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도 2000명은 옵니다" 어묵 국물로 몸 녹이며 줄 선 사람들
[이정미 기자]
지난 11월 29일부터 30일, 주말 이틀간 경주에 다녀왔다. 내 기억 속 경주의 가을은 불국사의 빨간 단풍과 보문단지의 샛노란 은행잎, 첨성대 주변 넓은 들판의 하얀 억새, 천년숲 계림의 깊은 갈색이 어우러진 풍경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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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관전티켓줄 영하의 추위에도 금관전 티켓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긴 줄을 섰다. |
| ⓒ 이정미 |
어묵 국물로 몸을 녹이는 사람, 옥수수와 군밤을 먹으며 시간을 잊는 사람들, 모두가 같은 전시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 모여든 사람들이다. 추워하는 아이를 외투로 감싸 품에 안으며 "얼마나 의미있는 전시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겠어?" 하며 힘을 북돋는 엄마 모습에 미소가 피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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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기와 수막새 여러 가지 토기와 신라의 미소가 돋보이는 얼굴 무늬 수막새 |
| ⓒ 이정미 |
'신라'는 현대와 끊임없이 만나고 있습니다. 경주 시내에 산재한 커다란 능묘들은 고대의 죽음과 현재의 삶이 공존하는 경주 특유의 도시 구조를 보여줍니다. '신라'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현재입니다.
'신라(新羅)'라는 국호는 제22대 지증왕때 정해졌고, 덕업일신(德業日新) 망라사방(網羅四方)에서 '신라'로 불리며, 덕업일신은 변화와 혁신을, 망라사방은 세계화라는 뜻이라고 한다. 과연 국호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고대 국가 신라의 정체성을 읽을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더 좋은 것은 '오래된 것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제1전시실을 들어서면 선사시대 토기들이 정면을 압도하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흙으로 빚은, 투박하고 질박한,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빛깔을 머금은, 실용을 극대화한 그 단순한 아름다움에 몰입하게 된다.
선사시대 사람이 한 줄 한 줄 심혈을 기울여 빗살 무늬를 새겼을 토기가 신비롭다. '토우장식 항아리'에는 다양한 모양의 토우가 장식되어 있어 이야기 거리가 많다. 개구리, 거북이, 오리, 물고기, 사람 등 형상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고, 농경 사회였던 만큼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정신 세계에 이르기까지 상상하는 것도 즐겁다.
경주에 들어서면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얼굴 무늬 수막새'이다. 얼굴 전체가 남아 있었다면 이런 표정이 나왔을까. 오묘하게 깨진 얼굴이 더 멋스럽고 표정도 신비롭게 연출되는 것 같다. 넉넉하고 온화한 미소가 보는 사람도 덩달아 미 소짓게 만드는 이 수막새가 나는 참 좋다. '기마인물형토기'는 뿔잔인데 실제로 마시는 용도로 쓰이지 않았고 의례용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창과 방패를 든 무사와 말, 말에 두른 갑옷 문양이 매우 정교해 감탄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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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림 해자 반월성 해자 경계석에 백로가 미동도 않고 서 있다 |
| ⓒ 이정미 |
"방금 머리 움직였어!"
"살아있는 거 맞아!"
박물관을 나와 첨성대와 천년숲 계림으로 이어지는 길은 걷기에 딱 좋다. 낙엽을 떨군 빈 나뭇가지가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깊은 갈색으로 물든 확 트인 넓은 들판을 눈에 담으며 걷는 것만으로 '힐링'된다. 때 아닌 성수기를 맞은 첨성대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낮 12시 무렵이라 선덕여왕 행차 퍼레이드도 관람하는 행운도 누렸다(낮 12시, 오후 2시에 퍼레이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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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금관 왼쪽부터 교동금관, 서봉총, 금관총, 금령총, 황남대총, 천마총 금관이다. |
| ⓒ 이정미 |
"평일에도 2000명은 옵니다."
극성수기를 맞은 박물관 직원의 고초가 이해되었다. 원래 오는 12월 14일까지 전시 예정이었으나 인기가 너무 많아 내년 2월 22일까지 전시 기간을 연장했다는 설명이었다. 금관전은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이라는 제목으로 APEC 2025 정상회의와 국립경주박물관 개관 80주년을 기념해 열렸다.
이번 특별전은 "신라 금관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지 104년 만에 여섯 점의 금관이 한자리에 모여 전시되는 사상 최초의 자리"라고 한다. 앞으로 이런 귀한 기회가 다시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가슴 콩닥거리며 전시된 6점의 금관과 금허리띠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특별전시관 내부는 온통 검정으로 배경을 꾸몄다. 찬란하고 화려한 황금의 향연이 단연 돋보이도록 디자인 되었다는 생각이다.
어린아이가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교동금관'부터 각 금관에 얽힌 사연과 발굴 과정을 읽으며 시간여행을 하는 것은 정말 흥분되는 일이었다. 약 1500년 전 신라 마립간의 권력과 권위를 금관과 금허리띠에 고스란히 새겨 넣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 예술성을 감히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전시관에는 6점의 금관을 장식한 사슴뿔 모양, 나뭇가지 장식, 드리개, 곱은옥과 달개, 매듭 등을 서로 비교하며 확대하여 관찰할 수 있도록 비디오 자료도 설치되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터치하며 확대하면서 관찰하다 보면, 하나 하나 수작업으로 공들였을 장인의 위대함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본래 회당 150명 한정 30분 관람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순간을 영원 속에 담기 위해 사진도 찍고 동행과 이야기 나누며 살펴보느라 시간은 점점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신라한향' 가득한 솔거미술관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금관전을 관람한 뒤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 부부는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얼마 전 강인욱 교수님의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을 읽은 탓일까. 과거 유물이 단순히 유물로만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솔거미술관'으로 향했다. 솔거미술관은 경주엑스포공원 안에 있다. 엑스포 공원을 산책하듯 오르면 '아사달 조각공원'이 나오고, 맞은편 단아한 건물이 미술관이다. 현장에서 "경주 남산에 머물며 작업해온 '한국화의 거장' 박대성 화백이 작품 기증 의사를 밝히면서 건립이 추진되었고, 신라시대 화가 솔거의 이름을 따 2015년에 문을 열었다"는 설명을 읽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시 주제는 '신라한향'(신라에서 펼쳐지는 한국의 향기)전이다. 김민, 박선민, 박대성 작가와 송천 스님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 공간 자체가 예술성이 물씬 풍긴다. 작품들도 신라의 문화, 미술을 주제로 하고 있어 관람 내내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졌다. 한쪽 벽면을 통창으로 액자처럼 구성해 밖의 연못과 자연 경관이 그림처럼 펼쳐지도록 디자인한 포토존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것도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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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대성 화백의 대작과 포토존 박대성 화백의 대작에는 단군신화에서 고구려 벽화, 금강산, 훈민정음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화의 기원이 장대하게 표현되어 있다. |
| ⓒ 이정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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