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도 2000명은 옵니다" 어묵 국물로 몸 녹이며 줄 선 사람들

이정미 2025. 12. 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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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전 특별전시 위해 국립 경주박물관 찾은 관람객들... 신라 천년의 향기를 만끽하다

[이정미 기자]

지난 11월 29일부터 30일, 주말 이틀간 경주에 다녀왔다. 내 기억 속 경주의 가을은 불국사의 빨간 단풍과 보문단지의 샛노란 은행잎, 첨성대 주변 넓은 들판의 하얀 억새, 천년숲 계림의 깊은 갈색이 어우러진 풍경 안에 있다.

단풍 명소가 많지만, 가을이 되면 버릇처럼 경주를 떠올리고 그곳에 가고 싶어진다. 11월 셋째 주 무렵이 단풍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시기지만, 이번 여행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행사 기간 동안 화제가 되었던 국립 경주박물관의 금관전 관람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겸사겸사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미술관도 돌아볼 생각이었다.
▲ 금관전티켓줄 영하의 추위에도 금관전 티켓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긴 줄을 섰다.
ⓒ 이정미
오전 9시 30분부터 금관전 특별 전시가 시작되니 30분 정도 줄 설 생각으로 서둘렀다(지난 11월 17일부터 온라인 예약(회당 70명 한정)을 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행사가 끝난 지 한 달 정도 지났으니 혼잡하지 않겠지' 생각했는데 웬걸, 벌써 줄이 200미터는 되어 보였다. 초등학생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가족 단위 관람객, 다양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어묵 국물로 몸을 녹이는 사람, 옥수수와 군밤을 먹으며 시간을 잊는 사람들, 모두가 같은 전시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 모여든 사람들이다. 추워하는 아이를 외투로 감싸 품에 안으며 "얼마나 의미있는 전시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겠어?" 하며 힘을 북돋는 엄마 모습에 미소가 피어 올랐다.

신라역사관 입구에서 나를 압도한 것
▲ 토기와 수막새 여러 가지 토기와 신라의 미소가 돋보이는 얼굴 무늬 수막새
ⓒ 이정미
30분 정도 줄을 서서 낮 12시30분 관람 티켓을 받았다. 금관전 관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국립경주박물관 전시실을 하나 하나 둘러보기로 했다. 경주박물관 관람은 아주 오랜만이다. 먼저 신라역사관에 들어섰다. 입구에 커다란 안내 문구가 시선을 붙잡았다.
'신라'는 현대와 끊임없이 만나고 있습니다. 경주 시내에 산재한 커다란 능묘들은 고대의 죽음과 현재의 삶이 공존하는 경주 특유의 도시 구조를 보여줍니다. '신라'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현재입니다.

'신라(新羅)'라는 국호는 제22대 지증왕때 정해졌고, 덕업일(德業日新) 망사방(網羅四方)에서 '신라'로 불리며, 덕업일신은 변화와 혁신을, 망라사방은 세계화라는 뜻이라고 한다. 과연 국호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고대 국가 신라의 정체성을 읽을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더 좋은 것은 '오래된 것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제1전시실을 들어서면 선사시대 토기들이 정면을 압도하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흙으로 빚은, 투박하고 질박한,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빛깔을 머금은, 실용을 극대화한 그 단순한 아름다움에 몰입하게 된다.

선사시대 사람이 한 줄 한 줄 심혈을 기울여 빗살 무늬를 새겼을 토기가 신비롭다. '토우장식 항아리'에는 다양한 모양의 토우가 장식되어 있어 이야기 거리가 많다. 개구리, 거북이, 오리, 물고기, 사람 등 형상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고, 농경 사회였던 만큼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정신 세계에 이르기까지 상상하는 것도 즐겁다.

경주에 들어서면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얼굴 무늬 수막새'이다. 얼굴 전체가 남아 있었다면 이런 표정이 나왔을까. 오묘하게 깨진 얼굴이 더 멋스럽고 표정도 신비롭게 연출되는 것 같다. 넉넉하고 온화한 미소가 보는 사람도 덩달아 미 소짓게 만드는 이 수막새가 나는 참 좋다. '기마인물형토기'는 뿔잔인데 실제로 마시는 용도로 쓰이지 않았고 의례용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창과 방패를 든 무사와 말, 말에 두른 갑옷 문양이 매우 정교해 감탄이 절로 난다.

신라역사관과 미술관에서는 금관을 비롯한 다양한 국보와 보물, 미술 문화를 감상할 수 있다. 금관전 특별 전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적인 만큼 박물관은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개인 취향과 관심에 따라 몇 가지 골라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좋은 관람 방법이다. 상설전시관 맞은편에서는 한미, 한중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장소를 일반인에 공개하고 있다. 관세 협상이 이루어진 역사적 장소에서 기념 촬영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
▲ 계림 해자 반월성 해자 경계석에 백로가 미동도 않고 서 있다
ⓒ 이정미
경주 곳곳이 좋지만 구비구비 반월성 언덕을 따라 조성된 고요한 해자를 바라보며 느리게 걷는 것도 추천한다. 계절에 따라 그려내는 풍경과 서정이 언제나 좋은 곳이다. 백로 한 마리가 동상처럼 미동도 않고 서 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이 신기해 카메라를 들이댄다.

