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하는 계엄군 어깨 두드려줬는데 “거의 강철 같더라” [당신의 6시간 ⑦]
2024년 12월3일, 국회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였고 이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자리 지키기’가 있었다. 〈시사IN〉은 12·3 쿠데타 1주년을 맞아, 그날 국회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킨 11명의 증언을 통해 비상계엄 해제 과정을 되돌아본다. 그날 민주주의는 어떻게 가까스로 지켜졌는가. 일곱 번째 순서는 황충연 국회사무처 경호기획관의 이야기다.
①김성록 국회의장 경호대장
②조오섭 국회의장 비서실장
③이지환 국회의장실 정무조정비서관
④원은설 국회의장실 정무비서관
⑤우원식 국회의장
⑥박소정·이시현 국회의장실 정무비서관
⑦황충연 국회사무처 경호기획관
⑧박영선 국회의장실 공보기획비서관
⑨송동민 국회의장실 연설비서관
⑩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

12월3일 그날은 저녁 약속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자고 있었어요. 아들이 저를 깨우더라고요. “아빠, TV를 한번 보셔야겠어요”라고 하면서요.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걸 그때 알았죠. 처음에는 가짜뉴스인 줄 알았고요, 그다음에는 전쟁이 났나 싶었어요. 담화를 들으면서 대체 어디서 전쟁이 났는지, 동부전선인가 서부전선인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끝까지 들어도 그런 이야기가 안 나오더라고요. 만약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된다면 그건 전시 상황이겠구나. 그런 생각은 해봤죠.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뉴스를 보고 전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다른 경우는 생각해 본 적도, 생각할 수도 없었어요.
밤 10시40분경 저희 직원한테 비상소집을 걸고 국회로 빨리 출동하라고 했어요. 저도 택시를 타고 국회로 왔어요. 국회 3문에 내린 시간이 10시58분쯤이에요. 그때 국회 3문은 경찰 버스로 막혀 있었고, 경찰이 버스 옆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을 다 막고 있더라고요. 제가 가서 “국회 경호기획관이다. 비켜라. 문 열어라” 이런 이야기를 몇 번 했는데, (경찰은) 들을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이었어요.
한 3~4분 지났나. 옆에 있던 직원이 담 넘어서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저도 11시 좀 넘어서 담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가게 됐어요. 비교적 일찍 도착한 편이에요. 나중에 보니까 제가 의장님과 같은 곳을 넘었더라고요. 국회 본관 3층에 도착해서 본회의장 문을 열었어요. 중앙홀에 계시던 의원들이 “문 열렸네, 들어가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본회의장으로 들어가셨어요. 본회의장 문을 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국회 안으로 의원들이 들어올 수 있을까. 과연 회의가 열릴까. 이 두 가지가 가장 걱정됐어요. 저도 못 들어올 뻔한 만큼 진입 통로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니까요. 같이 담을 넘었던 의원님이 계세요. 어느 분이셨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 의원님께 “의원님 단톡방에 담 넘어서 들어오시라고 이야기 좀 해주세요”라고 말했어요. 외곽 상황을 계속 살펴봤는데 제가 담을 넘을 때와 비슷하게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국회 경비대장하고 통화해보려 했는데 통화가 잘 안됐고요. 왜 문을 안 열어주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답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답답했어요.
국회에 우리 직원들이 들어와 있긴 했지만, 본관, 의원회관, 소통관, 도서관, 의정관 등등 모든 건물을 다 지킬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직원들에게 “본관만 지킨다. 국회 다른 건물은 일단 포기한다”라고 말했어요. 비상계엄을 해제하려면 본회의가 열려야 하니까요. 본회의가 잘 열릴 수 있도록 본회의장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인력이 필요하니 우선 다른 건물은 포기하고 본관을 지키기로 한 거죠.
그때는 계엄군이 국회 안으로 들어오기 전이었어요. 아주 오래 전 경찰이 국회에 들어와서 의원을 끌어내던 시절도 있었기 때문에, 저는 바깥에 있는 경찰이 혹시 국회 안으로 들어오면 어떡하나 걱정됐어요. 그래서 경찰이 국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대비해서 본관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군인들도 막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헬기가 국회에 착륙한 이후예요.
