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왜 어린이에게 공연장보다 놀이터가 되려 할까
어린이 관객의 공연장 경험
편집자주
예술경영 현장을 20년 넘게 지켜 온 서고우니 예술의전당 공연예술본부장이 무대와 객석 사이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공연장은 어린이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다.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조용히 앉아서 봐야 해"라는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물어보려고 하면 먼저 "쉿" 소리가 따라온다. 사실 장르마다 예절이 다르기 때문에 어른도 헷갈릴 때가 많은데, 아이들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낯설다.
공연계에서는 흔히 "미래 세대 관객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젊은 관객층이 계속 유입되어야 공연 산업이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공연을 많이 보여준다고 해서 저절로 관객으로 자라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공연을 봤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어떤 분위기 속에서 공연장을 경험했는가다. 아이에게 공연장이 따뜻하고 신나는 기억으로 남는다면 다시 찾고 싶을 것이고, 반대로 엄마의 '쉿' 소리만 가득한 기억이라면 그 공간은 다시 가기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공연장은 단지 공연을 관람하는 장소로만 인식되기 쉽다. 이 공간을 직접 놀고, 느끼고, 탐험해본 적이 있는 아이는 많지 않다. 진정한 '미래 관객'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콘텐츠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연장을 하나의 친숙한 문화 공간으로 느끼게 해 주는 경험이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 공연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연장을 경험하기 위해 방문하는 어린이가 많아질 때 비로소 미래 관객은 자란다.
지금 한국의 어린이 공연 환경을 보면, 대부분이 작품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아시테지 코리아)가 여는 아시테지 축제도 있고 여러 극장에서 양질의 어린이 공연들이 소개되지만, 정작 공연장을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체험 프로그램이나 안내 활동이 있긴 하지만, 부가 행사로 치부되거나 형식적인 안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관람은 무대 위 아닌 공연장 도착부터 시작

해외는 접근 방식이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영국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패밀리 선데이(Family Sundays)'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공연장을 하나의 놀이터처럼 경험하도록 돕는다. 3~10세를 대상으로 다양한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미니 발레 공연도 보고, 무대 뒤 체험도 하고, 소품을 직접 만지거나 만들 수도 있다. 발레 동작을 따라 하거나 오페라 노래를 배워보는 등 공연장을 몸으로 익히는 과정이 중심이 된다. 예절보다 먼저 '익숙해지기'가 우선인 것이다.
미국 뉴욕의 링컨 센터 역시 공연장을 하나의 교육 공간으로 바라본다. 단순히 공연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전후의 경험까지 포함하여 하나의 예술 교육 과정으로 구성한다. 좌석을 고르는 것부터, 연주자에게 질문하는 과정까지 모두 관객의 경험으로 설계되어 있다. 공연은 무대 위에서가 아니라 극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이다.

공연장에 오래 근무하다 보니 아이들이 로비에서 부모 손을 잡고 서 있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럴 때마다 '이 아이는 이 공간을 어떤 기억으로 남길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린 시절 공연장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설렘이 따뜻하게 남는다면, 훗날 이 아이는 스스로 관객이 되어 다시 이곳을 찾게 될 것이다.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나 하나의 감정이자 취향으로 자리 잡는다.
그렇다면 공연장은 그 기억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안내 문구와 예절 교육을 넘어 아이들이 공연장을 탐색할 수 있는 구조와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 로비에서 자유롭게 머무를 수 있는 동선, 공연장을 '놀이처럼' 접할 기회, 스스로나 가족과 함께 배우는 시간을 열어두는 것, 그것이 공연장의 역할일 것이다. 좋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일만큼, 관람객이 공연장을 어떻게 '느끼도록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어린이에게 남겨진 긍정적 경험은 언젠가 다시 돌아오게 하는 힘이 되고, 그 힘이 공연장을 지속시키는 가장 든든한 기반이 된다. 따뜻한 첫 경험이 쌓이면 그 기억은 오래 남고, 오래 남은 기억은 다시 공연장을 찾게 만든다. 아이에게 좋은 공연장 경험을 남겨주는 일, 그것이 공연장이 오랫동안 사랑받기 위해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일일지 모른다.

예술의전당 공연예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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