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치른 '아웃도어 수능' '보물' 찾아 1박2일 50km 이동 [OMM JAPAN 르포]

윤성중 2025. 12. 5.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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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M 대회는 오리엔티어링을 기본으로 한다. 대회 시작 전 지도를 받은 뒤 표시된 컨트롤을 많이 찾은 다음 야영지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지난 11월 8~9일 일본 나스시오바라시의 헌터 마운틴(1,400m·스키장) 일대에서 '제12회 OMM 재팬'이 열렸다. OMMOriginal Mountain Marathon은 영국 아웃도어 브랜드로 이 대회는 OMM 업체가 개최한다. OMM 재팬은 영국 OMM을 일본에 유통하는 회사다. 역시 같은 이름의 대회를 일본 전역에서 개최한다. 종이지도를 이용해 목적지를 찾아가는 '오리엔티어링'을 기반으로 하며 여기에 트레일러닝과 백패킹이 결합됐다. 정해진 길을 가지 않아도 되는 종목 특성에 따라 다른 아웃도어 종목에 비해 주체적이라고 할 수 있고, 아웃도어와 관련한 종합적인 능력을 테스트한다는 점에서 참가자 수준이 꽤 높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OMM 대회 참가기다.

트레일러닝에 몇 년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이것과 백패킹을 결합하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가볍게 짐을 지고 산에서 몇 밤을 보내면서 더 멀리, 오래 산을 타는 것, 분명 재미있을 것이었다.

이런 방식을 '패스트패킹Fastpacking'이라고 부른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국내에서 패스트패킹으로 함께 산을 종주할 사람을 몇 년간 찾아 다녔다(배우고 싶었다!). 그러다가 OMM 대회를 알게 됐다. OMM 대회 경기 방식을 설명하면, 꼭 두 명이 한 팀이어야 한다. 둘이서 1박 야영에 필요한 모든 짐을 지고 이동해야 하고,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지정된 컨트롤(표식)을 찾아 '태그'해야 한다. 이 컨트롤을 대회에서 지정한 개수 혹은 최대한 많이 찾는 것이 규칙이다. 이건 패스트패킹과 다르다. 트레일러닝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정의하기가 쉽지 않았다. OMM이 뭐지? 어떤 아웃도어 활동이라고 해야 할까? 인터넷 곳곳을 뒤졌다.

첫날 시작점인 스키장 슬로프.
둘째날 야영장. 700여 동의 텐트가 들어섰다.

패스트패킹 오리엔티어링 레이스?

OMM의 기원은 영국에서 1968년부터 개최된 카리모어 인터내셔널 마운틴 마라톤Karrimor International Mountain Marathon이다. 오리엔티어링 선수 게리 찰리Gerry Charnley가 맨 처음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리 찰리는 처음 들어본 이름이고, 오리엔티어링은 많이 듣던 단어다. 옛날 선배들이 산에서 오리엔티어링을 했다고 자랑한 것이 기억난다. 당시 한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종이지도에 이 지점에서 저 지점까지 직선을 그은 다음 그대로 이동해 보는 거야! 물론 나침반하고 지도만 이용해서."

오리엔티어링은 19세기 후반 군사 훈련에서 비롯됐다. 스웨덴에서 처음 실시했다.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목표지점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나중에 이 훈련이 스포츠 종목이 됐다. 산에서 하는 일종의 '보물찾기'이며, 스웨덴에선 매우 인기 있는 레저 활동이다. 일명 '내비게이션 스포츠'라고도 한다. 스웨덴에 국제 오리엔티어링 연맹 본부가 있고, 무려 70여 개국이 연맹에 가입해 활동 중이다. 물론 한국도 회원국이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종목인데, 국내의 아웃도어 마니아 다수는 오리엔티어링이 생소할 것이다. 산에 많이 다녔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그렇다. 그래서 OMM은 대체 어떤 활동을 이용한 대회인가?

함께 OMM 대회에 참가한 오현주, 차윤선, 홍건희씨와 경기를 마치고 도쿄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몇 번의 의견을 교환했다.

"OMM을 다른 말로 더 쉽게 풀어 쓰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이것은 '패스트패킹 오리엔티어링 레이스'라고 결론냈다. 대회의 근간이 되는 종목을 쉽게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OMM은 독보적인 경기다. 전 세계에 이런 방식으로 열리는 대회는 얼마 없다고 차윤선씨가 말했다.

OMM 전야제. 스키장 리조트 건물 안에 참가자와 스태프가 모여 밥을 먹거나 업체 부스에서 필요한 장비를 구입한다.
참가신청서와 기념품. 참가자에게 주는 기념품은 뱃지 딱 하나다.

