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 왜 CT 장비가 설치됐을까
지난 10월28일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가 개관했다.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도 센터 1층에서 시작됐다. 천주현 보존과학부장과 박미선 학예연구사의 도움을 받아 일반인에게는 아직 낯선 보존과학의 세계를 살펴보았다.

■ 대한민국 보존과학의 시초는?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의 역사는 1976년에 시작한다. 공주 무령왕릉(1971년), 경주 천마총(1973년)과 황남대총(1973~1975년) 등 1970년대 초반에 대형 유적 발굴이 이어졌다. 이때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금속·목재 유물 등은 발굴 직후 상태가 급변하는 경우가 많았고, 신속히 보존처리를 해야 했다. 당시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보존과학의 필요성을 느꼈고, 관련 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로 했다. 학예사 두 명(고 이상수, 이오희)을 해외로 파견해 연수를 하게 했다. 1976년 박물관 안에 보존기술실을 마련한 게 박물관 보존과학의 시초다. 대학에 문화재 보존과학과가 처음 생긴 건 그로부터 22년 뒤(1998년)의 일이다.
천주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장에 따르면, 1976년부터 현재까지 문화재 3만5000점가량을 보존처리했다. 연간 800점 정도 보존처리 작업을 한다. 학예연구사 15명이 직물, 서화, 금속, 토기·자기, 석재, 벽화, 목재 등 재질별로 업무를 맡고 있다.

■ 보존과학의 핵심 도구는?
문화재의 역사와 역사적 가치를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밝혀내는 것도 보존과학의 역할이다.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는 문화재 속 숨은 정보를 밝혀내기도 한다. 이때 핵심 도구는 적외선, 자외선, 엑스선(X선) 등 바로 빛이다.
적외선은 물질에 따라 흡수 정도가 다르다. 그림 안료에는 덜 흡수돼 표면층을 투과할 수 있다. 먹은 카본 성분이 들어 있어 적외선을 거의 반사하지 않고 흡수한다. 적외선 사진에서 먹은 더욱 검게 보인다. 천주현 보존과학부장은 “옛 그림을 그릴 당시, 먹으로 밑그림을 많이 그렸다. 적외선을 활용해 그림 속 밑그림을 찾아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보인 ‘윤두서 자화상’은 적외선 조사를 통해 밑그림의 먹선을 찾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자외선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더 짧아 형광작용이 강하다. 자외선에 의한 형광 현상은 고문서의 감정 등에 이용된다. 금속 문화재와 도자기를 수리하거나 복원한 부분을 찾는 데 활용된다. 자외선을 비추면 수리한 부분이 형광으로 빛난다.
투과력이 강한 엑스선도 안료층의 두께에 따라 투과 정도가 다르게 나타난다. 엑스선은 문화재 내부구조나 상태를 알아내는 데 용이하다. 엑스선 컴퓨터단층촬영(CT)은 의료 분야에서 많이 사용한다. 보존과학 분야에서도 CT를 활용해 문화재 내부 상태를 조사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CT 장비 두 대를 가지고 있는데, 내년에 좀 더 몸집이 큰 문화재를 촬영할 CT 장비 한 대를 추가 설치한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경주 금령총에서 발견된 국보 기마인물형토기의 CT 영상을 관람자가 직접 조절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내부 영상을 볼 수 있다.
■ 빛으로 밝혀낸 그림 속 진실
실제로 옛 서화에 빛을 비춰 무엇을 알 수 있었을까. ‘최치원 진영(1793년)’은 적외선·엑스선 조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적외선 촬영을 했더니 그림 하단에 육안으로 보기 어려웠던 ‘화기’가 드러났다. 화기는 그림을 그린 사람과 관여한 사람, 연대 등을 적은 기록이다. 1793년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이 진영을 제작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엑스선을 투과했더니 그림 좌·우측에 동자승이 나타났다. 왜 동자승 그림 위에 덧칠을 했을까. 조선시대에는 개국 초부터 숭유억불 정책으로 사찰이 많이 폐쇄되었다. 당시 유학자들이 동자승 그림을 덧칠하고, 신선의 모습을 한 최치원을 유학자의 모습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엑스선을 이용한 보존과학이 없었다면, 동자승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전 정곤수 초상’의 경우, 엑스선 투과 조사를 통해 제작 시기를 좀 더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었다.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이 초상화의 제작 시기는 16세기 말로 추정되었다. 정곤수가 임진왜란 때 사신으로 파견돼 대명 외교에 나섰던 1592년과 1597년쯤으로 보았다. 그런데 엑스선 투과 조사를 했더니 새로운 정보가 드러났다. 초상 아래에 청나라 때의 복식을 입고 있는 모습이 확인된 것이다. 이후 이 초상의 제작 추정 시기는 청나라가 건립된 1616년 이후로 수정되었다.
■ 문화재의 ‘저속 노화’
보존과학은 문화재의 보존과 복원을 위한 과학이다. 보존처리의 목적은 문화재 손상 원인을 제거해 더 이상의 손상을 막고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문화재 저속 노화’라고 할 수 있다.
보존처리 전 상태 조사가 중요하다. 문화재의 상태·구조를 파악해 기록하는 과정이다. 문화재를 구성하는 재료의 성격과 특징,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 이후 보존처리 계획을 세운다. 엑스선, 적외선, 현미경 조사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금속 문화재, 토기·자기 문화재, 석조 문화재 등 무기질 문화재는 문화재 표면과 내부에 부착된 오염물을 제거한다. 이물질이라고 다 제거해서는 안 된다. 가령 촛대 내부의 촛농이나 토기 외부의 그을음 같은 사용 흔적이나 역사적 정보를 제공하는 이물은 보존 대상이다. 청동제나 금·은제 문화재는 재질이 무르기 때문에 대부분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수술용 메스를 이용해 일일이 손으로 이물질을 제거한다.
안정화 처리는 문화재에 해를 끼치는 원인을 제거하거나 화학적으로 안정화시켜 손상을 늦추는 과정이다. 철제 문화재나 바다에서 건진 도자기의 경우 탈염처리를 실시해 부식을 억제한다.

