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에서 만난 상쾌한 바람, 강변에서 누리는 산뜻한 풍경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대요.// 강가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사공이 배를 젓다 잠이 들어도/ 저 혼자 나룻배를 저어간대요"
생태해설사의 하모니카 연주에 맞춰 경상남도 환경재단 생태누리바우처에 참가한 경상남도장애인종합복지관 장애인들이 함께 동요 '산바람 강바람'을 부릅니다.
지난달 이들은 찾은 곳은 합천 정양늪생태공원입니다. 습지 위로 설치된 데크 위에 함께 모여 생태해설사의 설명을 듣습니다. 수면 위로 솟은 노랑어리연·수련과 마름·개구리밥, 둥치가 굵어진 왕버들 등 습지의 조용한 속삭임에 귀 기울이다 보면 가까운 산에서 강에서 불어온 바람이 수면에 잔잔한 주름을 만듭니다.

정양늪생태공원은 전국 어린이집을 비롯해 초중고 학생들의 늪지 생태 학습교육장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도심 바로 옆에 있어 접근성이 좋고,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는 생태계 보고이기 때문입니다.
정양늪은 후빙기 이후 해수면 상승과 낙동강 본류 퇴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황강 지류인 아천의 배후습지입니다. 기원전 1만 8000년 최종 빙하기에 남해안 해수면은 지금보다 약 100m 이상 낮았습니다. 한반도는 일본과 연결되어 있었고, 낙동강은 지금과 같은 강이라기보다는 좁고 긴 골짜기였습니다. 그러다 후빙기 기후 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지며 기원전 약 6000년쯤에는 지금과 비슷한 지형이 만들어졌는데, 정양늪도 이즈음 형성됐다고 보면 됩니다.
낙동강 배후 습지들이 대부분 그렇듯 정양늪도 한때 최대 100만㎡에 이를 정도로 컸는데요. 합천을 흐르는 황강 수량이 줄어들고, 주변 토지 매립으로 현재 40만㎡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한때는 이곳에서 주민들이 고기를 잡기도 했었고, 이곳을 매립해 산업단지를 조성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어요.
하지만 2008년 제10차 람사르 총회 경남 유치와 함께 습지 보전 중요성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합천군이 정양늪 생태복원사업을 추진합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7년에 걸쳐 총사업비 77억 원을 들여 정양늪 생태공원 조성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약 8만 7000㎡의 늪지 주변 사유지를 매입하고 약 5만 3000㎥의 토사를 제거합니다. 늪의 수량 확보를 위해 근처 아천이란 하천과 연결하는 물길도 조성합니다. 여기에 메타세쿼이아, 왕버들을 비롯해 가시연 등 수생식물 13종 2만 7000그루를 심었고요, 탐방객 편의를 위해 탐방데크, 황톳길도 3.2㎞를 조성하고 현재 편의시설과 안내판도 잘 설치가 돼 있습니다.


합천군의 노력으로 정양늪은 생물 다양성의 보고이자 생명의 터로 다시 태어났고, 2020년 9월 경남도 대표 우수습지로 지정됩니다. 현재 수생식물 267종, 육상 및 육수동물 196종 등 463종의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합천군이 2018년 발표한 <정양늪 생태공원 생태계 조사>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면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수달,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삵이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가 됐습니다. 여기에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큰기러기,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 큰고니가 겨우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먹이 활동을 하고요. 가시연·수련·줄 등 여러 식물과 모래주사·동자개 같은 어류, 도마뱀·대모잠자리 같은 양서·파충·곤충류도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동물이 정양늪의 상징인데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금개구리가 정양늪에 살고 있습니다. 몸길이가 3.5~6㎝로 눈 뒤에서 등 양쪽으로 굵고 뚜렷한 금색(혹은 갈색) 선이 2줄 있는 개구리입니다. 보통 4월에 겨울잠에서 깨어나서 5~7월에 번식하고, 10월 중 다시 동면에 들어갑니다.
우리나라에만 사는 고유종이고요, 멀리 이동하지 않고 태어난 곳에서 죽을 때까지 삽니다. 주로 서울 경기 충남 전북 등 서쪽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각종 개발로 농지가 사라지고, 하천이 오염되면서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멸종위기종이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양늪에 사는 금개구리는 우리 지역에 그것도 여러 마리가 살고 있기에 더욱 소중합니다.
정양늪은 2011년 복원 사업 완료 후 방문객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3년 3만 1711명, 2024년에는 4만 6856명이 찾았습니다. 정양늪생태학습관에서 생태 관련 기본 정보를 알고 돌아보면 더 재밌습니다. 이곳에서는 생태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가족 등 단체 신청은 정양늪 누리집에서 하면 됩니다.




