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가해 참지 않아”…곽혈수 고백에 ‘2025 미투’ 확산

고나린 기자 2025. 12. 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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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성폭력 사건, 5일 첫 공판
‘비동의 강간죄’ 국민청원도 이어져
지난달 9일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서 시작된 ‘2025 미투’ 운동 관련 게시물. 엑스 갈무리

#미투(METOO)2025, #내고백은저항이다, #세상모든곽혈수를위해, #비동의강간죄당장입법하라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자신의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고백하고 피해자들과 연대의 뜻을 밝히는 ‘2025 미투운동’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이는 비동의 강간죄(간음죄) 입법을 요청하는 국민동의청원으로 이어졌고, 4일 기준 8만8천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이 청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회부됐다.

‘2025 미투운동’은 한 여성 유튜버의 성폭력 피해 고백이 계기가 됐다. 지난달 2일 구독자 23만여명을 보유한다이어트·일상 유튜브 채널 ‘곽혈수’ 운영자 ㄱ씨는 지난해 5월 자신이 한 택시 기사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으며 재판이 진행 중이란 내용의 영상을 올렸다. ㄱ씨를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는 한겨레에 “가해자는 지난해 준강제추행 혐의로 한 차례 송치됐다가, 경찰의 보완수사를 거쳐 지난 3월 준강간치상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9월에 기소돼 이달 5일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며 “가해자가 법원에 국민참여재판을 요청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ㄱ씨는 피해 사실을 고백한 이후 ‘생존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을 살아내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그 뒤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피해를 대중에게 증명하라’는 2차가해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를 두고 볼 수 없다며 다시 ‘미투운동’ 흐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2025 미투’ 해시태그 운동을 기획한 ㄴ씨는 “피해자가 혐오나 비난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를 느꼈다”고 말했다. 해당 운동에 참여한 20대 ㄷ씨도 “ㄱ씨의 영상에 쏟아진 비난을 보고 주저 없이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여전히 사회는 성폭력 피해자를 ‘불결한 존재’로 낙인찍는다”고 우려했다. 2025 미투 해시태그를 단 게시글은 1만2천개를 넘기기도 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해온 연대자 디(D·활동명)는 “성폭력 피해자를 공격하는 게 일종의 ‘놀이’가 된 온라인 생태계에서 이번 미투 운동이 일어난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ㄱ씨 사건에 대한 수사기관과 유튜브의 2차 가해는 도를 넘은 상태다. ㄱ씨가 유튜브에 영상을 공개한 뒤 일부 유튜버들이 2차가해 영상들을 버젓이 만들어 올리고 있다. 범행이 이뤄진 ㄱ씨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직접 찾아가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많아 이곳에선 범죄가 일어날 수 없다’고 비난하는 식이다. 김 변호사가 공개한 피해자 경찰 조사 문답서 일부 내용을 보면, ㄱ씨는 범행 당일 오전 경찰에 피해를 신고했음에도 경찰에게 ‘왜 범행이 발생한 새벽 바로 신고하지 않았느냐’ 등의 질문을 들었다.

김 변호사는 “성폭력 피해에 대한 ‘의심’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이들로 인해, 피해자들은 어렵게 용기를 내도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다”며 “현행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적극적 조처를 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두고 있기에 정부도 온라인상 공격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미투 운동이 2018년 미투 운동 뒤에도 강간죄 개정 등 법제도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채 여성·성평등 이슈에 대한 ‘백래시’(반발성 공격)만 한층 거세진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20대 국회에서는 ‘2018 미투 운동’으로 강간죄 기준을 동의 여부로 바꾸는 형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고, 이번 22대 국회에선 법안 발의조차 안 되고 있다”며 “‘피해자의 말하기’는 여전히 힘이 있지만, 이러한 말하기에 대한 정부·국회의 적극적 응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투운동 참여자들은 피해자가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로 폭행·협박을 당해야만 형법상 강간죄가 성립되기에, 여전히 ‘피해자다움’을 강요받고 ‘저항의 정도’를 재단 받고 있다며 비동의 강간죄 입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미투운동에 참여한 연대자 에이치(H·활동명)는 “수사기관과 재판부가 ‘저항이 불가능한 수준’을 판단하기에 피해자마다 사건 해석이 갈린다. 지금 당장 피해자 보호를 위해선 비동의 강간죄 입법,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보복성 고소에 대한 법적 제재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미투 운동은 언제나 성폭력이 개인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임을 폭로하는데, 언론 등에서 ‘유명한 가해자’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러한 가해자의 법적 처벌에만 관심이 쏠리고 일상의 성폭력 문제는 방치됐다”며 “‘곽혈수 미투’처럼 현실에선 술·수면·약물 등에 의한 ‘준강간’ 피해자들이 많은 만큼, 강간죄 개정으로 피해자 보호 사각지대를 없애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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