계엄군이 창문 깨고 들어올 줄이야

시간이 지나고 의원님들이 본회의장에 많이 들어오신 상황이었어요. 본회의장에서 어떤 의원님이 “어? 헬기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운동장에 헬기가 내리고 있다고 하길래 직원들한테 계엄군이 본관으로 들어오는 건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당부했어요. 저도 바깥에 나갔는데, 정현관(국회 본관 2층 정문) 쪽에서 본관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계엄군을 보좌관과 직원들이 같이 막고 있었어요. 이미 TV에서 많이 나오긴 했지만, 서로 몸으로 밀쳤잖아요. 군인은 총을 가지고 있었으니,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뚫고 들어올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며 다행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어떤 의원님이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마침 저도 군인이 2층 유리창을 깨고 본관으로 진입한다는 보고를 받았어요.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었어요. ‘저 사람들도 같은 국민이니 무리하지 않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유리창을 깨고 들어왔다는 것은 갈 데까지 가겠다는 의미잖아요.
본회의장에 모인 의원들이 빨리 회의하자고 하는데 그때 의장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있죠. 절차가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저는 그때가 조금 힘들었어요. ‘우리 역량으로는 총을 막을 수 없는데, 짧은 시간이라도 우리가 버틸 수나 있을까?’ 본회의장 앞으로 나가서 조금만 더 버티자고 우리 경호과 직원들을 다독였어요. 중앙홀에서 본회의장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던 기억이 나요.
결국 1시에 본회의가 열리고 우원식 의장님이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됐다고 선포하셨죠. 그때 저는 본회의장 의장석 아래쪽에 있었어요. 우리가 국회에서 할 일을 한 것이니 다행이었죠. 그런데 의원 중 한 분이 군인들이 아직 국회에 남아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군인을 내보내는 일은 국회 경호기획관인 제 몫이라고 생각해서 “제가 나가서 내보내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했어요.
본회의장 밖으로 나와 직원들한테 군인들이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바로 (바리케이드) 건너편에 있다는 거예요. 복도에 소파나 가구로 된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었는데, 그 바리케이드 위로 올라가서 보니 군인이 10명 조금 넘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지금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됐다. 당신들 국회에 있으면 위법한 거다. 빨리 나가라.” 군인은 ‘어 해제됐다고?’라면서 조금 당황하는 느낌이었죠. 한 1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그런 감정이 느껴졌어요. 옆에 있던 직원한테 계엄군을 데리고 나가라고 말했고요. 그래서 계엄군들이 다시 깨고 들어왔던 그 유리창으로 나가게 돼요.
다시 정현관 쪽으로 갔더니 제 예상보다 훨씬 많은 군인이 그곳에 있었어요. 어떤 분이 한 사람을 지목하면서 그 사람이 지휘관인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한테 다가가서 똑같이 이야기했어요. 비상계엄 해제됐으니 철수 안 하면 위법이라고. 망설이면서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도 “당신들 여기 있는 건 위법이다. 빨리 나가라” 반복해서 말하니까 한 발씩 뒤로 물러나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계엄군이 물러났죠. 본관 후면 안내실 쪽으로 갔다가, 운동장 옆에 있는 국회 5문 쪽으로 갔다가, 마지막에는 그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정비해서 나가겠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내 아들과 나이가 비슷하겠구나’

당시 경찰 때문에 외곽 문은 전부 잠겨 있었고, 유일하게 국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곳이 어느 회전문이었어요. 사람이 한 명씩 나갈 수 있는 문이 있는데, 군인이 그 문으로 빠져나가는 속도가 더딘 거예요. 언제 그 많은 사람이 다 나가겠어요. 그래서 제가 옆문을 열어서 나갈 수 있게끔 했죠.