"방금 머리 움직였어!"
"살아있는 거 맞아!"

박물관을 나와 첨성대와 천년숲 계림으로 이어지는 길은 걷기에 딱 좋다. 낙엽을 떨군 빈 나뭇가지가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깊은 갈색으로 물든 확 트인 넓은 들판을 눈에 담으며 걷는 것만으로 '힐링'된다. 때 아닌 성수기를 맞은 첨성대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낮 12시 무렵이라 선덕여왕 행차 퍼레이드도 관람하는 행운도 누렸다(낮 12시, 오후 2시에 퍼레이드가 있다).

드디어 만난 금관전 특별전시회
▲ 신라금관 왼쪽부터 교동금관, 서봉총, 금관총, 금령총, 황남대총, 천마총 금관이다.
ⓒ 이정미
드디어 12시 30분이 되어 금관전 전시관 앞에 다시 줄을 섰다.

"평일에도 2000명은 옵니다."

극성수기를 맞은 박물관 직원의 고초가 이해되었다. 원래 오는 12월 14일까지 전시 예정이었으나 인기가 너무 많아 내년 2월 22일까지 전시 기간을 연장했다는 설명이었다. 금관전은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이라는 제목으로 APEC 2025 정상회의와 국립경주박물관 개관 80주년을 기념해 열렸다.

이번 특별전은 "신라 금관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지 104년 만에 여섯 점의 금관이 한자리에 모여 전시되는 사상 최초의 자리"라고 한다. 앞으로 이런 귀한 기회가 다시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가슴 콩닥거리며 전시된 6점의 금관과 금허리띠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특별전시관 내부는 온통 검정으로 배경을 꾸몄다. 찬란하고 화려한 황금의 향연이 단연 돋보이도록 디자인 되었다는 생각이다.

어린아이가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교동금관'부터 각 금관에 얽힌 사연과 발굴 과정을 읽으며 시간여행을 하는 것은 정말 흥분되는 일이었다. 약 1500년 전 신라 마립간의 권력과 권위를 금관과 금허리띠에 고스란히 새겨 넣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 예술성을 감히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전시관에는 6점의 금관을 장식한 사슴뿔 모양, 나뭇가지 장식, 드리개, 곱은옥과 달개, 매듭 등을 서로 비교하며 확대하여 관찰할 수 있도록 비디오 자료도 설치되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터치하며 확대하면서 관찰하다 보면, 하나 하나 수작업으로 공들였을 장인의 위대함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본래 회당 150명 한정 30분 관람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순간을 영원 속에 담기 위해 사진도 찍고 동행과 이야기 나누며 살펴보느라 시간은 점점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신라한향' 가득한 솔거미술관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금관전을 관람한 뒤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 부부는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얼마 전 강인욱 교수님의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을 읽은 탓일까. 과거 유물이 단순히 유물로만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솔거미술관'으로 향했다. 솔거미술관은 경주엑스포공원 안에 있다. 엑스포 공원을 산책하듯 오르면 '아사달 조각공원'이 나오고, 맞은편 단아한 건물이 미술관이다. 현장에서 "경주 남산에 머물며 작업해온 '한국화의 거장' 박대성 화백이 작품 기증 의사를 밝히면서 건립이 추진되었고, 신라시대 화가 솔거의 이름을 따 2015년에 문을 열었다"는 설명을 읽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시 주제는 '신라한향'(신라에서 펼쳐지는 한국의 향기)전이다. 김민, 박선민, 박대성 작가와 송천 스님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 공간 자체가 예술성이 물씬 풍긴다. 작품들도 신라의 문화, 미술을 주제로 하고 있어 관람 내내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졌다. 한쪽 벽면을 통창으로 액자처럼 구성해 밖의 연못과 자연 경관이 그림처럼 펼쳐지도록 디자인한 포토존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것도 추억이 된다.

이밖에도 미술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건축가 유현준씨가 설계 디자인해 더욱 유명해진 '오아르 미술관'도 권하고 싶다. 미술관 통창으로 바라보는 '대릉원' 전경에 가슴이 뻥 뚫리고, 소파에 자리 잡고 앉아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APEC 행사가 새삼 고마운 이유는 '경주가 다시 살아난다'는 느낌 때문이다. 거리가 먼 수도권에서도 수고를 마다 않고 경주를 방문하고,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자랑스러워하는 계기가 되었다.
▲ 박대성 화백의 대작과 포토존 박대성 화백의 대작에는 단군신화에서 고구려 벽화, 금강산, 훈민정음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화의 기원이 장대하게 표현되어 있다.
ⓒ 이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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