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부터 천재 디자이너까지…티파니 빛을 완성한 3명의 거장
찰스 티파니, 188년 전 뉴욕서 창업
정찰제 도입해 고급 만년필·은스푼 판매
밴드 위 다이아 배치 '티파니 세팅' 첫 개발
루이스 티파니, 자연의 아름다움 입히다
식물 덩굴·꽃 모티프, 램프·도자기에 적용
아트 주얼리 신설해 브로치 등으로 확장
20세기 '티파니 상징' 탄생 장 슐럼버제
하이주얼리 '버드 온 어 락' '식스틴 스톤' 디자인
완벽한 대칭 아닌 불완전함의 아름다움 선사

실크와 새틴 드레스에 보닛을 쓴 여성들, 그 사이로 마차가 오가는 1830년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이곳에 작은 문구점 하나가 문을 연다. 사흘간 번 돈은 단 4.98달러. 훗날 이 상점은 미국 국새를 디자인하고, 링컨과 루스벨트 등 대통령들에게 대를 이어 사랑받는 브랜드가 된다. 영원불멸의 사랑을 상징하는 아이콘, 188년 역사의 미국 럭셔리 주얼리 하우스 티파니 이야기다.
티파니가 오랜 세월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보석보다 더 찬란했던 인물들이 있어서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아레나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위드 러브, 서울(With Love, Seoul)’은 티파니의 영광을 만든 주역을 소개한다. 창립자 찰스 루이스 티파니, 그의 아들이자 티파니의 초대 아트 디렉터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 그리고 하우스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장 슐럼버제가 남긴 유산을 조명한다.
뉴욕 넘어 유럽까지…‘찰스 티파니’ 연대기

찰스 티파니는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섬유업을 하는 부유한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1837년, 스물다섯 살이 된 그는 친구 존 B 영과 함께 아버지에게 1000달러를 빌려 브로드웨이 259번지에 상점을 열었다. 고급 편지지와 만년필, 은스푼 등의 잡화를 판매한다. 창업 경험도, 큰 자본도 없었지만 비즈니스 감각만은 탁월했다. 당시 통용되던 가격 흥정제 대신 정찰제를 도입해 상류층의 신뢰를 얻었다.
그의 수완이 돋보이는 일화는 또 있다. 티파니 매장 앞은 늘 시간을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입구 중앙에 시계를 놓아뒀기 때문이다. 당시 시계는 고가의 사치품으로 주로 상류층만 소유할 수 있었고, 교회나 광장 등 시계가 있는 곳엔 사람들이 모였다. 찰스 티파니는 여기서 착안해 1853년 뉴욕 매장 정면에 신화 속 아틀라스가 하늘 대신 시계를 짊어지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설치했다. 높이 약 3m의 이 시계는 지금도 뉴욕 5번가 플래그십 스토어를 지키고 있다.
이번 전시는 뉴욕 아틀라스 시계를 한국에 옮겨놓은 ‘러브 오브 레거시(Love of Legacy)’ 공간에서 시작된다. 총 4개의 테마, 6개의 공간으로 들어서는 출발점이다. 아틀라스 시계상을 중심으로 양 날개처럼 45도 각도로 펼쳐진 화면에선 티파니의 정체성을 만든 순간들이 상영된다. 이윽고 마주하는 공간은 뉴욕의 첫 상점을 재현한 ‘러브 오브 크리에이티버티(Love of Creativity)’.
이 챕터는 인물별로 그들이 남긴 기념비적인 하이 주얼리와 그에 어울리는 분위기로 조성했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반기는 것은 에메랄드 네클리스다. 스페인 부르봉 왕가의 여왕 이사벨 2세가 사용하던 것으로, 깊은 녹색의 에메랄드가 부르봉 왕가를 상징하는 ‘플뢰르 드 리스’ 모티프와 번갈아 배치됐다.
