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재능이 모두에게 있는 건 아니다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2025. 12. 4.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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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꽃의 영화뜰]

[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 영화 '다잉' 스틸컷.

※ 주의 : 영화 '다잉'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장성한 아들과 건강이 성치 않은 노년의 어머니가 식탁에 마주앉아 있다. 아들 '톰'(라르스 아이딩어)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했던 어머니가 여전히 불편하기만 하다. 어머니의 선 넘은 고백은 마음을 한층 힘들게 한다. “네 아빠랑 내가 돈에 쪼들릴 때 갑자기 사고처럼 네가 들어섰어. 좁은 방 한 칸에서 세 식구가 얹혀살았는데 넌 계속해서 울어댔지. 그래서 내가… 널 떨어트렸어. 던진 것 같기도 해. 그날 깨달았던 거야.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톰'은 절망스럽다는 듯 답한다. “엄마가 아프다는데도 곧 죽는다는데도 느껴지는 감정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죄책감 느낄 필요도 없다는 걸 이제 알았네요.”

이 영화의 태도가 줄곧 이렇다. '톰'과 어머니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인간관계로 무려 3시간에 달하는 상영시간 내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매순간 빠짐없이 마음을 거슬리게 만드는 엄청난 재주(?)는 독일 출신 매티어스 글래스너 감독의 것이다. 지난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최초 공개하면서 은곰상(각본상)을 수상했고, 자국 독일을 시작으로 유럽 관객을 만난 뒤 오는 10일 우리 극장가를 찾는다. 가족과 연인, 곁에 둔 사람들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이지만, 그런 시류 따위는 전혀 아랑곳없이 '삶에 대한 기대 없는 시선'을 고수하는 이야기로 극장 문을 열어젖힐 셈이다.

▲ 영화 '다잉' 스틸컷.

제목부터 '죽어감'을 의미하는 '다잉'이다. 작품 속 인물들 대부분은 한숨 나는 삶을 살고, 그중에서도 몇몇은 어떤 이유로든 죽게 된다. '톰'은 최근 여자친구의 출산을 경험했다. 친부가 아님에도 여자친구의 간청에 따라 새아빠 노릇을 하게 되는데,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와 자꾸만 마주치게 되는 상황이 씁쓸하다. '톰'의 여동생 '앨렌'의 상황도 꽤 심란하다. 알코올중독 상태를 면치 못하다가 애 둘 딸린 유부남 동료와도 술을 진탕 마셔버렸다. 금기를 어긴 대가로 가정을 정리하고 '앨렌'에게 올 것 같던 유부남은 돌연 아내와 셋째를 가졌다고 통보한다. 답도 없는 자기 삶만으로도 숨이 버거운 '톰'과 '앨렌' 남매에게 '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가셨다'느니 '어머니 다리가 불편하다'느니 하며 들이닥치는 본가 소식이 달가울 리 없다.

'다잉'의 특이한 점은 대항하는 감정이 없다는 거다. 엉망인 가족을 뒀으니 그들을 열심히 미워하겠다든가, 복수의 심정으로 스스로를 파괴하겠다든가, 아니면 나만큼은 최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든가 하며 맞서는 태도가 전혀 없단 얘기다. 냉담한 정도를 넘어 때로 냉혹할 정도로 인물들의 상황을 판단 없이 그저 보여주기만 할 뿐이다. 이 태도의 정점은 오랜 친구의 자살 시도를 말리지 않는 '톰'의 모습일 것이다. 평생을 우울증으로 괴로워한 친구의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는 뜻 모를 표정으로 친구의 집을 지키고 앉아 있다. '그래도 죽게 두는 건 안 된다'는 전화 속 여자친구의 목소리에 그는 오랫동안 품어온 생각을 전해본다. “행복해지는 것도 재능이고 그게 모두에게 있는 건 아니야.”

▲ 영화 '다잉' 포스터.

관객이 암담한 상황만 죽도록 이어지는 이 작품을 관람하며 답답함과 괴로움을 쌓아두다가 유일하게 그 심정을 분출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톰'이 죽은 친구가 남긴 '죽음'이라는 곡의 연주를 지휘하는 마지막 5분간일 것이다. 어머니 때문에, 여자친구 때문에, 오랜 친구 때문에 겪었던 지난한 사건들과 그로 인해 요동쳤을 내면의 크고 작은 감정들을 마음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상세하게 지켜본 관객은 그 지휘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오묘한 표정으로 눈물을 보이는 '톰'의 얼굴을 통해 '대체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토록 엉망인 삶이라도, 우리에게 정말 살아가야 할 의미가 있는 걸까.

스스로에게 묻게 될 그 무거운 질문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어설픈 위로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면, 이유는 단순하다. 각자의 이유로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시간을 지나는 중인 이들에게 섣불리 행복이나 낙관, 삶의 의지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얼마나 무용한 일인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해야만 한다'는 관습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한층 더 고통스러워지는 매일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행복해지는 것도 재능이고 그게 모두에게 있는 건 아니다”라는 '톰'의 말은 차라리 마음 한편이 시원해지는 고요한 일갈인지도 모르겠다. 삶의 괴로움을 충분히 아는 이들끼리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 말이, 지치고 남루해진 채로 한 해의 마지막에 다다른 당신의 삶에 값싸지 않은 위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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