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베네수 지상공격 한다는데…‘최대투자국’ 中은 왜 조용할까[디브리핑]

서지연 2025. 12. 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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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네수엘라 사태 ‘거리두기’…마두로 대통령 지원 ‘침묵’
2000년대 ‘최대 후원국’이던 중국…경제 붕괴 이후 태도 급변
“美강경책, 되레 中에 ‘강대국 영향력권 논리’ 복원 기회줄수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미국이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면서 중국의 대응에 국제사회 이목이 쏠리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20여년간 중국의 최대 투자국 중 하나로 꼽혀 왔지만, 정작 중국은 이번 사태에서 이례적일 만큼 조용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접근성을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3일(현지시간) “중국은 미국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압력을 ‘외부 간섭’이라 부르며 자제를 촉구했지만, 베네수엘라 지도자를 옹호하겠다는 의사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최근 카리브해에 군함과 병력을 추가 배치하고, 마약 운반선에 대한 공습까지 단행하며 사실상 지상작전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마두로 대통령은 “제국주의적 침략”이라 반발했지만, 중국·러시아·이란 등 우방국들은 명확한 군사 지원 언급을 피하고 있다.

SCMP는 이 같은 침묵이 중국·베네수엘라 관계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중국과 베네수엘라 관계는 2000년대 원유 호황기에 급속히 확장됐다. 당시 중국은 베네수엘라에 수백억달러 규모의 대출과 투자를 제공했고, 베네수엘라는 중국산 무기와 감시장비를 대량 도입하며 전략적 협력을 강화했다. 인프라·철도·에너지 등 중국 기업이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들도 잇따라 가동됐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경제가 붕괴하고 원유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대출 상당수가 부실화됐고, 일부 프로젝트는 중단됐다. 중국 석유 기업들은 국영석유회사 PDVSA와의 합작 사업에서 난항을 겪고 있으며, PDVSA 생산량은 전성기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만성적인 미지급금 문제도 해결되지 않으면서 다수 중국 기업이 철수했다.

이 같은 경험은 중국의 태도를 더욱 신중하게 만들었다. 에반 엘리스 미국 육군 전쟁대학 교수는 “중국은 특정 정권에 충성하는 국가가 아니다”며 “군사적 개입을 통해 추가 손실을 떠안을 이유가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베네수엘라를 “부패와 비효율이 얽힌, 중국 기업에게 악몽 같은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AFP]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압박이 중국의 장기 전략을 미묘하게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표면적으로 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을 비난하지만, 실제로는 상황을 ‘전략적 관찰’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브라질 전략연구센터의 파울루 필류는 “미국이 남미에서 군사적 행동을 강화하면, ‘강대국의 영향력권’ 논리가 되살아나 중국이 대만 문제에서 주장해온 입장을 강화시켜주는 역설적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의 행동이 국제질서를 흔드는 방식에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강경 개입을 추진하면서도 다른 지역에서는 자제를 요구할 경우, 이는 미국 외교의 도덕적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은 이러한 균열을 장기 전략 차원에서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다.

베네수엘라와의 관계에서도 중국은 기존 투자를 최대한 회수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일부 전문가들은정권이 바뀌면 중국에 오히려 더 유리한 환경이 열릴 수 있다”며 중국이 ‘정권 교체 가능성’을 염두에 둔 실리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중국은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여전히 중개업자를 통해 들여오고 있으며, 소비재·차량·감시장비 등 필수 물자를 공급하면서도 대규모 현금 투입은 피하고 있다.

필류는 “중국의 전략은 매우 분명하다”며 “지금 개입해 손실을 키울 필요는 없고, 상황이 잦아들면 다시 관계를 재정비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태도 뒤에는 베네수엘라 투자 손실을 경험한 실리주의와, 대만·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경쟁이라는 더 큰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해석했다. 결국 중국은 마두로를 전면 지원하기에도, 미국과 정면 충돌하기에도 부담이 큰 상황에서 중국은 조용한 관망을 통해 장기 영향력을 유지하는 방향을 택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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