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바이러스에서 찾은 희토류 친환경 채굴법] 항생제 내성균 격파하는 박테리오파지, 이젠 광물도 캔다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에디터 2025. 12. 5.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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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욱 - UC 버클리 생물공학과 교수. /사진 UC 버클리

바이러스가 첨단 기기에 사용되는 광물 희토류를 친환경적으로 추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생물을 사용해 광물을 얻는 기존의 ‘생물 채광(biomining)’이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는 바이러스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생물 채광은 구리 채굴 현장에서 그 효과가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전 세계 구리 생산량 약 20%가 이 방식으로 생산된다.

바이러스를 활용한 희토류 채굴은 아직 실험실 차원의 성과이지만, 연구가 발전하면 저렴하면서도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희토류 생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를 받는다. 미국 UC 버클리는 “이승욱 생물공학과 교수가 유전자를 변형한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 바이러스를 사용해 희토류를 추출하는 획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채광(바이러스 채광) 기술을 개발했다”고 11월 12일(이하 현지시각)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나노 레터스(Nano Letters)’ 에 실렸다.

희토류 채굴에 친환경 대안 제시

희토류는 원자번호 57번(란타넘)부터 71번(루테튬)까지 란타넘족 원소 15개와 21번 스칸듐(Sc), 39번 이트륨(Y)을 더한 총 17개의 금속원소 집합을 말한다. 전기차와 풍력발전 터빈 등의 전기모터에 사용하는 자석이나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를 밝히는 발광체등 첨단산업의 필수 소재로 사용된다.

‘드물다(稀)’라는 의미에서 희토류라는 이름이 붙긴 했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양이 풍부하다. 특히 지각을 구성하는 원소인 세륨(Ce)은 구리만큼이나 많고, 툴륨(Tm) 역시 금(Au)이나 백금(Pt)보다 매장량이 많다. 다만 다른 광물 원소처럼 농축된 형태로 있지 않아 캐내기 어렵다. 이 교수는 “바이러스 채광 기술은 독성 화학물질과 오염성 폐기물을 배출하는 기존 희토류 채굴 방식에 친환경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이 교수 연구진은 대장균 같은 박테리아를숙주로 삼는 바이러스 박테리오파지의 유전자를 변형, 표면에 두 가지 단백질을 추가했다. 하나는 희토류를 붙잡는 ‘집게’ 역할을 하고, 다른 하나는 온도가 오르면 ‘응집’하는 역할을 한다. 바이러스 표면의 집게로 희토류를 붙잡은 뒤, 온도를 높이면 바이러스가 뭉치고, 이후 농축된 희토류를 회수하는 원리다.

세균에 결합한 박테리오파지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사진 아이 오브 사이언스

연구진은 유전자 변형 박테리오파지를 광산 폐수에서 나온 금속 혼합 용액에 넣었다. 금속 혼합물 속 희토류는 곧바로 바이러스에 달라붙었고, 용액을 가열하자 바이러스는 서로 뭉쳐 용기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액체를 제거해 바이러스와 희토류가 뭉친 침전물만 남겼다. 이어 침전물의 산성도(pH)를 조절했더니, 바이러스가 희토류를 뱉어냈다. 이 교수는 “바이러스는 희토류를 채굴한 뒤에도 여전히 살아 있어, 재사용이 가능했다”라며 “박테리오파지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를 숙주로 삼은 뒤 스스로 증식하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쉽고, 저렴하다”라고 했다.

폐전자 제품서도 희토류 회수

고려대 화학과 출신 이 교수는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부터 UC 버클리 교수로 일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유전자 변형 바이러스로 질병과 위험 물질을 감지하는 센서와 압력 변화를 전기로 바꾸는 압전 소자 등을 개발했다. 이 교수는 “바이러스 채광 기술은 광산 폐수 외에도 폐전자 제품에서 희토류를 회수하거나 환경을 정화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박테리오파지 표면에 다른 단백질을 이식하면, 배터리에 사용하는 리튬이나 코발트, 촉매용 백금 등 다른 중요한 원소를 선택적으로 포획할 수 있다고 했다. 나아가 물에서 수은이나 납 같은 독성 중금속을 제거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바이러스가 아닌 미생물을 사용한 생물 채광은 실험실 연구 수준을 넘어 실제 산업에 폭넓게 쓰이고 있다. 박테리아는 수십억 년 동안 지구 암석의 산성 물질을 분비하고, 화학반응을 일으켜 생존에 필요한 물질을 뿜어냈다. 그 부산물로 니켈이나 리튬 등의 원소가 나온다. 금이나 구리 생산량의 20%는 생물 채광을 통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우주에서도 생물 채광 가능성을 확인했다. 2020년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중력이 거의 없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3주간의 실험을 통해 스핑고모나스 데시카빌리스(Sphingomonas desiccabilis)라는 박테리아가 현무암으로부터 란타넘, 네오디뮴, 세륨 같은 희토류 원소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생물 채광으로 최근 대규모 투자를 받기도 했다. 11월 12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생물 채광 스타트업 엔돌리스(Endolith)가 초기 투자에서 1350만달러(약 199억원)를 조달했다고 보도했다. 엔돌리스는 추가로 300만달러(약 44억원)를 조달해, 투자 총액을 약 1650만달러(약 243억원)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는 인공지능(AI)을 적용해 미생물의 구리 채광 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현무암 속 희토류 원소를 추출한박테리아 스핑고모나스 데시카빌리스. /사진 옥스퍼드대

항생제 내성균 사냥꾼 파지

이 교수 연구진이 희토류 추출에 사용한박테리오파지는 의학계에서 먼저 주목한 바이러스다. 1917년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미생물학자 펠릭스 데렐(Félix d̓Hérelle)이 ‘박테리아를 먹는다’는 뜻의 그리스어로 이 바이러스의 이름을 붙였다. 줄여서 파지(phage)라고도 한다.

박테리오파지는 발견 뒤 1920~30년대 이질과 패혈증 등 다양한 세균성 질환을 치료하는 데 사용됐다. 그러나 1940년대 페니실린 항생제가 널리 사용되면서 점점 잊혔다.

박테리오파지가 다시 조명받는 건 항생제 오남용 때문이다. 사람뿐 아니라 가축에게도 항생제를 무차별로 사용하면서 배설물 등을 통해 자연으로 항생제가 흘러갔고, 자연 속 박테리아가 항생제 내성을 기를 수 있었다.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항생제 내성균은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로 퍼졌다.

박테리오파지는 화학적 독성으로 박테리아를 공격하는 항생제와 달리, 세균의 천적으로 박테리아에 직접 침투해 파괴한다. 항생제 내성균 표면의 특정 수용체를 열쇠로 인식해 내성균 내부로 들어가 자기 유전자를 주입한 뒤 대량 증식한다. 이후 효소를 분비해 내성균을 안에서부터 터뜨려 사멸시킨다. 이 과정은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인 공격이기때문에 항생제 내성 여부와 무관하게 효과를 발휘한다. 미 국립보건원(NIH)은 “박테리오파지가 항생제 내성균에 대적할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고 했다.

항생제는 병원균을 잡으려다가 몸에 이로운 장내세균마저 죽인다. 그러나 박테리오파지는 특정 세균에게만 작용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없다. 내성이 생길 우려도 없다. 인간에게 이로운 바이러스가 병원에서 광산으로 활동 무대를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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