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한 민법…쿠팡 물류센터 규정과 닮아" [인터뷰]

고은경 2025. 12. 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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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반려견 '말이'와 살며 동물권 눈떠
현재 동물 착취 방식 대신 공존 방향으로 가야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지난달 17일 서울 구로구 중앙당사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전통문화는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발굴할 수 있다”며 “굳이 소싸움을 이어갈 필요는 없다. 동물을 학대하는 방식은 이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상윤 기자

"인간이 자연과 비인간 존재를 파괴하고 착취해온 결과가 기후 재난과 전염병으로 돌아오고 있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국내 정치권에서 가장 진보적인 동물권 정책을 주장해 온 정치인으로 꼽힌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 다른 후보들이 반려동물 위주 공약을 내세울 때 권 대표는 야생동물 정책을 핵심 의제로 내걸었다. 그는 또 반려·전시·실험·축산동물 분야에서도 다양한 공약을 발표했다.

열네 살 반려견 '말이'와의 삶을 통해 동물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권 대표를 지난달 17일 서울 구로구 정의당 중앙당사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전국 곳곳에서 진행 중인 신공항·케이블카 사업을 "정치인들의 시대착오적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모든 생명은 존중받아야 한다"며 "동물을 생명체로 규정하는 법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간 중심에서 생태 중심 전환해야

제21대 대통령선거 당시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후보가 반려견 '말이'와 함께 동물 공약을 발표하는 영상을 찍고 있다. 민주노동당 유튜브 캡처

권 대표는 먼저 "말이가 나이가 들면서 사람처럼 걸음걸이도 느려지고 잠자는 시간도 늘었다"며 애틋함을 드러냈다. 그는 "말이는 가족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또 누가 제일 좋아하는지도 정확하게 안다"며 "말이를 보며 나도 한 사람에게 저런 신의를 지킬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개를 기르게 되면 개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며 "생명체 자체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노동 인권 전문가인 권 대표는 최근 야간 노동자가 연이어 사망한 쿠팡 물류센터 문제와 민법상 동물 지위의 공통점을 짚었다. 그는 "쿠팡 물류센터는 법적으로 '창고'로 규정돼 있어 냉난방기 설치 의무가 없다"며 "동물도 민법에서 물건으로 규정돼 생명체에 대해 고통을 주고, 사고파는 행위가 제한 없이 이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인간 중심에서 생태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동물을 법에서 독립된 생명체로 규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점차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대표가 야생동물 정책에 주력하는 이유는 기후위기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특히 대선 때 야생동물 공약을 맨 먼저 내세웠던 것은 녹색당, 노동당 등 기후와 생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함께했던 영향도 컸다. 그는 "인간을 생태계로부터 분리시키고, 자연과 비인간 존재를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고, 야생동물 서식지를 파괴한 결과, 인간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고라니·멧돼지 등 유해야생동물의 무분별한 사살 금지, 농가 피해 발생에 대한 공공 보상 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신공항·케이블카는 악성 포퓰리즘의 결과

권영국 정의당 대표가 지난달 17일 서울 구로구 중앙당사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하상윤 기자

권 대표는 신공항·케이블카 사업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내놓았다. 그는 특히 가덕도신공항, 제주 제2공항에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현재 15개 공항 가운데 11개가 적자를 내고 있다"며 "대부분 경제성과 안전성 문제가 있는 만큼 고속철도 등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문제제기가 계속됨에도 계속 공항, 케이블카가 추진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정치인의 책임"이라며 "지역 경제 걸림돌이 될 수 있는데도 효과를 부풀려 성과를 포장, 위장하는 악성 포퓰리즘 정책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가 5월 대선 후보 당시 전북 전주시 전북지방환경청 앞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천막 농성장을 찾아 문정현 신부와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전주=뉴스1

지방자치단체가 재원을 분담하는 방향으로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권 대표는 "그렇게 되면 지자체도 개발 사업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지, 엄청난 짐이 될지 꼼꼼하게 살필 수 있을 것"이라며 "나아가 이미 지은 공항도 적자로 운영이 어렵다면 문화 생태공간이나 재생에너지 단지로의 전환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권 대표는 그렇다고 지역 경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국립공원은 야생동식물을 보전하기 위해 만든 곳인데, 이를 파괴하는 케이블카 사업을 하자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면서도 "정치인들이 주민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기만하는 대신 지역 특징에 맞는 농업이나 산업을 꾸준히 만들고 고민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정의당에서도 가급적 고기 회식 자제

마지막으로 권 대표는 공장식 축산을 줄여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의당에서도 가급적 고기를 먹는 회식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동물도 고통을 느끼고 감정이 있다. 인간이란 이유로 식욕을 위해 동물을 저렇게 학대해도 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A4 용지만 한 케이지에서의 닭 사육,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분만틀에서의 돼지 사육 방식은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고통을 주며 기른 동물을 먹는 게 인간 건강에 좋은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며 "값싼 고기를 얻겠다는 명목으로 동물을 착취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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