진짜 산악 마라톤

다시 OMM의 기원으로 돌아가보자. 영국의 오리엔티어링 잡지 <컴패스스포트CompassSport> 2007년 2월호에 실린 'KIMM(카리모어 인터내셔널 마운틴 마라톤)에서 OMM으로'라는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게리 찰리는 경찰 훈련 강사였다. 그는 등산과 더불어 오리엔티어링에 열정을 쏟았다. 게리는 아웃도어 활동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시험하는 행사를 열고 싶었는데 그 속에 오리엔티어링 스포츠를 끼워 넣고 이것을 일반인에게 알리고 싶었다. 결국 1968년 한 잡지사에 산악 마라톤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냈고, 그해 가을 30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행사가 열렸다.

그 전, 게리는 참가자에게 줄 선물을 제작해야 했다. 여러 업체를 찾다가 자전거용 가방을 만들던 브랜드 '카리모어'에 부탁했고, 우승자에게 카리모어 배낭을 증정했다. 이윽고 게리는 해외의 유명 선수들을 초청해 경기를 운영했다. 대회에 참가한 유명 선수들 덕분에 KIMM의 규모는 날로 커졌다. 사람들은 KIMM을 가리켜 '멀티 스포츠 어드벤처 레이싱'이라고 불렀다. 이 대회 전용 아웃도어 장비들도 이때쯤 만들어졌다. KIMM에 열정적으로 참가한 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카리모어에 초경량 신발과 배낭을 제작해 줄 것을 요청했고, 얼마 후 'KimmLite' 제품군이 탄생했다.

컨트롤러. 스타트라고 쓰인 앞부분 구멍에 손목에 착용하는 칩을 넣어 인식시킨다.

카리모어와 KIMM은 성장을 거듭했다. 코스 개수가 늘었고 클래스도 생겼다. 하지만 다른 업체와 경쟁이 심해지는 한편 지속적인 개발이 필요해지자 자금이 부족해졌다. 결국 1999년 카리모어는 다른 나라에 매각됐고, 2004년에 파산하기에 이르렀다. 카리모어의 대표 마이크 파슨스는 이때까지 브랜드 운영에 개입했다가 끝내 손을 들고 업체 운영을 포기했다. 새로운 이름으로 브랜드를 론칭해야 했는데, 그는 "우리가 원조 산악 마라톤이야"라고 자주 외쳤고, 결국 이것이 OMM이 됐다.

KIMM(OMM)의 경기 성격을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마라톤 마니아인 제프 갤러웨이는 1976년 악천후로 전체 선수 중 30%만 완주한 이 대회에 참가하고 나서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다.

"모두 알다시피, KIMM은 힘든 경기입니다. 일요일 오후에 하는 피크닉이 아닙니다."

OMM은 이렇게 살아남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고, 일본에까지 건너가 12년을 거듭하며 나날이 인기를 더하고 있다. 아웃도어 시장의 대표 각축장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에는 OMM이 아직 없다. 비슷한 대회도 열리지 않는다. 그 이유를 그런대로 정확히 분석해 보면 한국의 역사와 지리 상황을 통틀어 새로운 아웃도어 인문학을 탄생시켜야 한다. 너무 복잡하고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짧게 요약하면 한국인들은 오리엔티어링에 별 관심이 없다. 전국 어디서나 스마트폰이 터지고 등산로로 지정된 곳을 벗어나 산사면을 오르는 건 불법으로 인식하는 관습이 있다. 그러니까 굳이 종이지도와 나침반을 갖고 산을 타지 않아도 된다. 이 상황을 또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라가 좁은 탓'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궁금증은 가지를 치고 무럭무럭 자랐다. OMM이 한국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건 또 무엇 때문일까? 국내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이 궁금증이 나를 일본으로 향하게 했다. 대회가 열리기 몇 달 전 오리엔티어링 전문가 홍건희씨에게 전화해 물었다.

"OMM 대회가 11월에 열리는데, 혹시 참가하시나요? 같이 갈 수 있을까요?"

그가 대답했다.

"오! 저랑 같이 가요!"

그는 이후 또 다른 오리엔티어링 전문가 차윤선(오러버스클럽 대표)씨에게 연락해 OMM 참가권을 획득했다(OMM 재팬 대회는 최근 자국에서 인기가 높아져 올해부터 추첨으로 참가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정식으로로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는데, OMM 재팬과 예전부터 관계가 깊은 차윤선씨가 이 부분을 손쉽게 해결했다).

스코어 롱 코스에 출전한 홍건희(왼쪽)씨와 나.

출국 이틀 전, 나는 홍건희씨를 만나러 갔다. 그에게서 대회와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파트너로서 함께 산행하며 호흡을 맞춰야 했는데 둘 다 시간이 없어 그러지 못했다). 긴장한 나를 의식한 모양인지 그는 "어려운 대회는 아니다"라면서 입을 열었다.

