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도 없던 시절, 모험 나섰던 산업영웅들
40년 전 美환경규제는 큰 벽
엔진 설계 수십 번 뜯어고쳐
전기차 개념조차 생소할 때
직접 부품 조달해가며 실험
포철 1고로도 맨손서 탄생
4일 무역의 날을 맞아 정부가 선정한 산업 현장 역군들의 이야기가 잔잔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산업·수출 현장의 주요 공헌자 9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현장의 경험과 기술이 대한민국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강조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우선 한국 자동차 수출이 올해 말 기준 718억달러로 예상되며 사상 최대 실적이 유력한 가운데 산업 현장에서 기술 자립을 이끌었던 1세대 기술자들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포니의 미국 수출과 국내 최초 전기차 개발을 이끌었던 김기영·박동주 전 현대자동차 책임은 이날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역경과 극복 경험을 공유했다.

1980년대 포니와 엑셀 개발 당시 배기가스 규제 대응을 맡았던 김 전 책임은 한국 차의 첫 미국 수출을 현실화한 '숨은 주역'으로 꼽힌다. 당시 한국 차의 미국 수출은 사실상 '불가능한 도전'이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김 전 책임을 비롯한 수출 역군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불가능은 현실이 됐다.
김 전 책임은 당시를 회상하며 "솔직히 우리도 처음엔 막막했다"며 "미국 환경 규제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그는 "엔진 기술도, 배기가스 제어도 경험이 부족했다"며 "그래서 일본 미쓰비시와의 기술 협업을 통해 처음부터 다시 배우다시피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엔진 맵을 고치고 시험 차를 직접 운전했다. 시험을 하면 또 기준에 안 맞아 다시 뜯어고치기를 반복하는 시행착오가 몇 달간 반복됐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은 결국 기술력이 됐다. 노력의 결실인 현대차 엑셀의 미국 진출은 한국 차 글로벌 시대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엑셀이 미국에서 팔렸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차도 할 수 있다'는 증거였다"며 "단순한 수출이 아니라 기술 자립의 선언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후배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의식도 강조했다. 김 전 책임은 "기술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실패를 반복할 수 있도록 정책·조직이 사람을 지지해줘야 한다"며 "그게 한국 차가 더 성장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국내 최초의 전기차 개발자인 박 전 책임은 1990년 울산기술센터에서 '솔라카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당시 그는 배터리·모터·인버터를 직접 찾아 조립하며 현대차 최초의 전기차(EV) 프로토타입(Y2 쏘나타EV)을 완성했다. 그는 "'전기차'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던 시절이었다"며 "'이게 될까' 하는 의문이 더 컸지만 언젠가는 친환경차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쏘나타 차체에 배터리를 얹고 모터와 인버터를 직접 수급해 조립하는 방식으로 무작정 시작했다.
개발 과정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박 전 책임은 "한 번 달리면 금방 방전되고 모터가 멈추기도 했다"며 "그때는 그 모든 게 실험이었지만 실패들이 쌓이면서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감을 잡게 됐다"고 밝혔다.
이러한 경험의 축적은 지금의 전기차·하이브리드 차량 등 신기술 개발의 마중물이 됐다. 박 전 책임은 "미래 차 경쟁력은 결국 연구개발(R&D)의 끈질긴 축적"이라며 "기초 기술에 대한 투자를 줄이면 안 되고 도전을 허용하는 분위기와 R&D 투자가 지속돼야 한국 차가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73년 6월 포항제철 1고로(용광로)에서 첫 쇳물(용선)이 생산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영직 씨도 이날 오찬에 참석했다. 그는 오찬 전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엔지니어와 숙련공을 계속 육성하는 게 제조강국 지위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건설부(현 국토교통부) 4년 차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1968년 포항에 종합제철(포스코의 최초 사명)을 짓는다는 공고를 신문에서 보고 간부요원으로 지원해 포항제철소 건설 작업에 참여한 건설 엔지니어다.
이씨는 "포스코 창립 요원이 나를 포함해 모두 34명이었는데 제철소라는 곳을 직접 본 사람은 박태준 사장밖에 없었다"며 "신일본제철의 도움을 받고, 또 치열하게 공부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현재의 한국 제철산업을 일궈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축적된 경험을 새로운 세대에게 전수하면서 엔지니어와 숙련공을 키워 나가야 제조 역량을 계속 높일 수 있다"며 "일시적인 해외 인력 조달로는 풀 수 없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가 제조 인력 육성"이라고 했다.
이씨는 첨단 산업과 금융·서비스업이 각광받으면서 젊은 세대가 제조업 현장을 기피하는 현상을 우려했다. 그는 "기업은 제조인력에 대한 처우와 복지를 개선해줘야 하고, 정부는 기업의 이런 육성 노력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지원을 해줄 필요가 있다"며 "중화학 산업은 한국 경제의 중추인 만큼 정부의 각별한 지원이 필요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추동훈 기자 /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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