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제국 왕관’에 음식물 투척... “부자들에게 세금 걷어라”

영국 왕권의 상징인 제국 왕관(Imperial State Crown)에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어라’라고 주장하는 단체가 음식물을 투척하는 사태가 6일 발생했다. AP통신,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런던경찰청은 이날 런던탑에 전시된 제국 왕관 진열장에 애플 크럼블과 노란색 커스터드 크림을 뿌린 시민 단체 ‘권력을 되찾자(Take Back Power)’ 회원들을 붙잡아 재물손괴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위자들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이들은 전시관에 들어가 가방에 담겨 있던 음식물을 꺼내 진열장 유리에 던지거나, 커스터드 액체를 진열장에 반복해서 붓는다. 이들은 그러면서 “민주주의가 무너졌다” “영국은 망가졌다. 우린 권력을 되찾으려 여기 왔다”고 말한다. 다른 관람객들은 놀라서 물러서기도 했다. 애플 크럼블은 으깬 사과와 밀가루, 버터 등을 섞어 만든 영국의 대표적 디저트로, 보통 커스터드 크림과 함께 먹는다.
단체에 소속된 한 19세 학생은 “영국은 우리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찰스 3세 국왕이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나간 바로 그 거리에서 노숙자들이 지나간다”며 “이 나라엔 집 없는 사람보다 빈집이 더 많다. 초부유층(ultra-rich)이 정당한 대가를 치를 때”라고 주장했다.
제국 왕관은 1714년 조지 1세(1714~1727)의 대관식부터 사용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형태와 모양이 조금씩 변해 1838년 빅토리아 여왕(1837~1901) 때 현재 모습을 갖췄다. 1937년엔 좀 더 가볍고 착용하기 편하게 다시 제작됐다. 왕관은 1.1㎏으로 다이아몬드 2868개, 진주 273개, 사파이어 17개, 에메랄드 11개 등으로 장식돼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018년 BBC 다큐멘터리에서 제국 왕관이 너무 무겁다고 했다. 그는 “왕관을 쓰고 연설문을 읽으려고 고개를 숙일 수는 없다”며 “원고를 눈높이로 들어 올려야만 한다. 고개를 숙였다간 목이 부러지거나, 왕관이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다”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그러면서 “왕관에는 이런 단점이 좀 있지만, 그 점만 빼면 꽤 중요한 물건”이라고 했다.

영국 국왕은 대관식 본식(本式) 때 ‘성 에드워드 왕관’(2.2㎏)을 씀으로써 즉위하는데, 이후 대관식이 끝나면 이 제국 왕관을 쓴다. 의회 개회식 때도 제국 왕관을 착용하는 것이 관례다. 국왕 장례식 때 관(棺) 위에 놓이는 것도 바로 이 제국 왕관이다.
이번 일은 정치적인 명분에 주목받으려고 예술 작품과 진귀한 보물 등을 표적으로 삼는 시위의 일환이다. 지난 9월엔 ‘기후 정의’를 주장하는 환경 운동가들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속죄의 성가정 대성전)에 페인트를 뿌렸고, 2022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엔 “지구를 생각하라”고 외치는 한 남성이 케이크를 던졌다.

같은 해 유럽 전역에서 비슷한 범죄가 이어졌다.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있는 고흐의 ‘해바라기’엔 토마토 수프가, 독일 포츠담 바르베리니 박물관에 전시된 모네의 명화 ‘건초더미’에 으깬 감자가 날아들었다. 극렬 환경 운동가들은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이 소장한 페르메이르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 접착제를 바른 손과 머리카락을 문지르거나 토마토 소스를 투척했다.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호주 멜버른 미술관에 전시된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도 비슷한 피해를 봤다.
한편 과거 영국 왕실의 왕궁이자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 ‘유토피아’의 저자인 16세기 정치가 토머스 모어 등이 처형된 감옥으로 잘 알려진 런던탑의 왕실 보석 전시실은 이번 시위 직후 폐쇄됐다가 다시 개방됐다고 영국 가디언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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