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섣달그믐에 / 김일우

최미화 기자 2025. 12. 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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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절정을 지난지 오래 되어 거리에는 낙엽들이 이리저리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이젠 만추를 지나 황량한 겨울로 접어든 것이다.

단단히 단도리를 하지 않으면 겨울나기가 힘들 것이기에.

김일우 시인도 글벗 최연근 시인이 저 세상으로 떠난 것을 '시인의 말' 서두에서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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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에 / 김일우

하룻밤이 너무 길어/ 빨리 가라 했는데// 이제는 붙잡아도/ 가버리는 섣달그믐// 바람이 살포시 웃으며 일러바친 내 나이// 달빛 지운 어둠이/ 자꾸 나를 두드리고// 대꾸하기 싫습니다 그냥 눈을 감습니다// 오늘이 내일이 되어/ 꿈속에 묻힙니다

『국어사전이 기가 막혀』(2025년, 세종출판사)

단풍이 절정을 지난지 오래 되어 거리에는 낙엽들이 이리저리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이젠 만추를 지나 황량한 겨울로 접어든 것이다. 사람들은 이미 겨울 채비를 한 지가 오래 되었다. 단단히 단도리를 하지 않으면 겨울나기가 힘들 것이기에. 섣달그믐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이어서 제일(除日)이라고 부른다. 무언가 비장한 느낌을 주는 날이다. 이렇게 또 한 해가 가고 마는구나, 하고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섣달그믐에」를 쓴 김일우 시인은 낯설다. 이력으로 볼 때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시인인 것을 알 수 있지만, 이번 시조집을 통해 처음 낯을 익히게 되었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봄을 깨무는 꿈속에서 내 작은 시심은 잠을 떨치고 있는가, 아무래도 나는 풋감같이 떫은 시밖에 쓸 수 없나 보다, 라고 적고 있다. 시에 대한 열망과 사랑이 지극한 것을 느끼게 한다.

하룻밤이 너무 길어 빨리 가라 했는데 이제는 붙잡아도 가버리는 섣달그믐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아쉬워한다. 세월은 그렇듯 매정하다. 붙잡을 수 없다. 특히 지인들이 어찌할 도리가 없어 하늘로부터 부름을 받아 하나둘씩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을 이따금 겪는다. 김일우 시인도 글벗 최연근 시인이 저 세상으로 떠난 것을 '시인의 말' 서두에서 적고 있다. 하여 잊혀질 수 있는 다행으로 하얀 자국을 남기며 바람이 지나고 있다, 라고 말한다.

특히 첫수 종장 바람이 살포시 웃으며 일러바친 내 나이, 라는 대목은 아프게 다가온다. 그가 첫 시조집 「산은 음악이다」를 펴낸 지 10년이 흘렀다. 그 무렵에 일흔이었다. 그러므로 세월의 무게가 꽤나 무거운 것이다. 그때 달빛 지운 어둠이 자꾸 나를 두드려대기에 화자는 대꾸하기 싫습니다 그냥 눈을 감습니다, 라고 묵묵부답으로 그 무거움을 견디어낸다. 그러면서 오늘이 내일이 되어 꿈속에 묻힌다.

이렇듯 그의 시조는 담백하고 진솔하다. 꾸밈없이 시종 잔잔한 톤으로 노래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감동을 안긴다. 끝으로 「오수를 즐기다가」라는 단시조를 옮긴다. 그의 시정신을 엿볼 수 있어서다.

낯가림에 삐친 꿈을/ 저만치 두어두고/ 일용할 양식으로 시집 한 권 꺼내드네// 눈썹에/ 무늬져 내리는/ 동그란 나의 일상.

가슴에 와 닿는 시편이다. 「국어사전이 기가 막혀」는 좋은 시조집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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