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찍고 웹툰 만드는 AI…K콘텐츠 창작 공식 새로 쓴다
예산 대폭 늘리며 AI 콘텐츠 스타트업 육성

인공지능(AI)이 메가폰을 잡고, 캔버스에 색을 칠하는 시대다. 프롬프트에 입력한 한 줄의 문장이 10분 만에 거대한 세계관을 가진 소설로 탈바꿈한다. AI가 스토리, 이미지, 음악, 영상까지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 자체를 다시 쓰고 있다는 얘기다. 시장조사기관 밸류에이츠리포트의 ‘2025 글로벌 AI 콘텐츠 생성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7억 달러를 기록한 관련 시장 규모는 오는 2031년에는 92억 달러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K팝부터 영화·드라마, 웹툰까지 글로벌 소프트파워를 주도하는 허브로 자리매김한 국내 콘텐츠 시장도 AI가 창작에 스며드는 변화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획부터 제작, 유통에 이르기까지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K콘텐츠의 미래 경쟁력을 가를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80억 원을 편성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AI 콘텐츠 제작 지원사업’에 두 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각각 165억원, 210억원을 추가 투입해 AI콘텐츠 생태계 강화에 나서고, 내년에도 올해보다 대폭 증액된 198억원을 배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4일부터 사흘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AI콘텐츠 페스티벌 2025’는 콘텐츠 분야 중소·스타트업의 아이디어가 생성AI 기술과 어떻게 맞물리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특히 민관이 협력해 AI에 기반한 창작 생태계를 키우는 인큐베이팅 플랫폼이란 점이 관심을 끌었다. ‘AI, 콘텐츠의 영감을 불어넣다’를 주제로 관련 기업과 창작자 40여 팀이 참여한 이번 행사에선 국내외 비즈매칭뿐 아니라 극장을 통한 AI영화 관람 등 다양한 클래스가 열려 AI콘텐츠와 소비자 접점을 키웠다.
‘AI 필름메이킹’ 개척자 “모두가 아티스트”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콘텐츠는 영상 분야다. 할리우드 등 해외 영화계에서 이미 AI를 활용한 제작을 시도하는 가운데 장기 불황에 따른 투자 경색으로 제작 편수가 급감한 국내 영화시장에서도 AI영화가 활로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 각본부터 촬영, 특수효과, 배우 출연료 등 수억 원에서 많게는 100억 원이 훌쩍 넘는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지난 10월 개봉한 국내 첫 AI를 활용한 장편 상업영화인 ‘중간계’는 크리처 제작 등 4~5일이 걸리는 시각특수효과(VFX) 작업을 AI로 하루 만에 끝내며 제작비를 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스티벌에 참여한 스튜디오프리윌루전은 국내 AI 필름메이킹 분야에서 가장 앞선 스타트업으로 평가된다. ‘중간계’의 AI 제작을 맡는 등 다양한 실증사례를 보유한 데다, 지난해 ‘두바이 국제 AI영화제’에서 대상을 받는 등 해외에서 제작역량도 인정받고 있어서다. 현재 ‘본예산 선도형’으로 콘진원으로부터 최대 7억 원의 지원을 받으며 콘텐츠 제작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일 현장에서 만난 한화정 스튜디오프리윌루전 팀장은 “CJ와 공동제작하는 지식재산권(IP) 개발부터 구글, 신세계 등 주요 기업의 광고까지 맡는 등 AI영상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튜디오프리윌루전이 강조한 AI생성 콘텐츠의 강점은 확장성에 있다. 이 회사의 제작부서 구성원은 70여명이 모두 ‘AI 아티스트’로 불린다. 다양한 AI프로그램을 활용해 누구나 각본을 쓰거나 특수효과 영상을 만드는 등 영상을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촬영·각본·특수효과 등 분명한 경계가 있던 기존 영상제작 문법을 허문 것이다. 한 팀장은 “누구나 제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라며 “자체 플랫폼인 ‘AI-Kive’로 공모전을 운영하는 등 크리에어티가 활동하는 저변을 넓히는데, 이번 페스티벌에서도 참가자들의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영화, 게임, 굿즈 등 다양한 연관 장르로 전환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OSMU)’ 콘텐츠로 주목 받는 웹툰·웹소설에서도 AI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올해 추경예산으로 지원을 받게 된 기업 중 툰스퀘어가 포함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생성AI 기반 웹툰 저작 솔루션 기업인 툰스퀘어는 자체 툴인 ‘투닝 플러스’를 통해 캐릭터 제작부터 3D 모델링, 스토리 생성 등을 돕는다. 투입 시간 대비 생산성이 낮은 웹툰·애니메이션 제작 시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태경 툰스퀘어 글로벌세일즈 총괄은 “‘풀하우스’로 유명한 원수연 작가와 AI 기반 시나리오 및 컷 구성으로 곧 연재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선 생성AI로 세계관을 구축해주는 등 웹소설 창작 생산성을 높이는 스토리피아 부스도 인기를 끌었다.

“창작 민주화 이끄는 AI, 여전히 중심은 사람”
이날 페스티벌에 참가한 기업들은 해외 네트워크 및 판로 확대, 연구개발(R&D) 가속화 등 정부 지원사업이 AI 역량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면서도 산업 종사자들이 AI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 등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AI 전문가’를 만들기보단 기존 업계 인력을 활용하는 방법이 효율적이란 것이다. 한화정 팀장은 “기존 영상 제작자들이 AI로 콘텐츠를 제작하려면 실질적인 포트폴리오를 쌓아야 하는데, 아직 이들을 양지로 끌어올 만한 기회가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다양한 장르에서 AI가 콘텐츠를 생성하지만 여전히 창작을 돕는 도구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예술적 측면에서 결국 콘텐츠를 만드는 몫은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콘진원 AI 장편영화 제작지원사업을 통해 AI 장편영화 ‘판테온’을 제작 중인 이진호 감독은 “AI는 사람이 필요 없다는 인식이 있지만, 오히려 모두가 ‘공동 책임자’가 되는 것”이라며 “함께하는 사람들의 창의성이 최종 결과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김남걸 콘진원 게임신기술본부장은 “이번 ‘AI콘텐츠 페스티벌’을 통해 창작자 아이디어가 AI를 만나 어떻게 새로운 콘텐츠로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려 했다”면서 “여러 창작 과정을 공유하며 많은 사람이 새로운 영감을 얻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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