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로봇 경로 알고리즘 만들고 AI로 퇴직 예측…'AI 세대'의 교실
〈편집자주〉생성형 AI의 확산으로 학생들의 학습 방식과 교사의 역할, 교육과정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학교는 AI를 '사고의 전환'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수업 모델을 시도 중이다. 교육당국은 이에 발맞춰 'AI중점학교'를 2028년 20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전자신문은 실제 학교 현장에서 AI교육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짚어봤다.
‘양보’로 배우는 코딩…“더 많은 수업 듣고 싶어요”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길이 겹치네.”
“그럼 내가 5초 멈출게. 네가 먼저 가.”
지난 5일 방문한 서울 개포초등학교 AI교실. 3학년 3반 학생 22명이 책상 앞에 모여 혹은 바닥에 엎드린 채 격자무늬 지도에 그릴 로봇의 이동 경로를 두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날 수업에서 학생들은 4~5명이 한 조를 이뤄 각자 생각하는 우정의 요소들을 하나씩 순서대로 알고리즘에 쌓는 작업을 수행 중이었다.
김누리 3학년 3반 담임교사는 코딩을 이리저리 손보는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지금 하고 있는 게 '병렬 처리'야. 여러 정보가 동시에 흘러가면서 충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자”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복잡한 컴퓨팅 개념을 '양보'와 '기다림'이라는 말로 배우고 있었다. 작은 로봇들이 오갈 수 있는 길을 만들며 알고리즘, 스택, 시뮬레이션 등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2023년 재개교한 서울개포초등학교는 지난 2년간 AI·정보교과 중심학교를 운영하며 다양한 수업을 전개해오고 있다. 올해는 '나, 너, 우리다움을 기르는 AI·정보교육'을 주제로 교육 공동체 협력을 바탕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했다. 온라인 코딩 파티를 이용해 학급 배틀 행사를 운영하고, 학생들이 AI를 개발하거나 활용할 때 인간을 생각하고 도와야 한다는 기준을 정립할 수 있도록 AI 활용 공모전도 열었다.
김 교사는 “학생들은 수업과 활동을 통해 AI가 단순한 기술이나 도구가 아니라 자신과 타인, 사회를 함께 생각하게 하는 학습 주제라고 인식하게 됐다”고 전했다.
학생들도 수업을 들으며 AI에 대한 개념을 정립해나가고 나아가 여러 과제를 수행하며 자신감을 키웠다. 학생들은 마이크로비트로 만든 할리갈리 게임, 드론을 조종하는 '토리드론' 수업 등이 기억에 남는다고 입을 모았다. 최도현 학생은 “마이크로비트 수업에서 입력-처리-출력 방식을 이해할 수 있었고, 센서를 연결해 불이 켜졌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앞으로 더 많은 수업을 듣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양정우 학생은 “코딩을 더 많이 배워서 다른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고, 많은 친구들이 코딩과 AI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회사를 왜 떠나는지 예측해보자”… 마포고의 딥러닝 수업

서울 마포고의 '인공지능기초' 수업은 실생활에서 마주칠 수 있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날 수업은 '기계학습을 적용한 회사 퇴직 요인 분석 및 예측'을 주제로 실제 IBM의 HR 데이터셋을 활용했다. 데이터는 1470명의 나이와 소속 부서, 직무 만족도, 동료와의 관계, 학력, 거주지와의 거리, 월급, 퇴직 여부 등의 변수가 기록돼 있으며, 이를 구글 코랩으로 불러내 요약 통계를 확인하고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이어 학생들은 스스로 변수를 선택해 랜덤 포레스트 모델을 학습시켜 검증용 데이터 10명의 퇴직 여부를 예측했다. 최고점은 10명 중 8명의 퇴직 여부를 맞춘 팀에게 돌아갔다.
한 학생이 “AI 예측과 제 판단이 다르다”고 말하자 수업을 진행하던 서성원 교사는 “AI는 90%의 확률로 맞다고 수치를 줬는데, 네가 아니라고 판단했잖아. 누굴 믿어야 할까?”라며 반문했다. AI에게 반기(?)를 드는 바람에 틀렸다는 말에 교실에 폭소가 터진 가운데, 학생들은 'AI의 판단을 통해 최종 결론을 내리는 건 사람'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마포고의 AI기초 과목은 진로선택과목으로 운영되며 2학년 학생 90명이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학교에서 AI를 접하고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진로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고 전했다.
서호준 학생은 “생명과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당뇨병을 예측하는 딥러닝 모델을 만들어본 뒤 바이오AI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며 “AI가 연구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특히 스스로 원하는 주제를 찾아 모델을 설계하며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김도현 학생은 “수행평가를 위해 별의 온도, 밝기와 같은 물리량을 입력해 종류를 예측하는 머신러닝 분류모델을 만들었는데 AI가 어떻게 최적화 원리를 활용하는 지 체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AI를 무조건 맹신하지 않았다. 김범준 학생은 “AI가 정보를 빠르게 제공하는 건 장점이지만 판단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김도현 학생도 “AI가 사실이 아닌 내용을 만들 때도 있기 때문에 검증 능력도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고 전했다.
“AI는 사고방식의 변화다…인프라 개선 등 교육당국 몫”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AI 교육은 더 이상 '특별 프로그램'이 아니다. 교육과정 안에 들어와 학생들의 학습 방식과 진로 선택까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김누리 교사는 AI·정보 중심학교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의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김 교사는 “AI가 왜 이렇게 작동하는지, 인간과는 다른 게 무엇인지 고민하도록 수업을 설계했다”며 “어린 학생들도 'AI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과를 만들지만 인간은 경험과 감정을 담는다'며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성원 교사도 비슷한 지점을 언급했다. 서 교사는 “AI 수업을 하면 평소 조용하던 학생들도 눈을 반짝이고 실생활 데이터를 직접 분석하며 진로를 바꾼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 교사는 “AI는 컴퓨터 과학의 상층부 학문이라 수학적 사고, 데이터 감각을 키우지 않으면 상당히 진입장벽이 높다”며 “AI·정보교과도 영어나 국어처럼 꾸준함이 중요한데 중학교 때 잠깐, 고등학교 때 선택과목으로 잠깐 배우면 다 잊어버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AI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점은 현장의 어려움으로 꼽았다. 서 교사는 “지금 가르치는 교육과정은 챗GPT가 나오기 전에 만들어진 것인데 아이들은 이미 'GPT-5'를 쓴다”며 “눈높이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기술은 발전하고 있다”며 유연한 교육과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 교사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기술 중심 교육보다 '어떻게 질문할까', 'AI를 어디까지 신뢰할까'와 같은 철학적 역량이 시급하다”고 봤다.
또한 학교 현장의 인프라를 개선하고 교사들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을 교육당국의 몫으로 꼽았다.
서 교사는 “AI는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도 하이엔드급 기술인데 교사 연수나 시수 지원은 제한적”이라며 “국가 차원의 전문성 강화와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AI는 교육은 단순한 기술 교육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기르는 교육이 돼야 한다”며 “국가가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다현 기자 da2109@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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