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까지 차오른 진흙 속 시신 찾아"… 인니·스리랑카 홍수 사망자 1500명 육박
"물자 공급 난항 겪어 기아 위험 커져"
인니 정부, '재난 선포' 요구 묵묵부답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가 폭우와 홍수, 산사태로 전례 없는 재난을 맞고 있다. 사망자가 1,500명을 넘어선 가운데, 고립된 생존자들은 구조 손길이 닿지 않는 상황에서 물·식량을 스스로 조달하며 버티는 ‘생존 싸움’까지 이어가고 있다.
8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당국은 이달 초 수마트라섬을 강타한 사이클론 ‘디트와’로 전날 기준 921명이 숨지고 392명이 실종됐다고 공개했다. 10만 채 넘는 가옥이 파괴됐고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가장 피해가 큰 아체주(州) 타미앙 지역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산사태로 떠밀려온 통나무 잔해와 토사가 마을 전체를 뒤덮었다. 생존자 이브라힘 빈 우스만은 “이것은 홍수가 아니라 산에서 내려온 쓰나미였다”고 끔찍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무자키르 마나프 아체 주지사는 “타미앙은 마을 전체가 물에 휩쓸려 사라졌고, 이제 이름만 남았다”며 “구조팀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진흙 속에서 시신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이들도 또 다른 ‘생존을 위한 생존’에 내몰렸다. 구호물자 전달은 헬기에 의존할 정도로 열악한 데다, 농작물까지 피해를 입으면서 기아 위험이 커지고 있다.
타미앙 지역 이슬람 기숙학교 학생 디마스 피르만샤(14)는 “일주일 동안 갇혀 친구들과 홍수로 생긴 물을 끓여 마시며 버텼다”고 말했다. 무자키르 주지사는 “사람들이 홍수가 아닌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며 중앙정부에 긴급 지원을 호소했다. 로이터통신은 나무 잔해를 제치고 뒤집힌 차량을 지나 한 시간 만에야 지역 구호품 배급에 도착한 시민들도 있다고 전했다.

감염병 우려도 커진다. 인도네시아 보건부는 “위생 환경 악화로 재난 지역에서 설사와 발열, 근육통 등의 질병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긴급한 상황 속에서도 정부 대응은 더디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수마트라 지방정부는 자카르타 중앙정부에 국가비상사태 선포와 구조·구호 자금 추가 확보를 촉구했지만,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상황이 호전되고 있으며 현 조치로 충분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국가재난 선포가 해외 원조 의존과 정부의 위기 관리 능력 논란으로 이어지는 것을 피하려는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프라보워 대통령이 7일 아체주 주도 반다아체 피해 상황을 둘러보고 돌아가자 민심은 더욱 들끓었다. 주민들은 ‘아체 참사는 관광지가 아니다. 대통령의 산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 샤룰(35)은 AFP통신에 “공무원들이 지켜보기만 해서는 아무 소용 없다”며 재난 선포를 촉구했다.
한편 남아시아 섬나라 스리랑카에서도 사이클론 ‘디트와’로 627명이 숨지고 190명이 실종됐다. 7만 채 이상의 주택도 파손됐다. 현지 정부는 생존자에게 안전 지역 이주를 지원하기 위해 최대 1,000만 루피(약 4,870만 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아누라 디사나야케 스리랑카 대통령은 “국가 역사상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자연재해”라며 국제통화기금(IMF)에 예정된 29억 달러(약 4조2,800억 원) 규모의 6차 구제금융 지급을 연기하고 지원 금액 확대를 요청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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