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유럽에 “스스로 방위 책임져”…3년 새 딴판 된 미 안보전략

미국 백악관이 5일(현지시각) 공개한 국가안보전략(NSS)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와 명확히 대비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 기조가 드러난다. 새 국가안보전략에서 미국은 한국·유럽 등 동맹국엔 ‘스스로 방위를 책임지라’며 공개 압박하는 반면, 러시아·북한 등 전통적 ‘적성 국가’에 대한 언급은 크게 줄이거나 아예 뺐다.
미국의 전략 변화는 한국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드러난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한국·일본을 중국의 확장을 저지할 핵심 동맹국으로 콕 집어 “방위비를 늘리고, 적을 억제하며, ‘제1도련선’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역량에 집중하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썼다. 이어 “분쟁을 방지하려면 인도·태평양에서의 경계 태세와 방위산업 기반 재건, 우리와 동맹·파트너의 군사 투자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제1도련선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설정한 가상의 해상 경계(일본 규슈-오키나와-대만-필리핀)다. 미국은 이 선을 중국이 해상 전력이 태평양 등으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최일선으로 간주한다. 여기서 가까운 선진국이자 동맹국인 한국·일본이 군사력을 더욱 키워 중국 견제에 동참하라는 게 트럼프 정부의 요구다.
“우리는 제1도련선 어디에서도 침략을 저지할 수 있는 군대를 구축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 군대가 이를 혼자서 수행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며 “동맹국들은 집단 방위를 위해 훨씬 더 많이 지출하고, 더욱 중요하게는 훨씬 더 많이 행동해야 한다”고 썼다. 또 “미국의 외교적 노력은 제1도련선의 동맹국들에 미군이 항구와 시설에 더 많이 접근하도록 허용하고, 그들의 자주 방위 지출을 늘리며, 침략 억제를 위한 역량에 투자하도록 압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백악관은 또다른 핵심 동맹인 유럽을 향해선 군사력과 경제력을 기르라고 더욱 신랄하게 압박했다. 문건은 현재 유럽의 문제점으로 “정치적 자유와 주권을 약화시키는 유럽연합(EU) 및 다른 초국가 기구들의 활동, 대륙을 바꿔놓고 갈등을 낳는 이민 정책, 표현의 자유 검열과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억압, 출산율 급락, 민족 정체성·자기 확신 상실”을 꼽으며, 유럽이 경제적 쇠퇴를 넘어 “문명의 소멸” 위험에 처했다고 비아냥거렸다.
유럽의 이민 정책을 두고는 “장기적으로 보면 몇십년 이내에 특정 나토(NATO) 회원국들은 ‘유럽계가 다수가 아닌 국가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한 번 더 비난했다.
이어 문건은 “우리 목표는 유럽이 현재의 궤도를 바로잡도록 하는 것”이라며, △유럽이 방위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게 함으로써, 제 발로 일어서고 가지런한 주권 국가 그룹으로서 기능하도록 지원할 것 △유럽 국가들 내부에서 유럽의 현재 궤적에 대한 저항을 육성할 것 △유럽 시장을 미국 상품·서비스에 개방할 것 등을 대유럽 정책의 핵심으로 제시했다.

나토에 대해선 “나토가 확장 중인 동맹이라는 인식을 종식시키고, 그것이 현실화되지도 않도록 할 것”을 과제로 꼽았다. 미국이 나토의 핵심 국가로서 집단 방위 체제에 지금보다 많이 기여할 일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는 2022년 민주주의 가치와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이념 지향적 바이든 정부의 국가안보전략과는 거꾸로 된 인식이다. 당시 문건에서 미국 정부는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계속 수호할 것”이라며 핵심 동맹국에 대한 안전 보장 의지를 약속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해서는 “미국이 지난 75년간 강력하고 일관된 방위 태세를 유지해 왔으며, 앞으로도 지역의 안정·평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며 “조약 동맹국인 오스트레일리아·일본·한국·필리핀·타이에 대한 우리의 굳건한 약속을 재확인한다”고 했다.

유럽과 나토를 두고도 “모든 범위에 걸친 글로벌 도전에 대응하는 우리의 기초적 파트너로 남을 것”이라며 “미국은 나토 조약 제5조에 명시된 ‘집단 방위’에 대해 명백하고도 확고히 헌신하고 있으며, 나토 동맹국들과 함께 모든 형태의 공격을 억제·방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대로, 러시아·북한 등에 대한 적대는 트럼프 정부에서 크게 누그러졌다. 바이든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러시아가 “이웃 국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저지른 잔혹하고 이유 없는 전쟁이 유럽의 평화를 산산이 부쉈다”며 안보 위협 세력임을 규정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우크라이나의 “주권·영토 보존을 지원하고 러시아의 침략에 대해 막대한 대가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북한을 향해서도 바이든 행정부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실질적 진전을 이루기 위해 지속적인 외교를 추구하고,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및 미사일 위협에는 확장 억제를 강화하겠다”고 썼다.
반면 트럼프 정부의 문건에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책임을 묻는 표현이 없다. 오히려 “러시아와의 전략적 안정 재구축”을 과제로 꼽았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계획은 언급하지 않은 채 “전후 우크라이나의 재건을 통해 그 국가가 생존 가능한 국가로 남도록 하는 게 미국의 핵심 이익”이라며 “이를 위해선 우크라이나에서 제때 적대 행위를 중단하는 협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빠르게 끝낸 뒤 미국은 재건 사업에서 이익을 취하고, 러시아와는 관계를 안정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날 국가안보전략에선 ‘북한’은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한반도 비핵화 등의 목표도 빠졌다.
다만, 대만에 대해서는 기존 정책을 유지하겠다며 “미국은 대만 해협에서의 어떠한 일방적 현상 변경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바이든 정부 때의 “어느 쪽의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하며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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