생태누리 바우처 참가자들이 다음으로 찾은 곳은 신소양체육공원입니다. 가을이면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입니다. 공원을 가득 채운 핑크뮬리(분홍억새) 군락이 주는 멋진 풍경 덕분입니다.
합천군이 이곳에 핑크뮬리를 심은 건 2018년입니다. 핑크뮬리는 미국이 원산지로 2014년 제주도에서 처음 조경용으로 재배됐는데, 가을이면 분홍빛으로 물드는 모습이 큰 인기를 끌며 전국적으로 유명해지죠. 2019년에는 국립생태원이 외래 생물 정밀조사를 통해 '생태계 위해성 2급' 식물로 지정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주도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사람의 도움 없이 겨울을 나기가 힘든 점 등 통제가 가능하다는 인식에 아직은 관상용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또, 자생식물의 성장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변채호, 2023)가 있기도 합니다.
신소양체육공원에서 핑크뮬리 군락이 차지하는 면적은 1만 8900㎡로 전체 꽃밭의 36% 정도라고 합니다. 이 말은 신소양체육공원에는 핑크뮬리 외에도 드넓게 펼쳐진 다양한 계절 꽃들을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대표적으로 가을에는 황화코스모스, 구절초, 국화 군락이, 봄에는 유채꽃 군락이 인상적인 풍경을 보여줍니다.
합천군에서는 매년 10월 초 핑크뮬리 절정기에 맞춰 핑크마켓 행사를 여는데, 만들기 체험, 의상 대여, 벼룩시장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습니다.
신소양체육공원에서 바로 이어지는 핫들생태공원은 합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관리하는 대규모 작약 재배단지입니다. 초여름이 시작되는 5월이면 작약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데, 이때 작약 축제가 열립니다. 작약은 약효성분이 있어서 뿌리 등이 약으로 쓰입니다. 중심 줄기 끝에 한 송이 꽃이 피어나는데 크기도 크고, 향이 엄청 진하죠. 그래서 넓은 꽃밭 사이를 거닐며 향과 색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바우처 일행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쌍책면 옥전고분군과 합천박물관입니다. 신소양체육공원과 핫들생태공원처럼 황강 자락을 낀 야트막한 능선에 늘어선 가야시대 무덤들입니다. 구체적으로 가야 '다라국' 지배층의 무덤으로 4세기 초부터 6세기 중엽까지 가야왕국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다른 지역 가야고분군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1985년 경상국립대학교 박물관 합천댐 수몰지구 주변 지역 지표조사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유적조사단이 합천군 초계면과 쌍책면을 잇는 출렁다리를 건너 쌍책면 성산리 구릉에서 '성산토성'을 확인합니다. 토성 규모와 위치 등을 확인한 조사단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토성 너머 옥전(구슬밭) 야산으로 조사 범위를 확대했죠.
그곳에서 도굴된 굴식돌방무덤을 발견했고, 위쪽 능선에서도 도굴 구덩이와 미처 가져가지 못해 곳곳에 나뒹구는 도굴품을 발견합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유적조사단이 능선 정상부를 따라 무리 지어 있는 대형 고분군을 만나면서 옥전고분군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다라국은 중국 양나라 원제(526~536년) 시기에 제작된 <양직공도>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서 <일본서기>에도 나옵니다. 학계에서는 합천의 옛 이름을 근거로 합천 지역에 독자적인 가야 세력 다라국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하다가 1985년부터 옥전고분군에서 가야 지배층 무덤과 유물이 발굴되고, 고분군으로부터 1㎞ 남짓 떨어진 곳에서 다라리(多羅里)라는 지명을 찾아 이곳이 다라국 지배자들의 묘역임을 확신하게 되죠. 이후 발굴 성과가 축적되면서 역사학계와 고고학계는 옥전고분군이 분포한 쌍책면 성산리와 다라리 일대를 '다라국의 중심지'로 인정하게 됩니다.
옥전고분군에서 합천 지역만의 독특한 무덤과 토기 문화가 확인되며 다른 가야왕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세력이 확인됩니다. 이는 가야가 <삼국유사>에 기록된 여섯 가야 외에도 더 많은 나라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옥전고분군 유물을 중심으로 합천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2004년 12월 9일 합천박물관이 문을 엽니다. 2012년 3월에는 합천역사관을 신축해 개관합니다.
합천박물관은 바로 옆 옥전고분군을 그대로 형상화했습니다. 박물관 광장 중앙 분수대에 세워진 조형물은 합천박물관 대표 유물인 '용봉문양고리자루큰칼'(옥전 M3호분에서 출토)의 칼자루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광장에서 박물관 건물로 올라가는 계단은 봉토(封土)를 받쳐주는 호석(護石)을 상징하고, 건물 외부를 감싼 흙벽은 고분 봉토를 나타냅니다. 이 흙벽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건물 입구로 들어가면 현실 공간에서 다라국 시대 지배자 무덤으로 이동하는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죠.
내부 중앙홀은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 가운데 가장 조형성이 뛰어난 원통 모양 그릇받침으로 디자인했습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 채광과 조명을 받은 용봉문양고리자루큰칼 칼자루가 벽면에 투영된 그림자와 함께 살아 있는 듯한 공간에서 역사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