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리틀 풋' 발견 남아공 스테르크폰테인 동굴 현장 가보니

한국과학기자협회 2025. 12. 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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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각) ‘제13회 세계 과학기자대회(WCSJ)’에 참가한 과학 기자들이 남아공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을 둘러보고 있다.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은 고인류 화석이 500점 이상 발굴된 중요한 발굴 현장이다./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

“스테르크폰테인(Sterkfontein) 동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2월 5일 오전 10시(현지시각), 스테르크폰테인 동굴 방문객 센터 입구에서 기자단을 맞은 트레버 부틸리지(Trevor Buthelezi) 가이드가 설명을 시작했다.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은 ‘리틀 풋’과 ‘플레스 여인’ 등 여러 중요한 고인류 화석이 발견된 곳입니다. 현재도 화석 발굴과 연구가 진행 중이죠.”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남서쪽으로 70km 떨어진 곳에 있다. 겉보기엔 초원과 숲이 점점이 이어지는 평화로운 구릉지대지만, 스테르크폰테인 동굴 일대는 약 26억 년 전 생성된 석회암 지층이 빗물에 녹아 생긴 카르스트 지형이다. 계단을 따라 좁은 동굴 입구를 내려가니 어둡고 시원한 내부가 드러났다.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에서 처음 중요한 고인류 화석이 발견된 것은 1947년이다. ‘플레스 부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화석은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완벽한 고인류 두개골 화석 중 하나다. 현재는 약 250만 년 전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종의 고인류 화석으로 여겨진다. 이 외에도 1997년에 발견된 보존 상태가 좋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화석 ‘리틀 풋’ 등 500점이 넘는 고인류 화석이 발견됐다.

연이은 화석 발견으로 아프리카가 인류의 탄생지라는 점이 확증됐다. 나아가 고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진화했는지도 명확히 밝혀졌다. 스테르크폰테인 동굴로 인해 남아프리카가 동아프리카와 함께 고인류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올라선 것이다.

● 80여 년 지났지만 여전히 활발한 고인류학 연구

욥 키비 스테르크폰테인 동굴 연구 총책임자가 연구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뼈 화석이 드러나 있다./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

“여기, 위 지층에 박힌 뼈가 보이나요? 210만 년은 됐을 겁니다.”

스테르크폰테인 동굴 연구의 총책임자 욥 키비가 발굴 현장 구석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붉은 지층 사이로 흰색의 갈비뼈가 보였다.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에서 연구가 시작된 지 8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동굴과 주변에서는 수많은 화석이 나오고 있고 발굴 작업도 진행 중이다. 더 놀라운 점은 스테르크폰테인 동굴 인근에만 300개 넘는 석회동굴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5km 떨어진 ‘라이징 스타’ 동굴에서는 그 유명한 호모 날레디(Homo naledi) 화석이 발견됐습니다. 반대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서는 인류 최초로 불을 사용한 흔적이 발견됐지요.” 부틸리지 가이드는 “이렇게 중요한 화석 발견지가 묶여 ‘인류의 요람(Cradle of Humankind)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며, “전 세계 고인류 화석의 50% 이상이 이곳에서 발견됐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 고인류학, 남아공을 통합한 국가적 상징

디푸오 위니 크톨링 요하네스버그대 고인류학 박사. 남아공의 고인류학 연구를 이끄는 대표적인 흑인 여성 과학자다./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

고인류학은 경제적으로 중요한 잠재력을 가진 학문은 아닐지 모른다. 그럼에도 남아공 사람들이 고인류학에 두는 의미는 남다르다. 12월 2일 프리토리아에서 만난 디푸오 위니 코틀링 요하네스버그대 박사는 고인류 화석이 “우리의 고향이 인류의 기원이라는 자부심의 원천이자, 남아공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90년대 초, 인종차별 정책이었던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된 후 남아공에는 억압받았던 흑인들이 백인에게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감돌았어요. 그러나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은 흑백 통합의 기치를 내걸었고, 이때 고인류는 흑백 통합의 상징 중 하나로 쓰였어요. 우리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거죠. 검은 피부를 가졌든, 흰 피부를 가졌든, 모두 같은 색의 뼈를 가졌으니까요.”

코틀링 박사는 “심지어 남아공 국장(엠블럼)에도 동굴 벽화가 그려져 있을 정도”라며 국장을 보여줬다. 과연 국장에는 인종 간의 화해를 상징이라도 하듯, 동굴 벽화에서 나온 두 인물이 손을 맞잡고 있었다. 코틀링 박사처럼, 백인 남성 일색이던 남아공 고인류학계는 이제 점점 다양한 성별과 인종의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사회의 변화만큼이나, 남아공의 과학도 꾸준히 변화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코틀링 박사가 말했다.

“저는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되고 부모님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투표를 하러 가던 장면을 기억합니다. 그 후에 저는 이전엔 꿈도 못 꾸던 대학교에 입학했죠. 제 사명은 앞으로도 저와 같은 흑인 연구자를 꾸준히 길러내는 겁니다.”

요하네스버그(남아공)=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

[한국과학기자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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