티파니 하면 연상되는 티파니 블루 박스의 첫 번째 모델과 티파니 세팅 인게이지먼트 링도 관람객을 반긴다. 다이아몬드를 최대한 돋보이게 밴드 위로 높이 들어 올린 ‘티파니 세팅’, 우리가 흔히 아는 약혼반지의 모습이다. 1886년 그는 보석을 금속으로 모두 감싸는 베젤 세팅 대신 ‘티파니 세팅’ 기법을 세상에 내놨다.
루이스 티파니가 열어젖힌 새로운 여정
찰스 티파니가 1902년 별세한 뒤 그의 아들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는 아트 디렉터로 임명된다. 화가이자 장식디자이너로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유리 공예와 아르누보 양식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자연에서 예술의 영감을 얻곤 했다. 식물의 덩굴이나 꽃, 나뭇잎, 나비 같은 모티프를 램프나 주얼리, 도자기 등에 접목해 독창적인 미학을 선보인다.
그는 조직부터 혁신했다. 1907년 뉴욕 37번가 플래그십 스토어 6층에 아트 주얼리 부서를 신설하고 줄리아 먼슨, 메타 오버벡 등 여성 아티스트를 영입했다. 이들은 스틱핀과 브로치부터 정교한 목걸이와 헤어 오너먼트에 이르기까지 예술성과 장인정신이 결합된 작품을 내놨다. 루이스 티파니를 소개하는 공간의 천장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됐다. 펜던트 중앙을 슈퍼사파이어로 세팅한 네클리스에선 미감이 극대화된다. 사파이어 중에서도 높은 품질의 슈퍼사파이어는 빛의 움직임에 따라 반짝이는 별처럼 일렁이며 빛난다.
20세기 주얼리 예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슐럼버제
20세기 주얼리 예술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 티파니 하우스의 전설적 디자이너 장 슐럼버제다. 그는 ‘버드 온 어 락’ 클립, ‘식스틴 스톤’ 링 등 티파니의 상징적인 작품들을 탄생시킨 인물. 패션계에서 이름을 알려온 그를 당시 티파니 회장을 맡고 있던 월터 호빙이 1956년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그에게 희귀한 유색 보석과 다이아몬드를 마음껏 사용하도록 허락하고, 전용 스튜디오와 살롱을 제공했다. 무한한 상상력을 주얼리에 실현할 수 있도록 도운 셈이다.
이번 전시엔 그가 남긴 스케치와 이를 기반으로 태어난 주얼리가 모여 있다. 자연을 향한 그의 찬사는 92캐럿의 핑크 사파이어와 블루 사파이어, 다이아몬드로 세팅한 주얼리에서 정점을 찍는다. 핑크 사파이어를 둘러싼 나뭇가지 형상의 구조가 생동감이 넘친다.
티파니의 대표적 하이 주얼리 중 하나인 버드 온 어 락 역시 그가 빚어낸 걸작 중 하나. 사각의 유색 보석 위 사뿐히 내려앉은 새 한 마리는 슐럼버제가 카리브 해안에서 만난 왕관앵무새를 옮겨다 놓았다. 오랜 친구이자 평생의 후원가 버니 멜런의 별장에서 스케치를 완성했는데, 슐럼버제는 버지니아주 오크스프링 별장을 무척 사랑했다. 많은 디자인의 스케치가 이곳에서 완성됐다.
슐럼버제의 작품에선 완벽한 대칭을 찾기 힘들다. 불완전해서 더 아름다운 자연의 이치를 담고자 한 것. 뉴욕 사교계 인사이자 아트 컬렉터였던 마르타 레이몬드가 의뢰한 윙즈 클립은 그의 예술 정신을 온전히 반영한다. 양 날개 중앙, 두 개의 사파이어는 미묘하게 틀어져 있다. 마르타는 이 클립을 보고 화려한 코끼리 얼굴을, 누군가는 예수님을 연상했다.
전시는 12월 28일까지로 2주간 연장됐다. 사전 예약 필수, 관람료는 무료다.
강은영 기자 qboom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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