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성의 달리기 올해 러닝 특징과 내년 전망 개성만점 러닝 패션 뜨고 천천히 달리는 사람 많아져 ‘서브3’ 주자도 부쩍 늘어
2025년은 많은 이들이 달리기에 몰입한 해다. 러닝이 일상의 일부가 된 해다. 성완 제공
2025년에도 ‘러닝’ 인기는 광풍 같았다. 눈에 띄었던 특징 몇가지를 정리한다. 더불어 내년의 달리기는 어떤 모습일지 간단히 전망한다. 과학적 근거는 없다. 오랫동안 달려온 사람이 느낀 직감일 뿐이다.
유행에서 문화로
꽤 오래 지속되고 있는 유행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문화가 되었다. 러닝 크루를 비판하던 사람들조차 러닝을 시작했고, 그중엔 크루에 가입한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 지인 중 한명은 “크루 들어오면 달리기 안 하고 연애만 하는 줄 알았는데, 진심으로 달리더라고”라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사족이지만 그는 정말 고백을 하고 연애까지 시작하는 역설을 보여주었다. 너도나도 달리고, 러닝과 상관없는 브랜드조차 러너들이 모이는 곳에서 홍보 활동을 하다 보니 “요즘은 먹방 유튜버도 먹는 영상보다 달리는 영상을 많이 찍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방송국에서 러닝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유행의 단계는 진작 넘어섰고, 한 시대의 문화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러닝을 일상의 즐거움으로 여기는 러너들이 늘었다. 성완 제공
유명한 러닝화 브랜드 제품 보다 새로운 러닝 브랜드를 찾는 용감한 러너들이 늘었다. 성완 제공
브랜드의 민주화
특정 회사를 거론해서 관계자들에게 미안하지만, 나이키의 상승세가 꺾였다. 실질적으로 한국의 러닝 용품 시장은 적어도 최근 10년은 나이키가 주도했다. 전통 강자들을 완전히 자빠뜨리는 활약이었다. 모두가 이 브랜드를 입고 신었다. 여기서 역설이 발생했다. 여기저기 너무 많이 보이니 지루해진 것이다. 물론 여전히 날렵하고 멋지고, 소위 ‘힙’의 상징인 건 맞다. 그런데도 뭐랄까, 지루해졌달까. 그래서 그동안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나이키의 아성에 눌려 딱히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없던 브랜드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실 그 브랜드들은 러닝에 ‘진심’인 러너들에게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아오긴 했다. 올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니 묻고 따지고도 한 브랜드만 선택했던 사람들이 다양한 브랜드를 비교하고 경험하게 되었다. ‘브랜드의 민주화’라고 적었는데 좀 거창한가?
박세현씨는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러닝 스타일을 버리고 본인 마음대로 입는다. 훨씬 멋지고 자유로워 보인다는 평을 듣는다. 박세현 제공
패션 러너의 등장
사실 러닝 패션이란 게 별거 없다. 통기성 좋은 기능성 옷, 그리고 러닝화. 대체로 검은색을 많이 입었다. 아니면 밝은 회색 계열. 무난하다. 그런데 러닝화는 컬러가 화려한 게 많다. 무슨 영향 때문인지 모르지만 유독 러닝화는 무지개색이 다 있고, 심지어 형광도 있다. 그래서 처음 러닝화를 살 때는 “이 촌스러운 컬러들은 다 뭐야”라고 말하게 된다. 하지만 분위기에 금방 적응하고, 핑크색 러닝화에 발을 집어넣는다. 그러다 보니 러닝복을 입은 러너들을 멋있다고 말하긴 어려웠는데, 올해는 러닝 패션이 달라졌다. 엉뚱한 조합을 하는 러너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두건을 쓰거나, 목걸이를 하거나, 기능성 옷이 아닌 프린트 티셔츠를 입거나. 생각해보면 가볍게 달리기를 하는 날 굳이 기능성 티셔츠를 입을 필요가 없었고, 목걸이를 밖으로 꺼내고 자기 멋짐에 도취하며 달리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두건은, 달릴 때 머리카락을 눌러줄 수 있으니 오히려 좋았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없고, 하지 말라고 한 사람도 없는데 오랫동안 이른바 ‘러닝 패션’이라는 전형적인 스타일에 강력하게 적응해온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다. 러닝화는 여전히 컬러가 화려하다. 이 강력한 규범은 도대체 누가 우리에게 세뇌시킨 거지?
