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빠진 명령 거부권,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이오성 기자 2025. 12. 8.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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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 상관의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법률 개정안이 만들어진다. 국가공무원법상 복종의 의무도 폐지된다. 그러나 ‘위법한 행위를 저지른 군인’에 대한 처벌이 빠졌다.
트럼프 1기 당시 대통령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했던 마크 밀리 전 미군 합참의장. ⓒAP Photo

2020년 5월 백인 경찰관의 가혹 행위로 숨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직후 미국 전역은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항의 시위로 들끓었다. 시위대가 백악관 인근까지 점령하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 투입을 명령했다. 그러나 당시 마크 밀리 미군 합참의장은 이 명령을 거부했다. 밀리 합참의장은 “미군의 핵심 임무는 대통령 지시에 맹종하는 것이 아니라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종교, 언론, 집회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항명’했다.

2021년 1월 이번에는 대선 결과를 부정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퇴임을 앞둔 트럼프가 군사적 도발을 벌일 수 있다고 생각한 마크 밀리 의장은 미군 장성들을 비밀리에 불러 “무슨 말을 듣든 정해진 절차를 따르라”고 지시했다. 혹시 트럼프가 군사명령을 내리더라도 합참의장인 자신을 거치지 않고 지시를 실행해서는 안 된다고 군 장성들을 단속한 것이다.

이뿐 아니었다. 핵무기 사용 등 중국에 대한 도발을 염려한 밀리 의장은 의사당 폭동 직후 중국 측에 “미국이 공격할 경우 미리 알려주겠다”라는 전화까지 걸었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밥 우드워드 등이 2021년 펴낸 책 〈위기(Peril)〉에 나오는 내용이다.

마크 밀리 전 합참의장의 일화는 윤석열의 12·3 쿠데타 이후 다시금 회자됐다. 왜 한국 군인 중에는 마크 밀리처럼 윤석열의 명령을 거부한 이가 없었느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최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윤석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계엄을 말렸다”라는 법정 진술이 나왔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이후 군 투입 정황을 보면 그가 명령을 거부했다고 볼 수는 없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의 지적처럼 “쿠데타의 책임이 군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과 상관의 명령에 군대가 이토록 쉽게 동원될 수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민군 관계에 어떤 취약성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각성의 계기가 됐다(〈세종정책브리프〉 ‘12·3 비상계엄과 한국 민군 관계의 과제’)”.

군형법 제44조(항명)는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을 처벌한다고 되어 있다.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군인복무기본법) 제25조(명령 복종의 의무)는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 제57조(복종의 의무) 역시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해놓았다.

군형법의 경우 ‘정당한 명령’이라는 전제가 있기는 하지만, 상관의 명령이 정당한지 아닌지 어떻게 가릴 것인지 모호하다. 상관이 내린 ‘직무상 명령’이라도 그것이 부당할 경우 부하 군인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관련 법 조항도 없다.

외국은 ‘불복종의 제도화’ 명시

미군은 군 기강 유지를 위해 우리와 같이 ‘항명죄’를 규정하고 있지만, 상관의 명령이 적법한지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가진다. 이를 통해 위법성이 인정될 경우 항명죄 처벌을 면제한다.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법률에 위법한 명령의 발령 및 이행 금지 조항을 두어 ‘불복종의 제도화’를 명시했다.

12·3 쿠데타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정부와 국회를 중심으로 ‘위헌·위법한 명령에 대한 거부권’을 법에 명시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현재까지 국회에 관련 법안 총 11개가 제출된 상태다. 그리고 ‘쿠데타 1년’을 일주일 남긴 11월25일 인사혁신처는 ‘공무원은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국가공무원법 제57조를 삭제하기로 했다. 같은 날 국방부도 군인복무기본법 제25조 개정에 찬성한다는 의견서를 국회 국방위 법안소위에 냈다. 군인이 상관의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의 법률 개정안에 대해 국방부가 찬성 입장을 밝힌 것이다.

국가공무원법과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은 그 자체로 의의가 크다. 국가공무원법은 1949년 제정된 이후 76년간 유지된 ‘복종의 의무’ 조항이 폐지되고, 이를 상관의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대체한다. ‘지휘·감독이 위법하다고 판단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도 신설된다.

10월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날 행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거수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인복무기본법 제25조의 경우 국방부는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에는 거부할 수 있으며, 이를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로 개정하자는 의견을 냈다. 또 명령 발령자의 의무를 규정한 제24조에 ‘군인은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여 명령을 발령하여야 한다’라는 문장을 추가했다. 국방부는 이에 더해 국회의원들의 개정안에는 없는, ‘헌법교육 의무화’ 조항을 신설하자는 의견도 냈다.

그런데 군 개혁 운동을 펼쳐온 당사자들은 이번 법 개정 논의에서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위헌·위법한 행위를 저지른 군인’에 대한 처벌이다. 이들에 대한 인적 청산 없이 명령 거부권이 자신을 보호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군인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것이다.

11월26일 공교롭게도 국방부는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 지시로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서울행 ‘계엄버스’에 탔던 김상환 육군 법무실장에게 ‘근신 10일’ 처분을 내렸다. 근신은 견책 다음으로 수위가 낮은 경징계다. 계엄이 해제된 뒤인 12월4일 새벽 3시 버스가 서울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2차 계엄에 가담하려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인 사안이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헌법존중 정부혁신 TF 자문위원)은 “김상환 법무실장은 법무 참모로서 계엄사령관에게 이런 행동이 불법이라는 조언을 하지 않았음에도 근신이라는 경징계 처분을 받았다. 이런 인물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한 법 조항이 있더라도 명령 거부권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11월27일 김민석 국무총리는 김 법무실장에 대한 근신 처분을 취소하고 징계 절차에 재착수하라고 지시했다.

참여연대 역시 11월3일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입법 의견서를 통해 ‘위헌·위법한 명령을 발한 지휘관에 대한 처벌’을 강조했다. 현행 법은 위헌·위법한 명령을 발한 지휘관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기에 군형법 제3장(지휘권 남용의 죄)에 관련 조항을 신설하여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0월1일 국군의날을 맞아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에 군 일부가 연루된 것에 대해 “국민을 지켜야 할 군대가 국민에게 총을 겨누는 일은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결단코 있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쿠데타 1년, 우리 군은 ‘국민의 군대’가 될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일까.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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