"용량 40리터 정도 되는 배낭이면 충분해요. 대신 양쪽 멜빵에 용량 500ml 물통 두 개를 넣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해요. 텐트는 제가 가지고 갈게요. 무게 1kg이 채 안 되는 2인용 텐트를 갖고 있어요. 트레킹폴은 필요 없을 거예요. 배낭 무게가 10kg이 넘지 않도록 맞추는 것이 좋아요. 대회에서 지정한 필수 준비물이 있는데요, 제가 잠시 후에 스마트폰으로 보내드릴게요."

그날 밤 그에게서 필수 장비 목록이 적힌 메시지가 왔고, 나는 목록대로 짐을 챙겼다.

가장 중요한 지도! 출발 직전 확인

홍건희씨가 알려준 필수장비 목록 대로 짐을 챙긴 뒤 일본으로 출국했고, 도쿄의 한 전철역 앞에서 한국 참가자 오현주, 차윤선, 홍건희씨와 만났다. 차윤선, 홍건희씨는 오리엔티어링 전문가였고, 오현주씨는 몇 번의 경험을 가졌다. 그들의 짐은 작았다. 나의 짐은 컸다(무려 90리터 용량 여행 배낭). 나는 더욱 긴장해 과묵해졌다.

대회장인 나스시오바라 헌터 마운틴에 도착하니 오후 5시쯤 됐다. 바람이 불고 추웠다. 작은 스키 리조트 건물 안에 스태프와 여러 후원 업체가 모여 행사를 열고 있었다. 일본어로 된 참가 신청서에 이름과 전화번호 등을 기입하고 접수처에 냈다. 대회에 참가하는 한국인은 우리 4명뿐이었다. 행사 기념품으로 준 건 작은 배지 하나뿐이었다.

후원 업체의 부스들이 모여 있는 행사장 규모 역시 작았다(무려 1,400여 명이 참가하는 대회 치고 규모가 소박했다. 우리나라의 이 정도 참가자가 모이는 행사라면 운동장에 큰 천막이 수십 동 설치됐을 것이다). 업체는 모두 10개 정도 됐는데, 각자 테이블 두 개 정도 크기의 좌판에 물건을 늘어놓고 참가자들을 맞았다. OMM 브랜드의 가벼운 플리스 재킷이 눈에 띄었다. 가격이 무려 20만 원이라 제품을 들었다가 바로 내려놨다. 여기서 저녁을 먹은 다음, 숙소로 이동해 대회용 짐을 챙겼다. 나는 30L 용량 배낭에 침낭과 옷, 에어 매트와 여러 식량을 넣었다. 무게가 7kg이었다. 파트너 홍건희씨는 여기에 텐트를 추가했다. 무게가 8kg이었다. 홍건희씨에게 말했다. "저에게 짐을 좀 주세요." 홍건희씨가 대답했다.

"아니에요. 제가 좀 무겁게 져야 기자님과 페이스가 맞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

나는 학생이 된 것처럼 얌전히 대답했다. "네." 이때까지 나는 내가 어떤 종목에 참가하는 건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무엇이 됐든 그리 처절하진 않을 거라고 기대했다(대회 홍보 사진에 찍힌 작년 참가자들의 얼굴 표정은 모두 환했다).

홍건희씨의 배낭은 40L, 무게 8kg에 달했다.

다음날 아침 7시, 전날 행사가 열렸던 곳으로 갔다. 홍건희씨가 가는 도중 말했다.

"출발지가 어제 행사장이 아닐 수도 있어요. 어쩔 때는 걸어서 시간이 꽤 걸리는 곳에서 출발하기도 해요."

첫날 출발지는 행사장에 도착한 다음 알았다. 건물 바로 뒤쪽이었다. 나는 "골인지점은 어디죠? 여기로 다시 되돌아오나요?" 물었다.

홍건희씨가 말했다.

"골인지점은 아직 저도 몰라요. 지도에 표시되어 있어요. 지도는 출발 직전에 나눠줘요."

이상한 대회라고 생각했다.

잔디로 덮인 스키장 슬로프를 거슬러 올라갔다. 수십 명의 참가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어떤 참가자의 배낭은 컸다. 어떤 참가자의 배낭은 보따리처럼 작았다. 어떤 참가자는 쌀 부대처럼 생긴 배낭을 멨다. 어떤 참가자는 배낭에 맥주 캔을 잔뜩 넣었다. 어떤 참가자는 배낭 옆에 파 한 단을 꽂았다. 모두 웃고 있는데 나만 무표정이었다. 우리는 '스코어 롱' 코스라고 쓰인 지점에 가서 줄을 섰다. 한 줄에 12명, 총 6팀이 대기했다. 8시 15분, 전자 신호가 울렸고 우리는 지도를 받았다. 스키장 왼쪽의 산과 도로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 위에 알파벳으로 쓰인 문자 옆에 숫자가 적혀 있었고,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었다. 홍건희씨가 말했다.

