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 이 사업] ‘돈까스 성지’ 칠곡, 4대 천왕 한자리에… 세기의 블라인드 대결 펼쳤다

이임철 기자 2025. 12. 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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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돈까스 4대 천왕 블라인드 평가로 성지의 명성을 입증한 현장
'돈까스 4대 천왕 블라인드 평가회'에 참석한 김재욱(왼쪽 4번째) 칠곡군수와 평가단,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칠곡군 제공

최근 K-푸드가 세계적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돈까스 성지' 칠곡의 4대 천왕 대결이 펼쳐져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이는 칠곡군이 전국 돈까스 마니아들 사이에서 '성지'로 불리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한 자리가 된 것.

1950년대 미군 부대 앞에서 시작된 경양식 문화의 뿌리를 잇는 노포부터, 각종 경연대회 수상으로 떠오른 신흥 강자까지 이른바 '4대 천왕'이 한자리에 모여 블라인드 평가로 실력을 겨뤘다.

외식업중앙회 칠곡군지부는 7일 칠곡군 왜관읍 카페파미에서 한미식당, 아메리칸레스토랑, 포크돈까스, 쉐프아이 등 4곳 돈까스가 블라인드 평가회를 열었다. 긴 대기 줄로 유명한 4곳의 메뉴를 한날한시에 맛볼 수 있다는 소식에 모집 공지는 반나절 만에 마감됐고, 25명의 평가단이 자리를 채웠다.

행사 방식은 철저히 '이름을 지운' 블라인드 승부였다. 4개의 돈까스 가게는 매장명을 숨긴 A·B·C·D 코드로 제공됐고, 평가단은 맛과 식감, 소스와 튀김의 밸런스를 기준으로 점수를 매겼다. 칠곡군 홍보대사인 래퍼 슬리피도 평가단으로 참여해 "왜 칠곡이 돈까스 성지인지 알 수 있는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김재욱(오른쪽) 칠곡군수와 슬리피가 4곳의 칠곡군 돈까스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칠곡군 제공

칠곡 돈까스 문화의 뿌리는 1950년대 주한미군 주둔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관읍 미군기지인 캠프캐럴의 미군을 상대하던 식당들이 서양식 조리법을 익히며 돈까스를 현지화했고, 이 과정에서 두툼한 고기와 진한 데미글라스 소스를 앞세운 경양식 돈까스가 자리 잡았다.

이러한 흐름의 정점에 선 곳으로 꼽히는 한미식당은 45년 넘게 한 간판을 지켜온 칠곡 돈까스의 상징으로 소문이 나 있다. 특히 한미식당은 지난해 9월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의 맛·품질 향상을 위해 개최한 '2024년 휴게소 음식 FESTA'에서 명품 맛집 부문에서는 대상을 차지해 전국구 인지도를 굳힌 가게다. 28년째 미군 부대 앞을 지키고 있는 아메리칸레스토랑은 1990년대 경양식의 향수를 간직한 곳으로, '옛날 돈까스 맛'을 찾는 단골층을 모았다.
현지인 맛집으로 떠오른 포크 돈까스는 친구 가게의 맛에 반해 레시피를 전수 받아 창업한 곳으로 염지와 소스, 양파 샐러드까지 직접 만들며 옛 스타일을 고수해 택시 기사들이 관광객에게 먼저 추천하는 집으로 통한다. 신흥 강자인 쉐프아이는 각종 요리 경연 대회 수상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대표 메뉴인 '피자 돈까스'는 포항 출신 아내가 중학생 시절 즐겨 먹던 맛을 복원해달라는 부탁에서 출발했다. 수개월 연구 끝에 "이 맛"이라는 아내의 한마디로 메뉴가 완성됐고, 전통 경양식 위에 퓨전 스타일을 더한 사례로 칠곡 돈까스 문화의 세대교체를 주도하고 있다.

평가단으로 참여한 권민지 경북과학대 학생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칠곡 돈까스를 한자리에서 비교해본다는 건 마니아에게는 꿈 같은 일"이라며 "이름을 가린 채 맛으로만 평가하니 각 집의 개성이 또렷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긴 줄을 서서 한 집씩 돌던 곳들을 한 번에 맛본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는 반응을 보였다.

칠곡군의 돈까스 이야기는 단순한 맛집 경쟁을 넘어 지역 외식 문화와 도시 이미지 형성과도 맞닿아 있다. '경북형 소도시 미식 관광 육성 계획'을 통해 각 시군의 대표 음식을 관광 자원으로 키우는 전략을 추진 중인 가운데 경북도 관계자는 "지역에 뿌리 내린 식당의 역사와 스토리를 관광 콘텐츠로 엮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칠곡의 돈까스 4대 천왕이 보여주는 노포와 신흥 맛집의 공존, 미군 부대 문화와 한국식 경양식의 결합은 향후 관광 상품화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로 평가된다.

강대웅 외식업중앙회 칠곡군지부장은 "이번 대결을 통해 칠곡군의 다양한 맛집이 더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미군 부대 앞 작은 식당들에서 시작해 세대를 거쳐 이어진 흐름이 오늘의 개성을 만들었다"며 "이런 이야기를 가진 음식이 많다는 것이 칠곡의 큰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돈까스 4대 천왕 대결이 블라인드 평가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승부의 결과보다 더 선명하게 남은 것은 '성지'라는 이름에 걸맞은 칠곡 돈까스의 저력이었다. 따라서 한 세대 이상 이어진 노포의 역사와 추억을 소환하는 옛 경양식, 새로운 조합을 시도하는 퓨전 메뉴가 한 공간에서 교차하며, 칠곡은 다시 한번 자신만의 미식 브랜드를 각인시켰다.

이임철 기자 im72@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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