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슈퍼리치 몰리는 홍콩] '富 승계' 걸림돌 없앤 홍콩, 패밀리 오피스 글로벌 수요 흡수

전 세계적으로 ‘슈퍼리치(초고액 자산가)’ 의 자산 관리 수요가 ‘패밀리 오피스(FO)’로 옮겨가고 있는 가운데, 홍콩이 그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고액 자산가가 떠나고 있는 한국과 달리, 홍콩은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투자 이민 제도 등을 내세워 아시아 대표 ‘패밀리 오피스 허브’로 도약 중이다.
11월 25일 홍콩투자청에 따르면, 홍콩은 지난 9월 말 누적 기준 200개 이상의 패밀리 오피스 유치에 성공했다. 홍콩 정부는 지난 2022년 정책 연설에서 올해 말까지 4년간 최소 200개의 패밀리 오피스를 유치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올해가 3개월가량 남은 시점에서 일찍이 목표치를 달성한 것이다.
패밀리 오피스는 초고액 자산가(UHNWI)와 고액 자산가(HNWI)의 자산 관리는 물론, 세무·상속, 승계 계획, 가문의 가치 보존, 후계자 교육 등을 아우르는 조직이다. 세계 최대유통체인 월마트의 월턴 가문이 운영하는 월턴 엔터프라이즈 등 서양의 초고액 자산가는 일찍이 패밀리 오피스를 운영해 왔다. 홍콩에는 2023년 말 기준 2700개가 넘는 싱글 패밀리 오피스가 설립돼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5000만달러(약 735억원)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는 초대형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각 가문의 특성에 맞춘 맞춤형 금융 서비스가 필요하기 때문에, 패밀리 오피스 수요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에는 약 8030개의 패밀리 오피스가 있는데, 2019년 대비 31% 증가했다. 딜로이트는 2030년에는 패밀리 오피스가 1만720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패밀리 오피스 친화적인 홍콩
홍콩은 아시아와 유럽 어디든 연결된다는 지리적 강점이 있는 데다, 100년 가까이 세계 3대 금융 허브로 자리를 지켜온 만큼 ‘금융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지난 1~10월 홍콩 증시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약 260억달러(약 38조원)를 조달하며, IPO 조달액 기준 글로벌 1위를 기록했다.
이 같은 활황은 한국 금융권의 관심도 끌었다. 한국 금융기관은 올해 첫 5개월 동안 홍콩 증시에서 1조5000억홍콩달러(약 283조원) 이상을 거래했으며 한국계 투자은행은 여러 홍콩 IPO에 코너스톤(기관 투자자가 일정 물량을 장기 보유하기로 약정하고 주식을 배정받는 제도) 투자자로 참여했다.
글로벌 투자자는 최근 홍콩을 거점으로 중국의 인공지능(AI), 첨단 기술 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홍콩은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에 대한 주요 투자 관문 역할을 하며 다양한 자산군에 대한 투자 자유도와 전 세계 자산에 대한 접근성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같은 전략적 위치가 홍콩을 ‘글로벌 패밀리 웰스 허브’로 부각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홍콩은 자산가에게 유리한 세금 체계를 갖추고 있다. 홍콩은 상속세·배당소득세·법인세가 사실상 ‘0%’다. 투자 금액이 200만홍콩달러(약 3억8000만원)이상이면서 2억4000만홍콩달러(약 453억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싱글 패밀리 오피스는 법인세를 면제받는다. 부(富)의 승계와 자산 관리가 주목적인 패밀리 오피스 운영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패밀리 오피스 설립도 간단하다. 홍콩 증권선물조례상 규제 활동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패밀리 오피스를 설립할 때 별도의 인가나 사전 승인이 필요하지 않다. 홍콩에서는사전 승인 없이도 패밀리 오피스가 곧바로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최소 인원 요건인 2명만 충족하면 된다. 설립 후 최소 1년 후 세금 혜택이 적용되고 최소 1명 이상의 가문 외 인력을 고용해야 하는 싱가포르와 대조적이다.
더구나 홍콩은 지난해부터 패밀리 오피스 설립에 필수적인 투자 이민 프로그램인 자본투자입주제도(CIES)를 대대적으로 개편해 애초 2년이던 투자 유지 기간을 6개월로 낮췄다. 6개월간 최소 3000만홍콩달러(약 57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지하면, 출입국 관리국의 승인을 통해 배우자와 18세 미만 자녀도 홍콩에 함께 거주할 수 있다. 2억4000만홍콩달러 이상 자산을 보유한 싱글 패밀리 오피스가 세제 혜택 조건을 충족하면, 최대 8명의 가족이 CIES를 통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홍콩으로 몰리는 자산가들
이같은 이점에 수많은 자산가가 이미 홍콩으로 몰리는 중이다. 글로벌 투자 이민 컨설팅사 헨리앤드파트너스(Henley & Partners)의 6월 보고서에 따르면, 100만달러(약 15억원) 이상의 유동자산을 가진 고액 자산가 중 올해 홍콩으로 유입이 예상되는 인원은 600명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1년간 2400명의 고액 자산가 순 유출이 예상된다. 헨리앤드파트너스는 홍콩과 맞닿은 중국 선전의 급성장하는 첨단 기술 기업 고소득 임원이 홍콩에 생활 기반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고액 자산가의 홍콩 유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사실 홍콩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금융 허브’로서 부를 축적한 자산가가 패밀리 오피스를 설립해 온 도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약 100년 전 작은 양복점에서 시작해 현재 글로벌 럭셔리 호텔 그룹으로 성장한 하릴렐라호텔그룹(Harilela Hotels)이다. 약 100명의 가족 구성원을 둔 하릴렐라호텔그룹은 일찍이 패밀리 오피스를 구축해 자산 관리와 승계를 체계적으로 진행해 왔다.
이 그룹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애런하릴렐라는 “세대가 거듭될수록 의견 조율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사회와 기업 수준에서 견고한 지배구조를 도입하는 것이 조화와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핵심”이라며 “우리는 그 해답을 홍콩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주얼리 및 부동산 사업을 영위하는 KGK그룹 역시 가족 사업의 지속성을 위해 1990년 홍콩으로 사업을 옮겼다. 산제이 코타리 그룹 부회장은 “우리는 세대 간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부의 계획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 “홍콩의 법률 및 금융 시스템은 상속 및 승계 계획을 구조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며 가문의 비즈니스와 자산의 무결성을 유지하면서도 미래 성장을 촉진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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