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미술관 점령한 인상주의 명작…당신의 선택은

성수영 2025. 12. 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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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예술의전당/국립중앙박물관
인상주의 전시 비교 분석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의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전시 관람객들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을 감상하고 있다. 이 그림의 다른 버전이 지금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오르세·오랑주리 미술관 전시에도 나와 있다. /뉴스1


‘뭘 봐야 하나.’ 국내 미술 애호가들이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주요 미술관 세 곳에서 굵직한 인상주의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어서다. 인상주의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미술 사조로 꼽힌다.

세 전시 모두 해외 유수 미술관의 주요 작품을 가져온 대형 기획전. 이처럼 수준 높은 대규모 인상주의 전시 기획전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대표작 ‘피아노 치는 소녀들’ 세 점 중 두 점이 국립중앙박물관과 예술의전당에 동시에 나왔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세 전시를 모두 보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찮다. 무엇을 봐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각 전시의 특징과 장단점을 비교 분석했다.

중후한 명작의 향연,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제목은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까지’다. 제목 그대로 현대미술 이전의 서양미술사 전체를 조망한다. 미국 샌디에이고미술관 소장품 65점이 왔다.

세종문화회관 전시전경.


히에로니무스 보스 '그리스도의 체포'. /세종문화회관


샌디에이고미술관의 강점은 스페인 미술 컬렉션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엘 그레코의 걸작 ‘참회하는 성 베드로’를 비롯해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등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탁월한 스페인 작가들의 작품이 포함됐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도 한 점 나왔다. 현존하는 보스의 작품은 20여 점에 불과하다.

작품 하나하나 수준이 높다. 클로드 모네의 ‘샤이의 건초더미들’,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의 ‘양치기 소녀’, 호아킨 소로야의 ‘라 그란하의 마리아’ 등 여러 대가의 수작이 다수 나왔다. 샌디에이고미술관 관계자는 “한 번도 해외로 반출하지 않았던 작품이 28점이나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푸른 눈의 소년’도 주목할 만하다. 감상 포인트는 그림 왼쪽 아랫부분. 소년의 어깨 부분에 모딜리아니가 실수로 남긴 지문이 있다. 육안으로 지문까지 확인하는 건 어렵지만, 빨간 물감이 번진 부분은 알아볼 수 있다. 미술관 측이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했다고 한다.

클로드 모네 '샤이의 건초더미들'. /세종문화회관


전시 공간 연출이 훌륭하다. 그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은 낮은 층고와 협소한 공간 탓에 블록버스터 회화 전시를 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을 받아왔다. 같은 기획사가 직전에 연 전시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는 빽빽한 작품 배치와 빛 반사 문제로 비판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조명과 동선을 대폭 개선해 공간적 한계를 보완했다. 전시장에 배경으로 깔리는 클래식 음악도 감상에 멋을 더한다. 인상주의 작품 비중이 세 전시 중 가장 낮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전시는 2월 22일까지, 성인 2만3000원.

르누아르·세잔 좋아한다면, 예술의전당

르누아르가 자신의 아들을 그린 그림(왼쪽)과 세잔이 자신의 아들을 그린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다. /예술의전당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오르세미술관, 오랑주리미술관전’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미술관이 협력해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폴 세잔을 집중 조명한 것. 오랑주리미술관 소장품이 한국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인상파 동료로 만난 두 화가는 1880년대부터 노년까지 서로 예술에 대한 고민을 나누곤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추구한 화풍은 전혀 달랐다. 르누아르가 부드러운 붓터치로 인상주의 테두리 안에서 인물화의 따뜻함을 극대화했다면, 세잔은 견고한 구조와 투박한 색채로 인상주의를 해체하고 현대미술의 문을 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사람의 화풍이 어떻게 다른지 명확하게 대조할 수 있다.

폴 세잔 '사과와 비스킷'. /예술의전당


예술의전당 폴 세잔의 ‘세잔 부인의 초상’.


전시장 곳곳에 르누아르의 화사한 그림과 세잔의 분석적인 그림이 함께 걸려 있다. 예컨대 르누아르가 장발의 어린 아들을 그린 작품은 따뜻하고 화사한 반면 세잔이 아들을 그린 작품에서는 차갑고 무거운 계열의 색채, 냉정한 표정이 시선을 끈다. 세잔이 아내를 그린 작품도 마찬가지로 험상궂은 분위기다. 이런 화풍 차이에는 쾌활하고 사교적이었던 르누아르,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었던 세잔의 성격이 반영돼 있다.

르누아르의 아름다운 꽃다발 그림을 가볍게 즐기고 싶은 관람객부터 세잔이 정물화에 담은 구성 원리를 자세히 탐구하고 싶은 애호가까지 다양한 관객층이 저마다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전시다. 작품은 50여 점으로 전시 말미 피카소의 소품 일부를 제외하면 다른 화가의 작품은 없다. 한 주제를 깊이 파고드는 기획을 선호하는 관객에게 적합하다. 1월 25일까지, 성인 2만2000원.

예술의전당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놀이 중인 클로드 르누아르’.

인상파 숨은 주역 보고 싶다면, 국중박

국립중앙박물관의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을 가져온 전시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로버트 리먼 컬렉션’ 회화와 드로잉을 중심으로 총 81점을 선보인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명작 위주의 구성을 기대했다면 낯설 수 있다. 한 번쯤 봤을 만한 작품은 고갱의 ‘목욕하는 타히티 여인들’,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 정도다. 대중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모네의 작품이 전시 라인업에 포함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인 고갱의 '목욕하는 여인들'. /뉴스1


알프레드 시슬레 '밤나무 길'./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전경.

전시는 특정 거장의 대표작 한두 점에 기대기보다 인상주의의 외연을 넓힌 숨은 주역들을 다양하게 소개한다. 카미유 피사로와 알프레드 시슬레의 회화를 비롯해 장 프레데리크 바지유의 드로잉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를 통해 전시는 인상주의 화단 전반의 흐름과 당대 작가들의 다양한 시도를 실감 나게 보여준다. 이 밖에 에두아르 뷔야르, 앙리 에드몽 크로스 등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아름다운 그림으로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화가들의 작품이 눈에 띈다.

국립중앙박물관 특유의 아름다운 전시 디자인과 공간 연출이 돋보인다. 누구나 아는 작품 한 점보다 인상주의의 다양한 면모를 들여다보고 싶은 ‘고수’들, 혹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다른 기획전과 연계해 관람하려는 이들에게 적합한 선택지다. 3월 15일까지, 성인 1만9000원.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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