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야 쇼츠야, 세상에서…” K-국뽕 환상곡 [.txt]

한겨레 2025. 12. 7.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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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삐딱
팝·쇼핑·군사력·언어·훈남미녀까지
‘메이드 인 코리아 넘버원’ 무릉도원
자신감? 거울 대신 스마트폰 보시라
오스트리아 주재 한국문화원이 지난해 7월 수도 빈의 그라벤 광장 주변에서 현지 한류 커뮤니티와 함께 연 케이팝 랜덤 플레이 댄스 행사의 한 장면. 주오스트리아 한국 대사관 페이스북 갈무리

올해 마지막 글이다. 언제나 삐딱한 글로 마음을 삐딱하게 해드려 죄송하다는 사과를 먼저 드린다. 제대로 삐딱하지 못해 실망한 분들에게도 사과드린다. 나 역시 칼럼이 이름만큼 삐딱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해를 마감하는 글에서는 제대로 독자들 기분을 삐딱하게 만들고 싶다.

사실 정치 이야기는 뭐든 좋다. 문재인 전 대통령 유튜브에 대한 이야기를 쓸까 했다. 늦었다. 세상 모두가 다 ‘문재인 대통령 이름을 쓴 탁현민 유튜브’에 대한 글을 너무 많이 썼다. 하도 뜨거운 사안이라 여기까지 쓴 문장만으로도 욕하는 댓글이 달릴지도 모른다. 뉴진스 복귀에 대한 글은 다른 매체에 써버렸다. 이 문장만으로도 악플이 달릴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쓸 작정이길래 이렇게 글의 입구가 긴 것이냐고? 한겨레신문 독자 여러분이 공통으로 싫어할 법한 글을 쓰기로 했다. 지나치게 애국적인 글이다. ‘국뽕’으로 가득한 글이다. 기분이 상할 자신이 없으시다면 지금 중단해도 괜찮다.

한국은 너무 잘하고 있다. 위에서 글 읽기를 중단하지 못한 독자는 이 문장에서 크게 후회했을 것이다. 다시 문장을 더 애국적으로 반복하자. ‘오 필승 대한민국’은 너무 잘하고 있다. 적어도 세상의 모든 ‘베스트 10’ 리스트에 의하면 그렇다. 소스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순위로 가득한 리스트에 의하면 말이다. 만약 당신이 하루에 릴스, 틱톡, 유튜브에서 쇼츠를 한시간 이상 보는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만든 쇼츠는 한 영국인 남자가 올린 것이다. 그는 런던 시내 여성들에게 다가가 묻는다.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국적의 남자는요?” 나는 생각했다. 영국에 산 적도 있으니 런던 여성들 취향은 좀 안다. 20년 전 살긴 했지만 안다고 믿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브라질 남자들이 가득하겠네. 첫 여성이 외쳤다. “한국 남자요!” 프랑스, 스페인 등등 대답이 이어졌다. 그래. 한국 남자는 우연히 한번 나오는 거겠지. 아니었다. “한국 남자!” “한국인이요!” “한국 남자요.” 그 영상에서 가장 많은 런던 여성이 가장 섹시하다고 믿는 남자는, 한국 남자였다.

나는 화가 났다. 왜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다. 아니다. 일단은 자랑스럽다. 20년 전 유럽에서 한국 남자는 혈통 좋은 강아지들 바로 아래 계급이었다. 그런 이미지가 끝나 기쁘다. 동시에 근심한다. 이 글을 읽는 남성 독자들도 솔직히 속으로 생각하고 계시듯이, 런던 여자들은 속고 있다. 현실의 못생긴 냉정함을 첫 서울 여행에서 겪게 될 운명이다.

미국 추수감사절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달 26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 중 아이들이 뮤지컬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오는 호랑이 더피와 까치 풍선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나는 곧 이런 종류의 쇼츠를 모조리 찾아보기 시작했다. ‘콘데나스트 트래블러’ 독자 설문 결과 세계 최고의 쇼핑 도시 1위 서울! 요즘은 원화 가치가 폭락하는 중이라 1위 자리는 당분간 굳건하겠다. ‘트라지스 어워드 2025’ 글로벌 제트(Z)세대가 가장 사랑한 도시 1위 서울! 제트세대는 아직 어리고 돈이 없어서 케이(K)-드라마 명지 찾는 여행 같은 걸 할 돈은 없다. 잘 모르고 좋아하는 걸 수도 있다만, 역시 크게 삐딱하게 굴 만한 결과는 아니다. 역시 젠더 대결을 해야겠다.

물론 여기서부터는 명확한 소스 없이 올라온 대부분 쇼츠의 설문 결과다. 아시아 여러 잡지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는? 한국 남자다! 여성 독자는 ‘아시아 안에서는 그나마 경쟁할 만?’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인터넷 매체가 설문으로 뽑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여자는? 한국 여자다! 남성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궁금하다. 너무 솔직해지지는 마시길 바란다.

요즘은 언어 관련 설문도 많다. 한국어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는 언어 중 하나라는 건 아주 애국심을 자동 안마기처럼 자극한다. 그러다 이런 설문에서 잠깐 의아해진다. 세계에서 가장 듣기 좋은 로맨틱한 언어는? 사대주의자인 나는 예측했다.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 아니메’ 많이 본 애들이 일본어를 뽑을 수도 있겠지? 한국어가 1위란다. 아니, 여러분은 평생 한국어가 이렇게 로맨틱한 발음을 가진 언어라는 걸 아셨습니까? 세계인들은 어린 시절 내가 프랑스어 ‘쥬뗌므’를 들으면 느끼던 그 기분을 ‘사랑해’를 들으면 느낀다는 소리다.

이미 밝혔듯이 이 글은 애국적인 글이다. 한국 남자는 세계에서 제일 섹시하다. 한국 여자는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 한국어는 세계 언어 중 가장 로맨틱하다. 서울은 전세계 제트세대가 가장 선망하는 도시다. 여기에 애국을 하나 더 끼얹자면, 2025년 글로벌 파이어파워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5위 군사력의 나라다. 아니, 한국은 얼마 전 성공적으로 아이시비엠(ICBM)…이 아니라 평화로운 민간 우주 로켓 발사에도 성공했다. 그날로 순위가 올라갔을 수도 있다.

우리는 쇼핑하기 좋은 부유하고 강한 나라에서 로맨틱한 언어를 쓰며 섹시한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천국이다. 무릉도원도 이런 무릉도원이 없다. 그러니 여러분은 긍지를 가져야 한다. 한국은 헬조선이 아니다. 헤븐조선이다. 여러분이 가진 국가에 대한 불만은 다 배가 불러서 그런 것이다.

무슨 헛소리냐고? 한국에 와본 적도 없는 외국인이 ‘국뽕’ 좋아하는 한국인 대상으로 조회수 올리려고 만든 쇼츠에 무슨 진실이 담겨 있느냐고? 게다가 한국 남자는 섹시하대서 지금 거울을 봤는데 하나도 안 섹시하다고? 그럴 땐 쇼츠를 열어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콘텐츠를 알고리듬에 더하면 된다. 런던 여성들이 “한국 남자!”를 외칠 때, 당신은 분명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가 된 기분이 들 것이다. 아주 잠깐이나마 들 것이다. 나한테는 통했다. 오늘 하루 거울 대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면 효과는 더 오래 지속될 것이다. 나한테는 분명 통했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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