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굶더라도···” 파지 주워 모은 2억4000만원 조용히 내놓은 89세 할머니
“아이들,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일 없길”

평생 행상으로 생계를 이어오며 파지와 빈 병을 주워 모은 돈 2억4000만원을 고향 학생들에게 기탁한 ‘기부 천사’가 있다. 전북 정읍시 칠보면 수청리 출신 박순덕 할머니(89)다. 가난 때문에 학업의 꿈을 접어야 했던 노인의 숭고한 나눔은 지역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박 할머니의 두 손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배어 있다. 거칠고 마른 손바닥은 평생 가난과 노동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훈장이다. 그는 2021년부터 올해까지 장학금을 꾸준히 기탁했고, 누적액은 2억4000만원에 이른다. 생계를 가까스로 꾸려온 노년의 삶을 떠올리면 더욱 뜻깊은 금액이다.
그의 나눔을 지탱한 것은 어린 시절 경험한 결핍이었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박 할머니는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운 서러움이 뭔지 내가 안다”며, 고향 후배들만큼은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랐다.
2017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는 새벽마다 손수레를 끌고 파지와 빈 병을 모았다. 기초생활수급비 100만원으로 생활하면서도 하루 6만원 남짓한 수입을 빠짐없이 저축하며 “내가 굶더라도 아이들 공부만큼은 돕고 싶었다”는 마음을 실천했다.
첫 기부는 2021년 6월 칠보면에 3550만원을 전달하면서 시작됐다. 이듬해 5월에는 1억500만원을 쾌척해 지역 사회를 놀라게 했다. 나눔은 계속 이어져 2024년 4월 3000만원, 올해 4월 2600만원을 추가로 기탁했다. 지난 7월 ‘희망 2025 캠페인 유공자 시상식’에서 전북특별자치도지사 표창을 받은 뒤에는 수상의 기쁨을 고향과 나누겠다며 4000만원을 더 보탰다. 그의 도움으로 최근 5년간 칠보면 학생 168명이 장학금을 지원받았다.
칠보면은 박 할머니의 깊은 뜻을 기리기 위해 2023년부터 매년 그를 초청해 장학증서 수여식을 열고 있다. 한 사람의 선한 영향력이 지역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박 할머니는 “평생을 아끼며 살았는데, 나누고 나니 오히려 내가 더 부자가 된 기분”이라며 “남은 시간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고향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학수 정읍시장은 “박순덕 어르신의 숭고한 뜻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며,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며 “기탁된 장학금은 학생들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는 데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창효 선임기자 c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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