 한림원에서 한강을 수상자로 결정한 이유에 있었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처럼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그밖의 작품에서도 보여지는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심사평이 그러하다. 한강은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를 드러내며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선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노출하는 그녀는 고통에 대응하려는 듯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노정한다. 시적 산문체는 그녀만의 것인 동시에 번역하기 좋은 간결체라 세계인과 소통하는 데 걸림돌이 적은 편이다.

그녀의 수상소감에는, 부드러운 미소와 미소를 머금은 눈매,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남이 없는 듯한 그윽하면서도 깊은 눈빛 그리고 조근조근한 한마디 한마디에 독자들로 하여금 속속 스며들게 하는 흡인력이 있었다. "여덟 살 때의 어느날…"로부터 시작하여 "필연적으로 체온이 깃들어 있는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라 했다. 이 소감은 한 편의 문학작품과도 같은 감동으로 밀려왔으며 그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공감대로 작용했다. 

다큐멘터리 상영에 이어 '문학 시네 토크'가 이어졌다. '한강과 계엄령의 밤 이후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란 주제였는데, 꽤 흥미로웠다. 계엄령 선포에 이은 국회 본회의 소집과 "비상계엄 무효" 의결 그리고 탄핵에 이르기까지 국회 앞에 모여든 시민들은 매섭도록 추운 겨울을 광장에서 시위를 하며 보냈다. 시위 도중 시민들은 차가운 바닥에 앉아 한강 작가의 책을 읽는 진풍경을 자아내, 이른바 '광장독서'란 새로운 독서문화 풍토를 만들어냈다. 뿐만 아니라, 광주 동구를 위시한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소년이 온다》를 함께 읽는 '낭독독서'가 이루어졌는데, 이 역시 자연발생한 새로운 독서형태가 아닐 수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고취된 광주 5 18정신, 제주 4·3정신, 이에 배치되는 정권에 항거하는 시민의식의 부상은 이렇듯 역사를 바꾸고 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사회사라는 것이 12월 시네 토크의 주된 내용이었다.

사소한 정보도 있었다. 광주·전남지역의 역사가 담긴 구 전남일보, 구 전남매일 신문은 필름화하여 전남대나 조선대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그런데 이를 볼 수 있는 마이크로필름 리더기가 고장인 채 방치중이라 이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주제에 비해 사소했으나, 사건 중심 역사를 손쉽게 신문에서 찾을 거라 믿고 있던 필자에게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