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디스플레이 청소노동자 유방암 산재 인정, 이 판결의 의미

강은희 2025. 12. 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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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하청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신청을 불승인 하는 일은 없기를

[강은희]

▲ 삼성반도체 하청노동자 집단 산재신청 2025. 9. 10.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앞에서 반올림 회원들과 산재피해당사자들이 삼성반도체 사내하청노동자의 폐암과 뇌종양 사망에 대해 집단산재신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반올림
지난주 수요일 서울행정법원은 약 8년간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에서 청소 업무를 담당하다 유방암을 진단받은 청소노동자의 산업재해 신청을 불승인한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5. 11. 26. 선고 2021구단79899 판결).

원고는 약 8년간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에서 협력 업체 소속으로 공장 내 청소 업무를 담당하였습니다. 그녀는 OLED 생산라인 전체를 오가며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먼지와 약품을 닦고 정리하였습니다.

원고는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생산설비가 있는 생산층뿐만 아니라 기계 운용을 위해 필요한 펌프, 냉각기, 배관 등이 있는 보조설비층을 1일 평균 8시간 동안 청소하였습니다. 보조설비층에 들어갈 때에는 위에 있는 생산설비층과 배관들에서 유해물질이 떨어질 수 있어 헬멧을 쓰고 청소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배관에서 액체가 새면 테스트지를 갖다 대어 반응 여부, 색깔, 냄새 등을 관찰하여 신고하고, 지퍼백에 담기지 않은 시약 공병을 모아둔 박스를 치웠습니다. 유해 화학물질을 내보내는 굴뚝을 엔지니어들이 방독면을 쓰고 청소하면, 원고는 잔여물을 특별한 보호 장구 없이 청소했습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단지 원고가 청소업무를 수행하였기 때문에 제조 공정 노동자들보다 유해물질 노출의 빈도와 정도가 높지 않았을 것이라 단정하며 원고의 유방암이 직업성 질병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며 다음과 같이 판시했습니다.

"원고가 청소 업무를 수행한 구역을 고려하면 원고는 OLED 생산의 전 공정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유해물질에 광범위하게 노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원고의 경우 청소업무를 수행하여 제조공정 오퍼레이터에 비하여 유해물질 노출의 빈도와 정도가 높지 않다고 보았고, 이러한 사정이 이 사건 처분의 주요한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앞서 본 것과 원고와 같이 청소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1일 8시간 동안 OLED 생산라인 전체를 오가게 되므로, 특정 구역에서 특정 작업을 수행하는 오퍼레이터와 비교할 때 노출된 유해물질의 종류는 더욱 다양할 수 있다. 따라서 OLED 생산라인 청소 근로자의 유해물질 노출 빈도와 정도가 낮다는 추정은 그 근거가 부족하다."

원고와 같은 청소노동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근무하는 반도체 제조 공정 노동자들의 곁에서 일하지만, 청소노동자들의 산업재해는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청소노동자들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19년 실시한 '반도체 제조 공정 근로자에 대한 건강실태 역학조사'에서도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반도체 제조 공정 노동자들의 직업성 질병이 인정된다면 그들의 곁에서 일하며, 반도체 제조 공정 노동자들도 출입하지 않는 보조 설비층을 오가며, 반도체 생산 공정 전 과정에 노출되는 청소노동자들의 직업성 질병은 당연히 인정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니 이 판결 결과를 근로복지공단이 받아들이고 이 이후로 제조 공정 오퍼레이터들과 동일하게 각종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하청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신청을 불승인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이 사건은 저에게 아주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실무수습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실무수습을 하던 당시 반올림은 삼성과 직업성 질병 피해자들의 보상을 위한 조정위원회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고, 결국 2018년 조정이 성립되었습니다. 그렇게 반도체 공장 내 직업성 질병 발병으로 인한 문제는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반도체 공장 내 직업성 질병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반올림은 오퍼레이터 산업재해, 하청노동자의 산업재해, 현장실습생의 산업재해 등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계속 발생하는 산업재해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여야 했습니다.

반도체 사업장의 직업성 암, 희귀질환 발병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다루는 유해화학물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어 병을 얻고, 산업재해 인정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반도체 사업장의 직업성 질환 문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반도체 사업장 내 산업재해에 대한 대책 없이 반도체 특별법을 제정하여 반도체고등학교, 반도체특성화대학교, 대학원을 증설하겠다고 합니다. 주 52시간의 예외 조항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안 될 일입니다.
▲ 반도체특별법 반도체고 설립규탄 기자회견 2025. 7. 24.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반올림, 서울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이 반도체특별법 반대, 청소년 노동안전보장, 반도체고 설립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사진
ⓒ 반올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소식지에도 실립니다. 이 글은 강은희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기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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