1921년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고리자루칼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2년에 걸쳐 보존처리를 했다. 신라 5~6세기 문화재로 발굴 당시 부식으로 인해 손상이 심했다. 현미경으로 관찰해 수술용 칼로 이물질과 부식물을 제거했다. 이후 안정화 처리로 금속의 부식을 억제했다. 약한 재질의 강화 처리를 하고 접합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보존처리 과정에서 녹에 덮여 보이지 않던 ‘이(尒), 십(十), 이사지왕(尒斯智王)’ 등 모두 여섯 글자가 칼집 장식에서 확인되었다.
■ ‘감쪽같이’ 복원하지 않는 이유
모든 문화재 보존처리의 제1원칙은 가역성이 있는 처리다. 제거가 가능한 처리라는 뜻이다. 시간이 지나서 더 안전한 기술과 재료가 개발되었을 때, 이전의 재료가 유물에 손상을 주지 않고 제거될 수 있어야 한다.

경주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봉황 모양 유리병은 1984년에 보존처리되었고, 2014년에 다시 보존처리를 했다. 첫 보존처리 이후 30년이 지나면서 처리 재료가 변색했다. 재처리 상황을 염두에 두고 첫 보존처리를 했기 때문에 두 번째 보존처리가 가능했다. 과거에 사용한 에폭시계 수지 복원제에 비해 가역성이 좋고 황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 아크릴계 수지를 사용했다.
복원은 결실된 부위의 형태를 원래대로 회복하고 표면 질감과 색감을 맞추는 과정이다. 복원에는 원칙이 있다. 구조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거나, 전시나 이동 시 2차적 파손이 우려될 때, 원래의 형태를 객관적으로 추측할 수 있을 때 복원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복원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또 고고학, 미술사학 등 관련 연구자들과 충분히 협의하고 고증을 거친 다음에 복원을 실시한다. 복원부의 색상과 질감은 원래 남아 있던 부분과 유사하지만 완전히 일치하지 않아야 한다.
천주현 보존과학부장은 “보존과학과 관련해 전해지는 말이 있다. ‘세 걸음 정도 뒤에서 봤을 때는 표가 안 나고, 세 발자국 앞으로 다가가면 표가 나는 정도로 하라’고. 감쪽같이는 하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로 누군가 재수리할 때 그 사람이 판단할 수 있도록, 유사하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알아볼 수 있도록 보존처리한다”라고 말했다.
보존과학의 역사와 사례를 볼 수 있는 특별전 〈보존과학, 새로운 시작 함께하는 미래〉는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 1층 전시실에서 내년 6월30일까지 볼 수 있다.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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