앞만 보고 빠르게 달리는 러닝도 좋지만, 풍경과 교감하며 달리는 기쁨을 이해하는 러너들도 많아졌다. 성완 제공
나만의 속도로 달리기
앞서 언급한 ‘러닝 패션’과 비슷한 맥락인데,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로 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패션뿐 아니라 속도도. 이상하게, 많은 사람이 빨리 달려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느끼며 달리기를 했다. 다들 빠른데 나만 느리면 이상하잖아.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정말 이상한 건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달리지 않는 것이다. 달리기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과 만나는 내면의 작용인데, 앞만 보고 빨리 달리면 도대체 자신은 언제 만나지. 그리고 빨리 달리기엔 종종 풍경은 기적처럼 아름답고 바람은 행복의 향기가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천천히 달리며 고요히 머무는 경험은 달리기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두개의 선물 중 하나다. 다행스럽게도, 또한 지극히 자연스럽게, 천천히 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굳이 표현하면 ‘존2 러닝’인데, 옆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의 페이스로 달리는 것이다. 자신의 최대 심박수의 60~70%가 존2 영역이다. “그렇게 달리면 운동이 되겠어?”라고 굳이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적어두자면, 지방이 활발하게 연소하는 구간이어서 다이어트에 좋다. 그리고 무리하지 않기 때문에 운동 시간을 길게 유지할 수 있으며 회복도 빠르다. 매일 달리기가 가능하다는 것. 달리기를 아주 잘하는 사람도 존2 영역대의 운동을 충분히 해야 궁극적으로 더 강인한 러너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운동을 소셜미디어에 빠르게 달린 기록을 공유하기 위해 하지 않았다니!
노진환씨는 지난 3월에 열린 서울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59분33초로 ‘서브3’를 달성했다. 노진환 제공
그런데도 불구하고 ‘서브3’
‘서브3’는 풀코스 마라톤을 3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이다. 2시간59분59초까지 인정. 짧은 거리라도 달리기 대회를 나가본 사람은 ‘서브3’ 주자를 우러러본다. 왜냐하면 100m를 25.5초로 422번 달리는 건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당연히 ‘서브3’ 주자는 많지 않다. 과거형이다. 아니, 현재형이다. 지금도 많은 건 아니다. 그런데 러너들의 수준이 상향평준화된 것은 분명하며, ‘서브3’ 주자들이 올해 부쩍 늘어난 것도 확실하다. 러닝 크루에 한두명 정도 ‘서브3’ 주자들이 있었는데, 서너명씩 있는 크루가 많다. ‘많다’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올바른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데, 거듭, ‘서브3’는 너무나 어렵기에 많은 게 말이 안 되는 건데, 많아졌다. 놀랍지만, 그렇다. 그리고 ‘달리기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두개의 선물 중 하나’를 이미 얘기했는데, 다른 하나는 역시, 빨리 달리며 한순간이나마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 순간 온갖 고민이 먼지처럼 사소해지기 때문이다.
내년엔 요가나 명상과 결합한 러너들의 활동이 늘 것으로 보인다. 성완 제공
2026년은 본격적인 웰니스의 해
앞서가는 사람들이 ‘웰니스’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 지 3~4년 정도 됐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큰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웰니스’ 시장에 뛰어들 때가 된 것이다. 그들은 늘 늦고, 반면 힘이 세다. 웰니스와 상관없는 회사들도 내년에 관련 사업을 준비 중이다. 웰니스는 의미를 간단히 정의하기 어려운 문화다. 대략 적어보면, 몸과 마음의 균형을 갖추고 매일 조금씩 더 나아지는 삶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데, 개인마다 추구하는 삶이 다르기 때문에 사전적으로 정의할 순 없다. 내가 생각할 때 웰니스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런 문화의 영향을 받아 개인 달리기의 형태도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본질적으로, ‘왜 달리기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될 것이다. 결국 행복을 찾기 위한 것이라면, 다른 사람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며, 스스로가 나아지는 방향으로, 자신의 달리기 여정을 찾아가면 된다. 생애 처음 달리기를 하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크루의 달리기 문화는 과거보다 성숙해져가고 있으며, 내년에도 그런 흐름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열명 스무명 무리 지어 달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겠지만, 서너명씩 친구나 가족과 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며, 그들은 달리며 함께 대화 나누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러닝과 요가, 러닝과 명상, 강아지와 함께 달리기 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올해보다 많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달리기를 삶의 중심에 두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한 단어로 귀결된다. 웰니스. 2026년은 본격적인, 너무나 확연한, 웰니스의 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