"동그라미 표시에 컨트롤 포인트가 있어요. 숲에 주황색 기구를 달아놨어요. 그걸 찾아서 손목에 있는 고리로 태그해야 해요. 자, 어디부터 갈까요?"

그는 지도를 보면서 천천히 이동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그를 따라갔다. 곧 그가 말했다.

"BD(20)부터 가죠!"

나는 대답했다.

"좋습니다."

슬로프 왼쪽 널찍한 임도로 가다가 우리는 오른쪽 산사면으로 들어갔다. 등산로가 아니었다. 주변에서 여러 참가자가 우리처럼 산사면을 타고 있었다. 우리는 계곡을 건넜고 길을 가로질러 등산로가 아닌 경사로를 탔다. 가파른 언덕을 몇 개 넘으니 멀리 주황색 컨트롤이 보였다. 홍건희씨는 빠르게 달려 손목을 대고 태그했다. 그가 말했다.

"자, 다음 어디로 가죠?"

나는 그가 가는 대로 임도나 도로에서 마구 달렸다. 시계를 보니 5분 30초 페이스였다. 헉헉 대면서 그를 뒤쫓았다. 내가 지도를 볼 시간은 없었다. 지도를 들어 내 위치를 확인한 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홍건희씨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재빨리 또 그를 쫓아가야 했다. 그가 멈췄을 때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잘하는 사람이 혼자 컨트롤을 찾고 나머지 느린 사람은 어느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괜찮겠어요. 혹은 교대로 찾으러 다녀도 될 것 같은데."

그가 대답했다.

"스태프들을 어디선가 마주칠 수 있어요. 그때 혼자 다니는 사람을 보면 금방 눈치챌 거예요. 들키면 실격이에요."

나는 잠자코 대답했다. "네."

그는 정신없이 컨트롤을 찾아 태그했고, 나는 정신없이 그를 쫓아다녔다. 이렇게 1시간 동안 무려 4개의 컨트롤을 찾아냈다.

"우리 잘하고 있는 거죠?"

그가 대답했다.

"네! 엄청요."

 길이 없는 곳에서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컨트롤을 찾고 있다.
 유황 냄새가 지독했던 온천 위를 지났다.

비교적 평탄한 지대에서 몇 개의 컨트롤을 더 찾아낸 다음 높은 곳으로 향했다. 낙엽으로 덮였거나 진흙으로 된 산사면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발가락에 힘을 잔뜩 주면서 급한 오르막을 올랐다. 홍건희씨는 나와 멀리 떨어질 때마다 멈춰서서 지도를 확인했다. 내가 거기까지 가면 홍건희씨는 바로 떠났다. 그러니까 나는 잠깐 쉴 틈 없이 산을 올랐다. 풀린 신발끈을 다시 묶을 새가 없었고 배낭 안에 있는 에너지젤을 꺼내어 먹을 시간도 없었다. 홍건희씨는 계속 움직였다. 제한 시간이 7시간이라는 점이 나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어지러운 이동 궤적은 탈출구로 향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오후 3시면 나는 분명히 캠핑장에 있을 것이었다!

벌목으로 나무가 쓰러져 있는 길을 지났고, 진흙으로 덮인 가파른 산사면을 기어 올랐다. 유황이 들끓는 온천지대도 지났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등산로 옆에서 컨트롤을 찍었다. 오후 3시가 됐다. 이제 하산할 시간이었다. 나는 이제 끝났다며 속도를 늦춰 터덜터덜 내려갔다. 홍건희씨가 다가와 뜨악할 소식을 전했다.

"골인점까지 3시 안에 가야 해요. 늦었어요. 빨리 가야 돼요!"

그는 도로를 뛰어 내려가다가 도중에 숲으로 들어갔다. 골인지점까지 일직선으로 움직였다. 나는 기진맥진한 채 그를 따라갔다. 헉헉대면서 골인지점에 도착했다. 4분 27초 초과해 늦게 골인했다. 25점이 깎였다. 우리가 이날 획득한 점수는 총 520점. 차감된 것까지 계산하면 495점이었다. 하지만 4등이었다!

캠핑장은 '하치로가하라 방목장'이라고 불렀다. 밤이 되자 널찍한 목초지에 700여 동의 텐트가 세워졌다. 주위가 어두워지자 불빛이 켜졌다. 장관이었다. 캠핑장은 캠퍼들로 부산했지만 시끄럽지 않았다. 화장실 개수가 넉넉했고, 물도 충분했다(캠핑장에서 대회 주최 측이 참가자에게 제공하는 건 물밖에 없었다). 건조식량 두 봉지로 배를 채우고 기진맥진한 나는 저녁 8시쯤 텐트 안에 들어가 누웠다. 하늘에 별을 감상할 기력조차 없었다(하늘에 별이 있었던가?). 오현주, 차윤선, 홍건희씨는 텐트 앞에 앉아 이날 있었던 경기를 복기했다. 일본어로 두런대는 사람들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잠이 들었다.

