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애초부터 공원? 처음엔 원각사 절터[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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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사진)이 금주구역으로 지정됐다.
서울 종로구는 공원 안팎을 지역 내 제1호 금주구역으로 지정했으며, 내년 4월부터는 공원에서의 음주 행위에 과태료가 부과될 예정이다.
대한제국 정부가 도성 안에 근대식 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하며 원각사 터를 선택한 것이 출발점이다.
현재 탑골공원 자리에는 조선 시대 원각사(圓覺寺)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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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사진)이 금주구역으로 지정됐다. 서울 종로구는 공원 안팎을 지역 내 제1호 금주구역으로 지정했으며, 내년 4월부터는 공원에서의 음주 행위에 과태료가 부과될 예정이다.
탑골공원은 근대 개화기에는 ‘파고다공원’으로 불렸다. 대한제국 정부가 도성 안에 근대식 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하며 원각사 터를 선택한 것이 출발점이다. 이후 공원에는 서구식 산책로, 분수, 정자 등이 들어섰고, 공원 중앙의 석탑을 본 외국인들이 익숙한 불교 사원 양식인 ‘파고다(Pagoda)’라 부르면서 이 명칭이 그대로 공원의 이름이 됐다.
1919년 3월 1일, 파고다공원은 3·1 독립선언이 울려 퍼진 역사적 현장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공원은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한국 근대사의 상징이자 ‘독립 정신의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광복 이후 ‘파고다공원’은 ‘탑골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는 조선 후기부터 주민들이 사용해온 토박이 지명인 ‘탑골(塔·골짜기)’을 되찾은 것으로, 공원 중심에 서 있는 원각사 석탑에서 유래한 한국식 명칭이다.
탑골공원은 처음부터 공원이었을까? 오늘날 우리는 탑골공원을 도심 속 휴식 공간으로 여기지만, 이곳은 애초부터 공원으로 조성된 장소가 아니었다. 그 시작은 사찰이었고, 정확히는 조선 시대 불교 유적의 집합지였다.
현재 탑골공원 자리에는 조선 시대 원각사(圓覺寺)가 있었다. 세조 때 창건된 사찰로, 오늘날 공원 한가운데에 남아 있는 원각사지 10층석탑(국보 제2호)이 그 흔적이다. 이 석탑은 조선 전기 불교 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지만, 당시에는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라 왕실의 후원으로 추진된 대규모 불교 사업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억불정책과 도성 내 사찰 규제로 원각사는 점차 쇠퇴했고 결국 폐사됐다. 절이 사라진 뒤에는 석탑만이 남았고, 주변은 오랫동안 빈터로 남아 있었다. 이후 탑골공원은 근대 개화 정책과 독립운동의 무대를 거쳐 오늘날의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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