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기술 0에서 출발… 장보고함이 만든 K-잠수함 신화 [박수찬의 軍]
잠수함 장보고함(1200t급). 한국 해군의 숙원이던 잠수함 확보를 실현한 함정이자 손원일급·도산안창호급 잠수함으로 이어지는 한국 잠수함 기술의 시초 역할을 했던 함정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극복할 수는 없는 법. 오랜 기간 현역으로 복무하고 퇴역하는 직업군인처럼 장보고함도 대한민국의 바다를 떠날 때가 왔다.
장보고함은 올해 연말 퇴역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 19일 진해군항에서 마지막 항해를 마쳤다. 1991년 8월 독일 하데베(HDW) 조선소에서 진수한 이후 34년간의 항해를 마칠 때가 온 것이다.

장보고함이 한국 잠수함 전력과 기술 발전의 토대 역할을 한 것은 알려져 있지만, 장보고함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 해군은 1970년대부터 잠수함 도입을 수 차례 시도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다 1976년 11월 개발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국내에선 잠수함 기술 기반이 전혀 없었던 시절이라 해외에서 디젤-전기추진 잠수함 기술을 습득해야 했다.
당시 세계 잠수함 시장에선 독일(당시 서독)이 소형 디젤-전기추진 잠수함을 수출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ILK사는 독일 HDW 및 영국 빅커스사와 프로젝트 70급 잠수함 건조 및 기술협력 협정을 맺고 있어서 한국에 협조하기가 어려웠다.
프로젝트 70급은 독일이 1960년대 시험적으로 2척을 건조했다가 퇴역시킨 202급 잠수함(100t급)을 토대로 개발될 연안 잠수함 건조계획이었다.
남은 것은 독일에서 확보한 자료를 기반으로 국내에서 개발 및 건조하는 것 뿐이었다.
해군은 독일에서 잠수함 운용교육을 받은 장교 2명을 ADD로 파견해서 연구팀을 구성했고, 추진 및 전기장치와 항해·통신장비·음향탐지기 등을 연구하면서 1978년 11월 개념설계를 마쳤다.
이후 1980년 6월 코리아타코마 조선소와 상세설계 및 건조계약을 체결했다. 이것이 바로 돌고래급 잠수함이다.
코리아타코마는 현재는 사라졌지만, 1970∼1980년대 백구급·참수리급 고속정, 포항급 초계함, 울산급 호위함 등 국산 함정을 다수 건조해 국내 해양 방산 역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기업이다.
건조에 돌입한 잠수함은 1983년 4월 돌고래-051함으로서 진수식을 치렀다. 1984년 12월 해군에 인도되면서 한국 해군은 잠수함 운용 시대로 접어들었다.

방법은 ‘일단 해 보자’ 뿐이었다. 낮은 수심에서 처음에는 10분간 잠항하고, 그 다음에는 30분간 잠항하는 식으로 조금씩 항해 시간을 연장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돌고래 잠수함은 기본적으론 독일 202급 소형 잠수함을 확대한 형태다.
어뢰발사관을 측면에 두고, 그 가운데 공간에 승조원 구역과 음파탐지기 등의 장비를 배치했다. 적 해안에 접근할 때 바닥의 돌출물에 의해 프로펠러가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도 추가했다.
돌고래 잠수함은 성능상 제약이 많았지만, 잠수함 기술과 운용경험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개발과정에서 독일과 협력을 진행하면서 독일 잠수함 기술의 우수성을 확인했고, 이는 1980년대 독일산 209급 잠수함(장보고급 잠수함)을 선택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1980년대 신형 잠수함 도입을 추진하던 한국 해군은 독일산 209급 잠수함 구매를 결정했다. 1970년대부터 돌고래 잠수함 등을 통해 진행한 기술교류로 독일 시스템에 익숙해진 결과였다.
이를 위해 해군은 제작사인 독일 HDW와 3척 건조 계약을 체결한다.
HDW는 디젤엔진, 전기 추진장치, 어뢰 발사관 및 무기체계, 음파탐지체계, ISUS 전투체계, 잠수함 설계도 및 주요 부품과 장비, 훈련용 시뮬레이터와 수리용 매뉴얼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독일에서 만드는 1번함은 HDW가 품질을 보증하고 기술 이전 및 전문 인력 교육을 담당하기로 했다. 한국 측은 후속 2척을 HDW 기술 이전을 기반으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에서 건조하며, 자체적으로 유지보수 및 운용을 수행하기로 했다.
이 계약을 통해 한국은 잠수함 건조 능력을 높이고, 국내 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장비교육은 HDW가 진행했으며, 해상 훈련은 수심 300m 이상인 북해에서 실시했다.
1993년 네덜란드 화물선에 탑재된 상태로 독일을 출발해 수에즈 운하를 경유, 같은 해 한국에 도착했다.
잠수함 건조와 더불어 해군본부 주관으로 승조원 양성도 이뤄졌다.
해군본부는 부사관 이상의 군 간부를 대상으로 승조원 선발을 진행했다. 근무평정, 교육성적, 품성과 인내력에 초점을 맞췄다. 잠수함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높은 스트레스를 극복하려면 정신력과 협동정신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독일에서 1번함이 건조되는 동안 국내에선 2번함 이천함이 1992년 10월 진수됐다.

이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9척까지 늘어난 장보고급 잠수함들은 1만8000㎞ 수준의 원해작전능력을 입증하고, 다국적 훈련에서 다수의 함정을 격침판정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장보고함 승조원들의 함 내 생활은 매우 좁고 폐쇄적인 환경에서 이뤄진다. 약 70㎡, 평수로는 20평 남짓한 넓이가 장보고급 잠수함 승조원 침실과 휴식공간의 크기다. 승조원이 32명이니, 1인당 1평 미만의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의미다.

이마저도 승조원 숫자보다 침대가 적다. 내부 공간이 비좁기 때문이다. 2∼3명의 승조원이 침대 1개를 공유한다. 승조원들의 당직 시간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침대는 일과 후 또는 야간 당직 근무자에게만 개방되며, 주간 일과 중에는 누울 수 없다. 이때 승조원들은 식탁 주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화장실도 2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세면장을 겸하고 있어서 아침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때문에 자신의 용무시간을 저녁으로 습관화하는 사람, 남들이 잘 때 볼 일을 보는 사람, 참다가 변비에 시달리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잠수함은 수중으로 들어가면 외부와의 연락이 끊긴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장기간 연락을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이 때문에 미혼 승조원들은 연인과의 연락 문제로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
사용할 수 있는 물이 제한적이라 승조원들은 항해 중 면도를 하지 않는다. 물을 절약하는 습관을 키우기 위해 일부 함장들은 수염 기르기 대회를 열어 가장 멋있게 수염을 기른 승조원에게 상품을 주기도 한다.

잠수함 조리장들은 타 부대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조리를 하기 때문에 음식이 대체로 맛있다. 특히 ‘잠수함 스테이크’는 잠수함 승조원만이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음식이다.
잠수함은 환기가 쉽지 않아 불에 굽는 조리가 제한된다. 따라서 오븐에 쪄서 스테이크를 만든다. 지상에선 맛보기 힘든 별미다.
함내 공간이 협소해 여가시설을 두기가 어렵지만, 승조원들은 독서나 영상 시청, 장기와 바둑 등 큰 소음을 내지 않는 활동으로 여가를 보내며 시름을 달랜다. 지상에선 훈련과 행정업무처리 등으로 하지 못했지만, 잠수함에선 독서에 집중할 수 있어서 임무 시 책을 챙기는 승조원들도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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