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시 마을, AI 문명 중심에서 18세기를 산다[손호철의 미국사 뒤집어보기](24)

2025. 12. 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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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거부해 걷거나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아미시 마을. 손호철 제공

“아니 신호등이 왜 꺼졌지!” 2000년 안식년을 맞아 캘리포니아로 갔는데, 수익을 늘리기 위한 전기회사들의 농간으로 단전 사태가 벌어졌다. 도로 신호등이 모두 꺼지고 병원까지 기능이 마비됐다. 2025년 4월 이상고온으로 전압이 갑자기 올라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단전 사태가 발생해 수백만명이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현대사회에서 전기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가 없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과연 자가용만이 아니라 대중교통을 포함해 자동차가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있을까? 이제 직장, 마트 등 우리의 생활 반경이 넓어지면서 자동차가 없는 삶은 전기가 없는 삶만큼이나 생각할 수 없게 됐다.

필라델피아에서 서쪽으로 100㎞ 정도를 달려가면 랭커스터라는 마을이 나온다. 마을이 가까워지자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마차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관광용 마차가 아니라 일상 교통수단이다. 워낙 큰 나라고 자동차 보급이 일반화돼 시골에서 길을 걷는 사람을 볼 수 없는 것이 미국인데,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른 사람이 땀을 뻘뻘 거리며 길을 걷고 있다. 이 지역이 아미시(Amish) 마을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거부해 걷거나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아미시 마을. 손호철 제공

재세례파로 전기·차 등 현대문명 거부

17세기 스위스에서 생긴 개신교 종파인 아미시는 퀘이커와 마찬가지로, 유아 세례를 반대하고 사리 분별을 하고 스스로 신앙을 판단할 수 있는 성인이 된 후에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믿는 재세례파다. 퀘이커처럼 평화주의를 신봉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현대문명을 받아들이는 퀘이커와 달리 아미시는 현대문명, 특히 전기와 내연기관을 가진 운송수단을 거부하고 검소하고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고집한다. 우리도 전통 한복을 입고 유교 예절을 실천하는 청학동이 있지만, 이들은 현대문명을 거부하지 않는다.

아미시는 미국 내에서 독일 이민이 많은 펜실베이니아와 오하이오에 주로 살고 있다. 이들은 교리에 따라 피임하지 않고 농사 등에 기계를 대신할 노동력이 많이 필요해 5~10명의 아이를 낳는 대가족이 흔하다고 한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의 출산율과 비슷한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어 1920년 5000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2020년 35만명으로 늘어났다. 100년 사이에 70배로 늘어난 것이다. 강원도의 최대 도시인 원주, 경남 진주와 비슷한 인구가 펜실베이니아에서 전기도 쓰지 않고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높은 출산율 때문에 아미시는 2050년에는 근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아미시의 검소한 복장. 허리띠를 하지 않는다. 손호철 제공

미국에 전기도 쓰지 않고 옛 방식을 고수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85년 개봉된 영화 <위트니스>를 통해서였다. 해리슨 포드가 형사로 나와 살인사건을 목격한 소년과 엄마를 보호하면서 생기는 이야기로, 2개 부문에서 아카데미상을 받은 작품이다. 소년과 엄마가 아미시로, 아미시 마을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영화를 보고 그들의 삶에 매료됐지만 이후 잊고 있었다. 미국 기행을 준비하면서 이 마을이 꼭 방문해야 하는 필라델피아와 게티즈버그 중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방문하기로 했다.

‘과잉 문명화’ 속 우리가 배워야 할 대안적 삶

‘아미시 마을을 어떻게 들여다보지’ 걱정했는데, 자신들의 생활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공개하는 곳이 있어 그곳을 방문했다. “어서 오십시오.” 안내자는 나를 전형적인 아미시 가정집으로 안내했다. 검소한 좁은 방에는 옷을 만드는 재봉틀이 있고, 벽에는 영화 등에서 본 검은색의 전형적인 아미시 옷들이 걸려 있었다.

아미시의 부엌에는 흔한 가스레인지, 전기 오븐 등을 찾아볼 수 없다. 손호철 제공

“아미시 남자들은 바지 입을 때 벨트를 하지 않고 요즈음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멜빵을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우리 조상들이 유럽에서 종교적 탄압을 받아 미국에 이민을 왔는데, 버클 달린 벨트가 우리를 탄압하던 군인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옷은 문양이 없는 단순한 검정이나 청색 등 단색 옷을 입습니다.”, “아미시 남자들은 대부분 턱수염 기르던데 그것도 이유가 있습니까?”, “결혼한 남자들은 턱수염을 기르는데 결혼한 남자라는 표시이자, 하느님에 대한 맹세 같은 것입니다. 대신 군인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콧수염은 없어야 합니다.”

아미시의 세탁기는 전기를 쓰지 않고 공기 압축기로 작동한다. 손호철 제공

부엌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스레인지나 냉장고는 전혀 보이지 않고, 낡은 화덕이 하나 있었다. 그래도 이들 나름대로 편리하게 살기 위한 지혜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세탁기였다. “아니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세탁기를 사용합니까?”, “전기는 사용 안 하지요. 보세요, 어디 전기선이 있나요?” 정말 선이 없었다. “그럼, 어떻게 세탁기를 돌리나요?”, “공기 압축기로 돌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외부로부터 전선에 의해 공급되는 전기는 반대하지만, 배터리를 이용하는 도구들은 사용합니다.”, “그러면 내연기관이 없는 전기차는 허용합니까?”, “안 됩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생활을 공동체 내에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차는 이동 거리가 멀어서 공동체를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부모들의 선택으로 이 같은 삶은 사는 것은 문제 아닌가요? 아미시 사회가 2세들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18세 성인이 되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럼스프링가(Rumspringa)’라고 공동체를 떠나 외부 세계를 경험할 기회를 줍니다. 거기 나가서 그런 삶이 좋으면 거기서 살면 됩니다. 아미시 사회가 좋으면 돌아와 세례를 받고 영원히 우리의 일원이 되는 것이지요.”

아미시 농장의 공작실에서 농기구를 직접 만들어 쓴다. 손호철 제공

안내자의 설명이 끝나고 나는 농장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었다. 농장은 나를 200~300년 전으로 돌아가게 만들어줬다. 대장간, 이들이 만든 각종 농기구, 장 보러 갈 때 타고 나가서 뒷자리를 빼서 장 본 것들을 실어 오는 마차 등을 보고 나자, 나무로 지은 작은 검문소 같은 건물이 나타났다. 무언가 궁금해 설명을 읽어보니, 동네에서 함께 사용하던 ‘공중전화’ 부스였다.

나는 무신론자로 이들의 믿음에 공감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 공동체의 폐쇄성이 강간 등 성범죄를 은폐, 방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하지만 내연기관으로 상징되는 탄소 문명이 지구온난화를 초래해 지구를 멸망의 위기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을 보면, 내연기관 거부 등 이들의 문명 거부는 ‘과잉 문명화’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가 한 번 돌아보고 배워야 할 대안적 삶이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대신하고 있는 ‘AI 초과학 문명 시대’에, 아프리카도 아니고 미국의 심장부에서, 벨트까지 하지 않은 채 전기가 생기기 전인 18세기의 삶을 사는 수십만의 아미시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기적이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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