'최선을 다한다'는 말의 뜻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나 또 건조식량에 뜨거운 물을 붓고 아침을 먹었다. 홍건희씨는 주머니에서 먹을 걸 끊임없이 꺼내어 입에 넣었다. 오현주, 차윤선씨가 먼저 텐트를 걷고 출발 준비를 했다(출발 시간이 달랐다). 얼마 후 우리도 텐트를 걷고 배낭을 쌌다. 나와 홍건희씨의 30L, 40L 배낭에 단출한 짐이 쏙 들어갔다. 전날 2L짜리 내 물통이 찢어져 쓸 수 없었다. 홍건희씨가 말했다.

"어제 제가 물을 별로 안 마셨더라고요. 제 물통에 물을 좀 더 넣어서 가죠."

그렇다면 그 물통은 내가 지고 가겠다고 했지만 홍건희씨는 괜찮다면서 자신의 배낭에 넣었다. 나는 얌전히 있었다.

오전 7시 15분, 언덕 입구에서 출발했다. 전날과 다른 지도가 배포됐다. 스키장의 오른쪽 면이었고, 전날보다 험하고 높은 산세가 눈에 들어왔다. '아,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제한 시간이 6시간이었다. 점심 지나 약 2시간만 버티면 끝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위로했다. 출발 신호가 울렸고 우리는 천천히 임도를 따라 올라갔다.

둘째날 스키장 슬로프를 오르면서 컨트롤을 향해 가고 있다.

우리는 낮은 곳부터 공략하기로 했다. "여기부터 가자"고 말할 처지가 아니었기에 나는 홍건희씨가 가자는 대로 따랐다. 그는 잘 나 있는 임도에서 벗어나 산길로 들어갔다. '엥? 여기서 저 길로 간다고? 이쪽 길이 좋은데?' 이렇게 생각했지만 나는 잠자코 그를 따랐다. 얼마 후 첫 번째 컨트롤을 찾았다. 쉬지 않고 두 번째를 향해 움직였다. 임도를 타다가 산사면을 기어 올랐다가 계곡을 건넜다가 하면서 정신없이 이동했다. 몇 개의 컨트롤을 더 찾았고, 홍건희씨가 잠시 멈칫했다. 나는 포기한 듯 말했다.

"가장 높은 곳으로 가죠. 거기 점수가 70점이에요. 이걸 찍고 내려오면서 나머지를 훑어보죠."

가장 높은 곳까지 1시간 정도 걸릴 것이고, 그곳에 있는 컨트롤을 찍고 내려오면 경기 시간이 거의 끝날 것이란 계산이었다. 어차피 힘든 거, 가장 어려운 코스를 올라 시간을 떼우자는 것이었다. 홍건희씨가 말했다.

"좋아요! 괜찮은 아이디어예요!"

우리는 스키장 슬로프를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면서 몇 개의 컨트롤을 더 찾았다. 그것이 나는 별로 기쁘진 않았다. 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곧장 가파른 능선에 붙어 가장 높은 컨트롤을 향해 갔다. 비가 살짝 내렸고 바람이 불었다. 상관없었다. 정신없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진흙길을 지나 내려갔다. 가장 높은 점수의 컨트롤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이 헤매고 있었다. 그들을 뚫고 나가던 홍건희씨의 속도가 빨라졌다. '뭔가 발견했나보다! 이 길이 맞나보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를 쫓아갔다.

나는 그에게서 '리더'의 이상향을 봤다. 그는 이때까지 "여기가 아닌가봐요, 되돌아가요"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길 없는 가파른 산사면을 타고 내려가다가 그런 말을 했다면 나는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망설이지 않고, 실수 없이 정확하게 모든 컨트롤을 찾았다. 그에 대한 믿음이 아주 단단한 상태였는데, 그래서 나는 무조건 그가 하자는 대로 했다. 산에서 말고 직장에서 그와 같은 리더가 나에게 명령하면 당연히 따를 수밖에 없고, 그를 돕기 위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나는 잠자코, 얌전히 따라갔다.

고득점을 획득한 뒤 나는 일부러 다른 방향을 가리키면서 소리를 질렀다.

"찾았다!"

뒤따라오는 다른 참가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서였다(산에서 소리를 지르는 일본 사람들은 없었다. 모두 조용히 경기를 즐겼다). 그러면서 홍건희씨에게 물었다.

"이렇게 하는 건 반칙인가요?"

그가 대답했다.

"그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라 누구도 뭐라 안 할 것 같아요."

커피 자루를 배낭으로 개조해 경기에 참가한 사람들.

