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환율 상승, 경계감은 가져야 하나 과한 자기비하는 금물

원·달러 환율 급등은 한국인들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기곤 했다. 외화 곳간이 거의 비어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렸던 1997~1998년 외환위기는 개발연대 이후 경험한 최악의 경제 참사였다. 얼마 전 서울에 자가 가진 김 부장이 직장에서 밀려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애잔함’이었다면, 구조조정 대상이 돼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서 제일 좋은 은행을 떠나야 했던 은행원들이 남긴 ‘눈물의 비디오’에는 ‘공포’와 ‘비통함’의 정서가 얽혀 있었다. 외환위기 당시 원·달러 환율은 2000원까지 치솟았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상징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정점에 달했던 2008년의 가을도 스산했다. 외환위기가 큰 실패 없이 내달려왔던 한국 경제의 고성장이 종결됐음을 확인시켜주는 이벤트였다면,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이 주도했던 자본주의 모델이 수명을 다한 게 아닌가라는 불안감을 던져줬다. 기존의 권위는 무너졌고, 대중은 재야의 얼굴 없는 선지자 미네르바에 열광했다. 당시 원·달러 환율은 1600원에 육박했다.
요즘 원·달러 환율이 1460~147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 다음으로 높은 레벨이다. 고공권 환율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원·달러 환율 상승, 즉 원화 가치 하락은 다른 나라와 교류하며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달러 획득을 위해 지불해야 할 코스트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팬데믹 후 과거와 다른 모습 나타나
원·달러 환율의 상승은 몇가지 구조적인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환율 상승에 내재돼 있는 부정적 측면인데, 한국과 미국의 경제 펀더멘털 변화가 그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미국보다 높았고, 한국의 금리도 미국보다 높았는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과거와 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2023~2024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한국보다 높았고, 2025년 성장률도 미국이 한국을 압도할 것으로 보인다. 2025년 GDP 성장률 컨센서스가 미국은 1.9%, 한국은 1.0%로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GDP 성장률이 한국을 3년 연속 웃도는 건 사상 초유의 일이다. 과거 미국의 성장률이 2년 연속 한국을 앞지른 시기는 있었다. 1955~1956년, 1959~1960년에 그랬는데, 이 시기들은 한국의 경제개발이 본격화되기 이전이라 적절한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아무튼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3년 연속 미국의 성장률 우위는 이번이 처음이다.
금리는 경제의 활력을 반영한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2022년 7월부터 한국보다 높아졌다. 한·미 기준금리 역전은 이후 지속되고 있는데,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3.75~4.0%, 한국의 기준금리는 2.5%로 양국의 금리 격차가 꽤 크다. 2020년부터 본격화하고 있는 소위 서학개미들의 미국 주식 매수 붐은 가계 금융자산의 포트폴리오 다변화라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이 땅에서 채워지지 않는 성장에 대한 갈증을 미국에서 찾고자 하는 대중의 집단적 의지가 발현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의 상승은 이런 사정들이 반영된 결과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 원·달러 환율은 1050~1250원의 범위에서 오랫동안 움직여 왔는데, 이제는 한 단계 높아진 레벨에서의 환율 등락이 뉴노멀이 된 것 같다. 다만 현재 수준에서 환율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시나리오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1400원대 중후반인 최근 원·달러 환율의 레벨이 중기적인 고점 부근이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2026년에는 원·달러 환율이 현재 수준보다는 크게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한국과 미국의 잠재성장률은 모두 1.8~2.0% 내외로 추정되는데, 최근 3년간 미국의 성장률이 한국을 크게 웃도는 데는 기술혁신보다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가 더 큰 영향을 줬다고 본다. 인공지능(AI)으로 인한 생산성 개선은 미래의 기대치다. 바이든 행정부 때는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의 대규모 지출이 끝난 이후에도 재정적자가 GDP의 5~6%대에 달했고, 트럼프가 집권한 2025년에도 비슷한 규모의 재정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힘든 과도한 지출이다. 2026년 한·미 양국의 GDP 성장률 컨센서스는 공교롭게도 1.9%로 같다. 내년 한국과 미국의 성장률 격차는 크게 좁혀지거나, 컨센서스의 변화 추이로 보면 한국이 미국을 상회할 가능성도 있다.
과도한 위기 조장은 도움 되지 않아
한·미 기준금리 격차도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6년 말까지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5%로 동결, 미국 연방기금 금리는 0.25%씩 4차례 인하가 예상된다. 시장의 컨센서스처럼 4차례 인하가 단행될 경우 2026년 말 미국 기준금리는 2.75~3.0%로 내려앉게 된다. 한국인들의 미국 주식 몰입도 약해질 개연성이 있다. 돈은 수익률을 보고 움직인다. 그동안 한국 증시가 장기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국장 탈출은 지능순’을 실천에 옮겼다. 그렇지만 2025년(~12월3일) 한국 코스피는 68.2% 상승하고, 미국 S&P500지수는 16.4% 오르면서 수익률이 역전됐다. 투자자들의 행동은 가격 변화에 후행해 나타나곤 한다.
한국 경제가 장기적인 경쟁력을 상실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동의하기 힘든 주장이다. 최근 6개월간 일본 엔화가 미국 달러 대비 7.1% 절하됐다. 한국 원화는 4.8%, 대만 달러는 3.4% 각각 절하됐다. 대만의 환율 변화가 흥미롭다. 대만의 2025년과 2026년 GDP 성장률 전망치는 각각 5.7%와 2.6%에 달하고, 지난 3분기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는 16.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외환보유액은 한국보다 39%나 많은 6002억달러다. 대만은 요즘 글로벌 경제의 모범생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통화가치는 한국 원화에 버금갈 정도로 약했다. 환율을 보고 대만 경제의 구조적 위기론을 주장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자력으로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인 한국의 경상수지는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2025년 2분기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는 5.8%로 2016년 4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어느 정도의 긴장은 필요하지만, 과도한 위기감 조장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 미 국방 “이란 처참히 패배하고 있다···오늘, 공습 가장 격렬한 날 될 것”
- “여성 정치세력화 소홀했던 점 반성···윤석열의 총리 제안엔 ‘내게 수치’라고 거절” [단도
- 현직 부장판사, 조희대 향해 “결자해지” 직격···“신뢰 잃은 사법부, 리더십 위기”
- 엔화가 ‘반값’에 팔렸다…토스뱅크 앱서 환전 오류
- 오늘 ‘첫 상장’ 코스닥 액티브 ETF 흥행했나?···바구니에 담은 종목은?
- 4500원짜리 담배, 호주서 1만3000원에 되팔이···담배 90만갑 밀수출로 100억 챙겼다
- ‘3억원 돈다발’ 든 가방이 지하철에···역 직원 신고로 2시간 반 만에 주인 찾아
- [속보]‘모텔 연쇄살인’ 김소영 재판행···검찰 “가정불화로 사회화 안돼, 이상동기 범죄”
- “이란 미사일 기지 80% 제거” 자랑한 트럼프, 전쟁 종료 시점엔 “꽤 빨리, 곧”
- [시스루피플] 국가 안 불러 “전시 반역자”된 이란 여자 축구선수들···5명 호주로 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