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운의 히코노미] '새똥'이 뒤바꾼 남미 지도 … 자원 전쟁의 시초, 구아노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5. 12. 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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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탐욕의 역사, 구아노

◆ 매경 포커스 ◆

구아노를 옮기는 노동자들.

인간은 싸웠다. 인간이 되기 전부터, 인간이 되고 나서도. 미워해서, 사랑해서, 돈이 없어서, 돈이 많아서, 날씨가 흐려서, 날씨가 좋아서…. 이유도 제가끔이었다. 둘 이상이 모이면 인간은 주먹을 휘둘렀고, 문명이 무르익자 무기를 서로에게 겨눴다. 인간은 싸우기를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마치 싸우는 것이 존재 이유인 것처럼. 태곳적부터 수많은 싸움이 있었지만, 어떤 싸움은 남루하고 새삼스럽다. 큼큼한 냄새를 풍기는 똥 때문에 벌어진 싸움이어서였다. 똥을 보고 흥분한 사내들은, 이를 차지하고자 힘겨루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고약하고 너저분한 싸움이었지만, 오늘날 한 나라의 국경선을 결정지었다. '똥'이 한 나라의 운명을 갈랐다는 의미. 경제사에 끼친 영향도 상당했다.

바닷새 구아나이가마우지.

새똥은 어떻게 하얀 황금이 되었나

"이건 하얀 황금입니다."

1802년 남미 앞바다. 새하얀 섬에서 풍기는 쾨쾨한 냄새에 사내는 전율했다. 냄새의 진원에서 또 다른 돈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사내의 이름은 알렉산더 폰 훔볼트. 프로이센 출신의 세계적 지리학자였다. 그의 얼굴을 환하게 만든 건 하얀 새똥으로 가득한 페루 앞바다의 작은 섬들이었다.

새똥은 고약한 만큼이나 걸고 기름졌다. 수십만 마리의 바닷새들이 엉겨붙은 작은 섬에는, 그만큼 푸짐한 똥, '구아노'가 층층이 쌓였다. 훔볼트는 단번에 '구아노'의 진면목을 알아봤다. 질소(N), 인(P), 칼륨(K)이 많이 함유돼 비료로서 이만한 상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땅에 뿌리기만 하면 땅이 비옥해지고, 농산물이 쑥쑥 자라는 마법의 재료다.

유럽은 남미의 새똥에 가슴이 들떴다.

때마침 산업혁명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농업생산력이 그만큼 따라가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억지로 생산물을 늘리자 식물을 품을 지력(地力)이 무너졌다. 땅 내에 질소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유럽에도 새똥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양적으로, 질적으로 따라가지 못했다.

이런 찰나에 들려온 훔볼트의 '천연 비료' 발견 소식은 유럽을 열광케 했다. 잉카제국은 이미 5000년 전부터 새똥을 이용해 페루의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다는 소식이 유명 신문에 전해졌다. 국민의 주린 배를 채우려 한 정치인, 자신의 재산을 불리려 한 경제인, 한탕 챙기려는 유럽의 탐험가들이 뒤섞여 페루 앞바다로 몰려갔다. '구아노'를 사기 위해 페루 정부에 구애했다. '구아노 붐'이었다.

구아노의 가치를 조명한 학자 폰 훔볼트.

페루, 새똥에 웃다

새똥 덕분에 지극히 풍요해진 곳은 '페루'였다. 페루 앞바다는 그야말로 새들의 '변소'였다. 남극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물(훔볼트 해류)이 페루 앞을 돌아다녔다. 해류에 영양이 풍부해 플랑크톤이 많았고, 플랑크톤을 먹으려 정어리·멸치가 몰려들었는데, 이 조그만 물고기로 배를 채우려는 새들이 떼로 몰려와 정찬을 즐긴 뒤 똥을 쌌다. 페루는 먹고 똥 싸는 새들이 기껍고 어여뻤다. 그 똥이 '국부'를 만들어주고 있었으니까.