경기가 1시간 정도 남았다. 나는 희망에 찼다. 마지막으로 컨트롤 하나만 더 찾고 골인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홍건희씨는 멈추지 않았다. 이후 3개의 컨트롤을 더 찾아냈다. "컨투어링Contouring (등고선을 따라 산사면을 가로지르는 방법)을 해야 겠어요!"라면서 빠른 길로 가로질렀다. 15분을 남긴 채 그는 슬로프 구석으로 또 올라갔다. 나는 "시간 없을 텐데, 괜찮을까요?"라고 하자, 홍건희씨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을 쥐어짰다. 산소를 더 많이 마시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헐떡였다. '최선을 다한다'는 말의 뜻을 그제야 깨달았다.

"제한 시간 안에 들어갔어도 시간 때문에 순위가 바뀔 수 있어요. 뛰어요!"

나는 군말 없이 전력질주했다. 골인! 총 획득 점수 610점이었고, 2위에 랭크됐다(이틀 합산 3위).

스마트폰은 필수 장비

골인 지점 뒤편에 마련된 쉼터에서 한 스태프가 나눠주는 야채 스프를 마시고 있는데, 다른 스태프가 와서 짐 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를 따라 갔다. 테이블 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또 다른 스태프의 말을 따랐다.

"나침반 있나요? 물통은 갖고 있죠? 응급처치 용품도 보여 주세요."

배낭을 뒤져서 물건을 꺼내 보여줬다. 스태프가 이어서 말했다.

"스마트폰 있나요?"

나는 망설였다. 골인 2시간 전, 스키장 슬로프를 오르다가 스마트폰을 잃어버렸다는 걸 알았다. 그때 홍건희씨가 곧바로 내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일본인이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은 일본인은 스태프에게 전화기를 맡겨 놓겠다고 했다. 그 스마트폰이 짐 검사를 하는 스태프의 테이블 옆에 놓여 있었다. 스태프는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다른 스태프와 일본어로 대화했다. 짐 검사는 중단됐고, 잠시 후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한 스태프가 다가와 우리에게 말했다.

"유감이지만 스마트폰은 필수 장비입니다. 실격이에요."

대꾸할 수 없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경기장에서 빠져 나왔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홍건희씨가 답했다.

"괜찮아요. 엄밀히 따지면 저도 실격이에요. 스마트폰 배터리가 다 닳았거든요.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그걸로 충분하니까 자책하지 마세요."

첫날 골인 지점에서 홍건희(오른쪽)와 나. 4위를 기록했다.

OMM은 어드벤처 레이스 혹은 서바이벌 레이스라고도 부른다. 그러니까 비상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는 모두 갖추고 대회에 참가해야 한다. 골인 후 스태프는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골인했을 때 남은 식량까지 확인한다. 사실 이날 나는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지도도 잃어버렸다. 둘 다 매우 중요한 장비다. 실격 사유로 충분했다. 홍건희씨는 실격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만의 최고 득점을 얻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우울한 기분으로 경기를 마쳤을 테고 이 기사는 지금보다 훨씬 짧아졌을지도 모른다. (오현주, 차윤선 팀은 스코어 롱 부문 종합 108위를 기록했고 여자 부문 10위에 올랐다.)

Mini interview"참가자들 성숙, 스태프 역할 많지 않아"

매년 스태프로 참가하는 무라이 다카히코

한국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 꽤 있다. 그는 얼마전까지 한국의 한 업체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는 매년 OMM 스태프로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올해도 스태프로 참가해 한국 참가자들을 반겼다.

왜 매년 OMM 스태프로 참가하나요?

OMM은 저에게 특별해요. 먼저 분위기가 좋아요. 참가자 대부분이 순위에 연연하지 않아요. 그야말로 즐겁게 대회에 참여하는 게 느껴지죠. 거기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어요. 그 외에도 OMM 스태프는 거의 바뀌지 않아요. 스태프 모집을 따로 하진 않고, 대부분 지인들 위주로 돌아가면서 참여하죠. 왜냐하면 경기 규칙이 좀 복잡하기 때문이에요. 스태프가 새로 온다면 경기 규칙부터 하나하나 다 알려줘야 하죠. 덕분에 스태프끼리 유대가 굉장히 좋아요.

OMM 스태프는 트레일러닝 스태프에 비해 할 일이 얼마 없어 보이는데 맞나요?

어느 정도 맞아요. 산에 머물면서 보급을 하는 일이 없죠. 선수에게 물을 준다거나 간식을 건네는 등 도움을 주는 일도 일절 없고요. 경기 중 규칙을 어기는지 엄격하게 검사하지도 않고요. 오리엔티어 대부분이 스스로 규칙을 지키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OMM 스태프들은 주로 경기장이나 캠핑장에 머물러요.

OMM 대회의 참가자 수는 매년 늘고 있나요?

네. 점점 인기가 많아지고 있어요. 예전에 비해 새로운 인물들이 많이 보이고, 또 올해부터는 선착순 접수가 아니라 추첨으로 참가자를 뽑았어요. 참가 신청자들이 많아졌다는 뜻이죠.

