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세상만사 <44>] 미국의 핵전략 변화와 커지는 동맹 안보 불확실성

1961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에게 “뉴욕을 파리와 맞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미국이 유럽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을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미국은 소련의 핵 공격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후 64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적대 세력이 새로운 무기 체계를 획득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핵 확산 금지 정책 배경
미국의 핵 정책은 확산 금지 원칙이었다. 시작은 1964년 중국의 핵 실험이었다. 중국이 다섯 번째로 핵무기 보유국이 되자 당시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은 핵 확산의 결과를 연구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는 1966년 핵무기의 추가 확산을막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미국의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는 결론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은 이후 냉전 기간 동맹국에 핵무기를 보유하는 데 수반되는 비용과 위험을 감내하는 것보다 미국의 보호를 받는 것이 낫다고 설득하는 방법으로 이런 어려움을 상당 부분 해결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과 대만이 핵무장을 시도했을 때 미국이 가했던 다양한 압박은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미국은 핵 확산 억제를 위해 소련을 끌어들였다. 적대국이지만 핵무기의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두 나라는 힘을 합쳤다. 1970년 발효된 핵확산금지조약(NPT)은 191개국이 참여하는 가장 효과적인 군비 통제 협정이 됐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핵무기 억제를 위한 조치는 계속됐다. 미국과 러시아는 대규모로 핵무기를 감축했고 NPT는 무기한 연장됐다.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이 체결됨에 따라 핵 확산 금지와 핵군축에 대한 흐름은 더욱 강력해졌다. 1980년대 중반 7만 개에 이르던 핵탄두 수는 현재 1만2500개로 줄었다.
새로운 핵 군비 경쟁 시대 도래
인류는 핵무기 공포에서 벗어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2010년 체결된 미국과 러시아 간의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은 2026년 2월 만료될 예정이지만, 이를 대체할 협상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3개월 후부터 미· 러 양국은 50년 만에 처음으로 핵무기 규모에 제한받지 않을 예정이다. 보복을 위한 300개 내외의 소규모 핵전력 유지를 선택해 왔던 중국은 최근 핵탄두 수를 1500개까지 늘리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각각 50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미·러와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다. 삼자 간 협상을 통한 핵군축 체계 구축이 시급하지만, 현실은 유례없는 삼자 핵 군비 경쟁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미국은 이란에 대한 최초의 직접적인 공격을 통해 이란 핵 개발을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명백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맹국에 대한 안전보장 의무를 폐기하려는 움직임도 점차 강해지고 있다. 미국은 유럽 방위 부담을 유럽 동맹국에 전가하고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도를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를 종식시키는 것이 현재 미국의 최우선 전략이 되고 있다.
바뀌고 있는 글로벌 핵 확산 억제 시스템
불안감을 느낀 여러 국가는 재래식 군사력 강화는 물론 핵무기 보유를 포함한 다양한 수단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유럽이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스스로 안보를 확보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유럽 내 핵전력의 취약성이다. 프랑스와 영국이 소규모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것으로 러시아를 견제하기는 어렵다. 결국 독일의 핵무장 여부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독일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홀가분하게 유럽을 떠날 수 있고 유럽은 스스로를 지킬 수단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2025년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달성’ 할 때가 왔음을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재래식 군비 확충을 통한 억제력 확보는 오랜 시간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억제력 제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차라리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단기간에 억제력을 확보하고 비용 지출을 억제할 수 있다는 논리가 최근 미국에서 부상하고 있다.
아시아의 경우 유럽과 달리 미국이 계속 안보 공약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미국이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 압도적인 조선 능력을 기반으로 중국 해군은 급성장하고 있으며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미국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겼던 항공모함에 기반한 대양 작전 능력을 중국은 빠르게 확보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자국의 핵전력만으로 중국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품고 있다. 차라리 아시아 동맹국이 핵무기를 보유할 경우 중국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일차적으로 일본이 우선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이후 필요에 따라 한국, 대만의 핵무기 보유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시나리오는 아직 현실성이 낮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러시아, 중국, 북한의 위협이 커지고 미국의 안보 공약 신뢰성과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서 과거의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기 어렵다.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동맹국에 대한 무역 분쟁과 강압적인 관세 협상, 무임승차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과 해외 주둔 미군 감축 논의는 핵 확산 억제의 전제 조건이 되었던 동맹 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독일, 일본뿐만 아니라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최근 독립적인 핵무기 확보 또는 대안적 안보 체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핵무기를 동맹국 손에 쥐여주고 미국은 빠지는 것을 점점 선호할 것이라는 예측이 확산하고 있다.
핵 확산 시대, 한국의 선택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과 맞서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러한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위협이 가시화될 때마다 한반도에 전개되었던 미국의 전략 자산 전진 배치는 이제 당연한 것이 아니다. 30년 넘게 추진되었던 북한 비핵화 노력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지만, 그 누구도 현실화할 것으로 믿지 않고 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유사시 이를 요격하는 방어망을 구축하고 있지만, 공격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도를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더군다나 최근 북한이 드론 대량 도입과 장사정포 사정거리 연장과 정밀 타격 능력 보유에 성공함으로써 소수의 미사일에 초점을 맞춘 우리의 시도는 무력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핵 정책 변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안보 전략은 전통적인 구도에 아직까지 머물러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지만, 핵무기 확산이 단기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안보와 관련한 국제 질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미·중·러 삼국 간의 핵무기 감축과 군비 통제를 위한 체제가 새롭게 등장할 수 있다. 보다 현실적으로는 유럽에서도 미국을 제외한 유럽 국가 간의 새로운 방위 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이 과거와 같은 확고한 안전보장을 제공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단순히 핵무기를 자체적으로 보유할 것인지를 넘어서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서 우리의 국익과 안전보장에 도움이 되는 구도와 수단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중심의 사고방식을 유지하고 30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판단하려 하는 것이 대한민국 최고의 리스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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