페루는 새로 태어난 국가여서 자주 앓았다.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페루는 언제나 불안했다. 경제에 힘이 없었고, 정치는 좌우를 수시로 오갔다. 넘어지기도 부지기수였다. 페루의 부실한 하체에 힘을 실어준 건 '구아노'였다. 유럽에서 구아노를 사기 위한 러브콜이 쏟아져서였다. 1840년부터 페루는 유럽인들이 가장 주목하는 나라였다.

영국과 프랑스 농민들은 자기들의 땅에 페루의 새똥을 먹이고 싶었다. 그래야만 농사의 산출이 높아져서였다. 구아노는 석탄, 면화와 같은 세계 시장을 움직이는 원자재였다. 세계 무역선이 페루 앞바다를 기웃거렸고, 그만큼 페루는 부강해졌다.

구아노로 뜬 페루

페루 경제에 근육이 붙었다. 전 세계 구아노 무역량의 대다수를 차지하면서 국부가 '새똥'처럼 쌓여갔다. 국가 재정의 최대 60%가 구아노로부터 나올 정도였다.

페루 정부는 이 돈으로 철도를 깔고 도로를 만들었다. 영국의 자본가들도 페루에 낮은 이자로 돈을 댔다. 구아노만큼 든든한 담보가 없어서였다. 고산지대라는 지리적 장애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세상에는 돈으로 못 할 일이 없었고, 페루는 돈이 많았으니까.

곳간에서 인심 나는 건 동서를 아우르는 법칙이어서, 페루에서도 훈기(薰氣)가 돌았다. 원주민에게 부과하던 강제적 조공을 폐기한 건 1854년이었다. 페루에서 오래 살아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현물과 현금을 내야 했던 원주민들은 환호했다. "새똥이 기적을 불렀다"고 사람들은 소리쳤다. 이듬해에는 아프리카인의 노예 노동이 금지됐다. 페루는 점점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노예와 원주민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페루는 적극적으로 중국인을 받아들였다. 미 대륙에서 저임금으로 산업 현장을 채운 '쿨리'였다. "큰돈을 벌 수 있다"며 꾀인 중국인들은 극한의 노동현장에서 매를 맞으며 일해야 했다. 중국인 쿨리들은 페루에 이를 갈았다.

스페인과 남미 동맹군의 전쟁.

스페인과의 한판승부

곳간이 가득 차자 쥐 떼가 늘어났다. 구아노 원산지를 차지하면 엄청난 부가 쏟아질 수 있어서였다. 사람이 옛 연인에게 집착하듯이, 국가는 옛 땅에 헛된 생각을 갖기 마련이어서, 스페인의 질투심은 대단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자기 땅이었으니까.

호랑이가 먹이를 탐하듯 스페인은 기회를 보고 있었다.

마침 사건이 터졌다. 페루 탈람보 농장에 사는 스페인 주민 두 명이 현지인으로부터 공격받은 '탈람보 사건'이었다. 스페인은 기다렸다는 듯 페루 앞바다로 해군을 출격시켰다. "우리 시민의 안전을 구한다"는 명목이었다. 하지만 세계 모든 이들은 스페인 해군이 바닷새 똥 구린내를 풍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친차제도' 전쟁이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여서 스페인은 구아노로 가득한 친차섬부터 점령했다.

그곳에는 스페인 사람이 살지 않았고, 새들과 새들의 똥으로 가득한 곳이었지만, 여하튼 스페인은 시민의 안전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당시 페루 대통령인 후안 안토니오 페세트는 극도의 에겐남이어서 , 먼발치에서 보이는 스페인 군함에도 오금이 저렸고, 이내 굴욕적인 협상을 타결해버렸다. 페루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고, 국민들의 지지는 절대적이었다.

남미, 힘을 하나로 모으다

"우리 남미가 힘을 합쳐야 스페인을 무찌를 수 있습니다."