Mini interview"OMM이 일본 오리엔티어링 유행 이끌어"

한국 오리엔티어링 최고 권위자 차윤선(오러버스클럽, 플레이오그라운드 대표)

왼쪽 오현주, 오른쪽 차윤선.

그녀는 일본 출생이다. 어렸을 때부터 일본에서 오리엔티어링을 배웠고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한국으로 건너와 오리엔티어링 대회를 만들거나 행사를 진행한다. 그러니까 그녀는 한국에서 가장 실력 있는 오리엔티어라고 할 수 있다. 매년 그녀는 회원을 모집해 OMM에 참가한다. 그녀에게서 이번 대회 후기를 들었다.

차윤선 대표님과 OMM의 인연, 혹은 OMM JAPAN과의 인연은 언제부터, 어떻게 이어졌을까요?

저는 원래 일본에서 자랐습니다. 일본에서 오리엔티어링을 배웠기 때문에 OMM의 경기부문 운영자 분들은 대부분 지인이셨습니다. 그러다 기회가 되어 2016년에 스태프로 참여하면서부터 브랜드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OMM은 스태프들의 유대관계가 끈끈한 편인데, 뒤풀이 자리에서 영국 본사 스태프와도 교류하고 이듬해 영국본토 대회에도 선수로 참여하면서 OMM에 빠져들게 되고 매년 지속적으로 오러버스회원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OMM에 참가하려면 자격 요건이 어떻게 될까요?

연령 외에 규정된 자격요건은 없습니다. 다만, 1박2일 동안 머물며 먹고 자신을 보호할 것들을 모두 짊어진 채 알려 주지 않는 길을 지도에서 찾아내며 6~7시간 동안 산속을 이동해야 하는 경기 특성 상, 최소한의 지도 읽기 능력과 체력은 겸비한 후 참여를 하는 것이 OMM의 세계를 제대로 즐길 수 있고,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도 좋습니다.

한국에서 오리엔티어링은 왜 인기가 없을까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일단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단순하지 않은 스포츠인데 배울 기회가 별로 없는 것이 첫 번째 걸림돌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대회도 많아지고 클럽 단위의 연습회도 열리게 되었지만 경험의 축적이 실력이 되는 측면이 적지 않은 오리엔티어링에서 실력으로 이어질 만큼의 적절성과 다양성, 그리고 접근성을 지닌 경험의 장이 마련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경기인구 유동성이 거의 없다 보니 새로운 인구 유입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고요.

일본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오리엔티어링 교육을 접하나요? 한국에서는 진입장벽이 높은 이 경기가 일본에서는 무려 매년 2,000명이 참가하게 된 배경은 뭘까요? 한국보다 월등한 인구수 덕분일까요? 아니면 오리엔티어링 조기 교육 덕분일까요?

일본은 예전에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처럼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오리엔티어링을 전개한 적이 있어요. 우리 어머니 세대는 오리엔티어링을 기본적인 차원에서 인지 정도는 하고 있고, 그때 만들어진 인프라를 활용해서 현재도 상시로 오리엔티어링이 가능한 곳이 종종 있습니다. 일단 한국보다는 기본적으로 알려져 있다는 뜻이죠.

그렇다보니 교육 관련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이를 활용해 초·중고등학교 때부터 야외활동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학교 부지 내 간단한 활동이 아닌 좀 더 큰 스케일로 접할 기회가 한국보다는 많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야외활동으로 2~3박 합숙을 정기적으로 하는 편인데 이때 바다수영이나 등산 등을 주로 하는 편이에요. 한국에서는 선생님들이 안전사고나 책임 문제 등 때문에 많이 안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물론 요즘에는 일본도 그런 경향이 생기고 있다고 들었지만 여전히 오랜 전통이 우선되고 있어서 우리 조카는 유치원생인데 얼마전에 다카오산 등산을 다녀왔다더군요.

그런 배경이 있다 보니 아웃도어 환경은 한국이 생활권에 더 가까운데 일본이 경험치는 더 높은 것 같습니다.

일본 오리엔티어링은 국책사업일 때 대학동아리 활동으로 많이 퍼졌어요. 그때 만들어진 동아리가 대부분 아직도 유지되다 보니 일본 웬만한 대학에는 오리엔티어링 동아리가 있습니다. 지금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활발히 전개되고 있지만 OMM대회 자체는 오리엔티어보다 일반 등산애호가나 야외활동은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유명해지고 있어요. 역으로 OMM 덕분에 일본 오리엔티어링계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OMM 같은 대회가 열리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재미있고 열린 대회 개최인 것 같아요. 필요한 것은 양심과 배려의 스포츠인 오리엔티어링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경기인구 확대가 이루어져야 경쟁이 생겨 실력이 높아질 것이고, 대회 참가자를 확보할 수 있어 지자체의 협력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리엔티어링은 사람과 동식물이 살아가는 자연환경 그 자체를 경기장으로 사용합니다. 정해진 길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개최를 위해서는 경기장이 생활권인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경기 규칙을 지키는 양심이 필수 불가결합니다. 참가비는 대회참가라는 상품을 구매하고 있다는 특권의식이 아니라 생활권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준비하고 수고한 운영진과 허락해 준 주민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지불하는 것이라는 게 오리엔티어링에서의 인식이에요. 이런 마인드로 단 한 번 허락된 공간을 자유롭게 즐기는 오리엔티어링 문화가 다양한 대회를 통해 공유되어야 OMM 같은 규모의 대회도 국내에서 열릴 가능성이 생길 것 같아요.

