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한대 못 띄우던 이스타항공 살린 VIG의 '뚝심' 투자 [PEF 밸류업 사례탐구]
논리적인 숫자로 AOC 재발급 준비
더블린에선 항공기 확보 위한 담판
지난해 매출 세 배 늘어… 올해 흑자 전환 기대

2023년 이스타항공은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코로나19 여파에 창업주의 정치적 리스크까지 더해져 회사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다. 재무상태는 완전자본잠식에 빠졌고, 당장 운영자금이 없어 3년째 항공기를 한 대도 띄우지 못하고 있었다. 쓰러지기 직전인 회사를 VIG파트너스가 인수하겠다고 나섰을 때 기대보단 우려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이 많았다.
항공업 성장성 확신한 VIG
모두가 망설일 때 VIG는 확신이 있었다. 우선 항공업 자체의 성장성을 높게 봤다. VIG는 인수할 타깃을 정하기 전 투자해볼 만한 산업을 선정하는 작업을 먼저한다. 상조(프리드라이프), 뷰티(비올), 주차장(하이파킹) 등 VIG가 지금까지 진행한 주요 투자도 해당 산업을 선정한 뒤 그 산업에서 투자할 만한 회사를 물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항공 산업을 VIG가 처음 투자처로 낙점한 건 2016년이다. VIG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의 지리적 특성상 항공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고, 터미널 증설로 인천공항이 도쿄 나리타공항과 홍콩 국제공항이 맡고 있던 동북아 허브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봤다. 무엇보다 이스타항공은 '김포-제주' '인천-도쿄' '인천-상해' 등을 오가는 주요 노선을 갖고 있었고, 인력 풀도 탄탄했다.
VIG에서 이스타항공 인수 작업 실무를 책임진 배종현 상무는 "이스타항공이 처한 재무적 어려움만 해소하고 정상화하면 기업가치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이스타항공 인수를 추진한 VIG는 우선 기존 대주주 설득 작업부터 시작했다. 기존 대주주였던 골프장 관리·부동산 임대 업체 성정은 이미 1000억원 가량을 이스타항공에 투입했지만 회사를 살려내지 못하고 있었다. '본전' 생각을 하다간 남은 지분 가치도 '0'으로 수렴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성정을 설득해 VIG는 구주 인수 가격은 최대한 낮추고 신주를 투입해 이스타항공에 유동성을 투입했다. VIG는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는 데 들어간 1450억원 중 구주 인수에 350억원, 나머지 1100억원은 신주 인수에 사용했다.
인수 전부터 AOC 재발급 준비
VIG는 인수 실사를 하는 단계부터 이스타항공의 항공운항증명(AOC) 재발급을 위한 사전 작업을 동시에 시작했다. 이스타항공의 AOC는 이미 3년여 전 효력이 중단된 상태였다. 만약 AOC 재발급에 실패하면 VIG는 비행기도 띄울 수 없는 항공사를 사게 되는 꼴이었다. 인수 전부터 VIG가 AOC 재발급에 사활을 건 이유다.
VIG는 AOC 재발급을 위해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숫자로 얘기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과거 실적 및 경쟁사 실적 추이를 기반으로 각 노선별로 월별, 분기별, 연도별 목표 실적 계획을 꼼꼼하게 제시했다. 회사의 영업 상황에 따라 VIG가 증자 등 추가적인 재무 지원을 하겠다는 계획도 담았다. 배 상무는 "단기 차익을 노리고 빠져나갈 투자자가 아니라 회사를 확실하게 정상화할 '진짜' 주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인수 실사 작업이 한창 이어지던 2022년 12월 크리스마스 휴가까지 반납하고 꼬박 밤을 새워 AOC 재발급 작업을 준비한 VIG는 결국 이스타항공 인수를 마무리한 지 약 한 달여 만에 AOC 재발급에 성공했다. 이스타항공이 AOC 재발급을 위해 국토교통부에 준비해 제출한 서류만 사과 상자로 두 상자에 달했다는 후문이다.
항공기 리스사도 직접 설득
AOC 재발급이라는 큰 산을 넘었지만 VIG 앞엔 더 큰 산이 남아있었다. 당시 이스타항공이 소유한 항공기는 세 대뿐이었다. 주요 노선을 운영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3년 동안 비행기를 띄우지 못했던 이스타항공을 믿고 비행기를 빌려줄 항공기 리스사도 당연히 없었다. 2023년 말까지 주요 노선 운항을 재개하지 않으면 노선권은 소멸될 위기였다.
VIG 실무팀은 항공기 리스사들의 본사가 있는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곧장 날아갔다. 더블린에서 열리는 항공기 리스사 콘퍼런스에 참여해 하루에 열 곳이 넘는 리스사를 만나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재무 전문가인 리스사들과도 VIG는 숫자로 소통했다. 이스타항공이 지난 3년간 운항을 못한 건 사실이지만 VIG가 신규 자금을 넣고, 경영을 맡으면 달라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 설득했다. 배 상무는 "탈진 직전까지 리스사들을 만나 설득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정상화 기반을 마련한 이스타항공은 코로나19가 끝난 뒤 보복 여행 수요를 타고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갔다. 인수 직후 세 대뿐이었던 항공기는 지난해 말 15대, 올해 말 20대를 넘어 내년엔 24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저비용항공사(LCC) 간의 가격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에 항공기를 공격적으로 확대하며 이스타항공의 재무구조가 다시 취약해지기도 했지만 VIG는 AOC를 재발급받을 때 했던 약속처럼 올해만 유상증자로 이스타항공에 7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재무구조를 탄탄하게 구축하고,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이스타항공의 지난해 매출은 4612억원으로 전년(1412억원) 대비 세 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 예상 매출은 6200억원, 내년 매출은 8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9년부터 6년간 이어진 영업적자의 늪에서도 올해 벗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배 상무는 이스타항공 인수 이후 AOC 재발급 과정을 거쳐 이스타항공이 3년 만에 다시 비행기를 띄운 날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날 비행기를 몰았던 기장이 VIG가 회사를 인수해 정상화한 덕에 본인이 다시 회사에 복직하게 됐고, 비행기를 몰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의 기내 안내 방송을 했다"며 "모험자본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 한번 느꼈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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