새로 부임한 페루 대통령은 마리아노 프라도였다. 그는 군인 출신이어서 그만큼 늠름하고 굳셌다. 스페인과의 무력 충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과거 스페인 식민지였던 칠레·볼리비아·에콰도르도 페루의 손을 잡았다. 페루가 함락당하면 다음 차례는 자신들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서였다. 또다시 식민지로 돌아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피와 땀으로 일궈낸 독립이었으니까.

전선이 넓어졌고, 그 광활한 전장을 스페인은 견딜 수 없었다. 대서양을 건너온 스페인 함선은 기진하여서, 날렵하고 생생한 남미 동맹군을 이기지 못했다. 스페인은 친차제도에서 군대를 빼야 했다. 페루와 첫 평화조약을 맺은 뒤로 다른 나라들과도 조약에 서명했다. 평화조약으로 쓰였지만, 사람들은 이를 '스페인의 패전'이라 읽었다.

인간은 다시 싸웠다.

스페인과의 싸움이 끝나자, 이제는 동맹끼리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옆 나라의 구아노에 군침을 흘렸고, 차세대 질소 자원인 초석까지 남미 일대에서 발견되면서 동맹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국경선을 어디에 긋느냐에 따라 나라의 미래가 결정됐기 때문이었다. 페루와 볼리비아가 한편을 먹고 칠레와 벌인 전쟁, 바로 '태평양 전쟁'이었다.

칠레와 페루의 해전 당시 모습.

칠레 남미의 최강자로

균형이 맞지 않는 전쟁이었다.

칠레는 스페인 독립 이후부터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단단히 다져진 나라였다.

페루와 볼리비아는 구아노로 반짝였지만, 빈번한 쿠데타와 빈약한 경제 구조로 태생이 불안한 나라였다. 더욱이 페루에서 착취당하는 중국인 쿨리는 전쟁을 기회 삼아 칠레 편을 들고 나섰다. 페루를 내부에서 공격함으로써 민족적 울분을 씻고자 함이었다.

양측은 초원에서 싸우고, 바다에서 싸우고, 사막에서 싸웠지만, 승리는 모두 칠레의 몫이었다. 볼리비아는 해안을 모두 칠레에 내줘서 바다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내륙국가가 됐다. 페루도 해안의 너른 땅인 타라파카를 칠레에 내줘야 했다(앙콘 조약). 초석과 구아노로 가득한 옥토 중의 옥토였다.

구아노도, 초석도 모두 칠레의 것이어서 칠레의 국부는 가늠하지 못할 만큼 늘어났다. 태평양 전쟁 이후 국가 재정 규모가 10배나 늘어났을 정도였다. 전 세계 비료 시장은 페루에서 칠레로 넘어가고 있었다. 질소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페루에 여전히 구아노 섬이 남아 있었지만, '새똥의 시대'는 저물고 있었다. 새들이 싸는 것 이상을 인간이 가져다 써서 구아노는 남아나지 않았다. 페루의 미래도 덩달아 보이지 않았다. 해는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지고,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떴다. 칠레는 남미의 헤게모니를 쥐고 흔들었다.

또다시 자원의 저주

초석을 신주로 받들어 모시던 칠레의 영광도 오래가지 않았다. 축복이라던 자원은 실은 저주나 다름없었다. 대서양 건너 독일에서 합성 암모니아 공정법이 개발되면서 인공비료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초석 산업은 붕괴됐고, 칠레는 다시 공황을 맞았다. 국부를 받치는 기둥이 초석 하나였던 것이 발목을 잡았다. 구아노의 비극이, 이제 초석의 비극으로 재연되고 있었다.

페루 앞바다의 친차섬과 칠레 아타카마사막 내 초석 광산은 휑뎅그렁함, 그 자체였다. 분별없는 구아노 채취로 새들은 더 이상 섬을 찾지 않았고, 초석 광산은 생명의 기척 없는 폐허로 남았다. 자원에 눈이 돌고, 피가 끓었던 인간이 만든 초상. 자원 하나로 낙원을 만들려 한 어리석은 인간이 만든 풍경이었다.

히코노미는 경제라는 어려운 식재료를 역사라는 맛있는 양념으로 요리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경제 근육을 키워드리겠습니다.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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