Mini interview"다양한 지형과 식생, 가장 재미있는 OMM 대회였다"

전천후 클라이머 홍건희(오러버스클럽 회원)

그는 일반 회사원으로 암벽등반을 비롯해 산악스키, 빙벽등반, 트레일러닝, 백패킹 등 산에서 하는 모든 활동을 즐긴다. 최근 그는 '트랜스 재팬 알프스'라고 불리는 코스 380km를 11일 동안 혼자 완주하기도 했다. 한국에 얼마 남지 않은 알피니스트라고 할 수 있는 그에게 이번 대회는 어떤 의미였을까?

오리엔티어링 경력이 얼마나 되죠?

15~20년 정도 됩니다.

어떻게 오리엔티어링을 시작하게 됐죠?

대학교 신입생 때 선배에게 쉽게 학점을 채울 수 있는 교양 스포츠 과목으로 오리엔티어링을 추천 받았어요. 학기 초에 이론 교육 이후에는 주말 오리엔티어링 대회 참가로 수업을 대체한다는 것에 혹해서 수강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강을 하면서 두 번의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그 학기가 끝나고 활동을 지속하지는 못했습니다. 오리엔티어링의 매력을 잊지 못하다가 대학원에 다니면서 동호회에 가입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OMM 재팬에 여러 번 참가한 것으로 아는데, 이전과 비교했을 때 이번 대회는 어땠나요? 코스, 난이도, 팀 등 여러 방면에서 소감을 알려 주세요

올해까지 총 네 번 참가했어요. 첫 해에는 새로운 액티비티에 입문한다는 생각으로 가장 쉬운 코스를 선택했고, 운이 좋게 3위에 입상했어요. 해를 거듭할 수록 한 단계씩 상위 클래스에 참가했는데 매번 포디움에 서면서 OMM 재팬에 참가하는 재미가 더해졌습니다. 올해는 스코어 코스에서 가장 상위 클래스인 '스코어 롱' 참가를 결정했고, 이 도전에는 저의 기술적, 체력적 성장을 시험하는 의의가 있다고 봤어요. 그리고 그 결과 정말 만족스러운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이번 대회의 경기장은 지형이 다채로워서 좋았어요. 이벤트 센터이자 1일차 출발 구역인 헌터 스키장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경사가 완만했어요. 지도를 읽는 난이도가 올라갔죠. 임도도 얼기설기 퍼져 있어서 루트 선택의 옵션도 다양했어요. 스키장 위쪽으로는 높은 산들과 슬로프들이 펼쳐졌는데 루트 선택 이후에는 지도를 보는 집중력보다는 체력적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하는 구간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숲 속의 식생도 달리기에 좋았고, 지금껏 참가한 OMM 중에 가장 재밌는 대회였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죠?

솔직하게 말하자면, 과거에는 파트너들이 저보다 체력적으로 우위에 있어서 팀 공용 장비를 많이 맡아서 메줬어요. 올해는 그 상황이 반대였는데 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10kg 이상의 무게를 지고 매일 12시간 이상의 패스트 패킹을 했었기 때문에 이틀간 13시간의 운행은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올해는 날씨가 온화해서 경기와 야영을 더 편안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 등산객이 OMM 대회에 참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침반과 지도에 익숙해지는 게 1번이고, 야영 스킬은 기본만 할 줄 알면 될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에 표시되는 나의 현재 위치 정보를 이용해서 산길을 찾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요. 등고선이 잘 표현된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길을 찾고, 지도 정치(지도상의 방향과 실제 방향을 일치하게 맞추는 방법)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OMM에는 크게 2가지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스코어 코스와 스트레이트 중에 스코어를 추천해요. 스트레이트 코스는 제한시간 안에 정해진 컨트롤을 순서대로 모두 다 찾아와야 실격하지 않는 반면, 스코어는 본인의 체력과 스킬에 맞게 원하는 만큼만 찾으면 되죠.

독도법을 잘하려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지도 상의 등고선을 보고 실제 지형을 상상해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지도를 가지고 산에 가서 실제 지형이 어떻게 등고선으로 표현되는지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죠. 그것을 가장 빠르게 습득하는 방법은 오리엔티어링 대회에 참가하는 것입니다.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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