그때 처음으로 군인들과 얼굴을 마주쳤어요. 복면을 하고 눈에 고글을 쓰고 있고 복장이 다 비슷하니까 그 사람들의 신체적인 특징이나 나이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죠.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 친구들이 내 아들이나 내 조카 나이와 비슷하겠구나. 이 친구들의 마음이 어떨까’라고요.
이 군인들은 유사시 본인의 목숨을 내놓고 전투에 투입되는 사람들이잖아요. 작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헬기에 탔을 때는 ‘무슨 일이 터져서 작전에 투입되는구나. 과연 내가 다시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을 텐데. 막상 내려보니 국회에 와있고. 이게 뭐 하는 짓이냐는 생각을 그 친구들도 하지 않았을까 싶으면서 조금 안쓰럽더라고요. 그래서 나가는 군인들의 어깨를 두드려줬어요. 수고했다고 할 수도 없고, 고생했다고 할 수도 없으니 아무 말도 못 했죠. 안쓰러운 마음에 어깨를 두드려줬는데, 그 어깨가 거의 강철인 거예요. 가드를 댄 것 같은 느낌? 그런 친구들과 여기서 물리적으로 충돌을 일으켰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쳤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서 저희 순찰차로 국회를 한 바퀴 돌았어요. 국회 1문에 많은 시민이 국회를 지켜주시겠다고 와 계셨어요. 제가 정문 바리케이드 위로 올라가서 “지금 국회 안에 있는 군인들은 다 바깥으로 나갔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시민들이 “와~” 하면서 환호하시더라고요. 정말 든든했죠. 국회를 지키기 위해 멀리서 오신 그 많은 시민을 보니까 제가 하는 일에 자부심도 들고, 제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제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테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본회의장으로 돌아왔는데 의장님과 의원님들이 모두 본회의장에 그대로 계셨어요. 3시가 됐는데 정부에서 계엄 해제한다는 발표가 안 나오고, 아직 군인들이 국회에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불안한 마음이 서서히 조금 들기 시작했어요. 보니까 둔치 쪽 주차장으로 나갔던 군인이 아직 그곳에 있더라고요. 의장님이 한덕수 국무총리와 통화하시고 나서야 정회를 선포한 것으로 기억이 나요.
저희는 그때부터가 또 일이었어요. 일단 국회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몰랐잖아요. 본회의장 지키는 게 우선이었지, 국회 시설이나 바깥 상황이 어떤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우선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고요. 의장님 기자회견도 준비하고요. 12월7일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한번 부결되고, 12월14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시기까지 어떻게 지냈을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냈어요. 의장님도 국회에서 숙식하셨기 때문에 저도 옷 갈아입으러 나간 거 빼고는 국회에서 계속 지냈죠.
그날이 민주주의의 교과서로 남기를

12월14일에도 많은 시민이 국회 앞으로 모이셨어요. 의장님이 그날 의원회관 옥상에 올라가셔서 바깥을 내다보셨어요. 적어도 30만 많으면 100만 정도 모였대요. 그 모습을 의장님께서 보시고 본회의장으로 들어가셨고요. 저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으니 내심 걱정됐죠. 국민의힘 의원들이 참여할까 안 할까. 참여하면 가결될까 안 될까. 그런 것들이 예측 안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제 입장에서는 만약 (탄핵소추안이) 부결되면, 물리적인 시위가 일어날 수도 있는데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죠. 의장님이 회의에 들어가시기 전에 “만약 (탄핵소추안) 가결이 안 되는 경우 시민들이 국회 안으로 들어온다고 하면 정문을 열어야 할 수도 있다. 대비하고 준비하겠다”라고 말씀드렸고, 의장님도 그렇게 하자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다행히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어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죠. 이런 일이 다시 안 일어나기를 바라는 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거예요. 그렇지만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에요. 미래의 일이란 그렇죠. 하지만 작년 12월3일과 4일에 있었던 일이 역사에 제대로 기록된다면, 그 기록이 다음에 이런 일이 반복됐을 때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교과서가 되지 않을까요. 바라건대 2024년 12월3일과 12월4일이 정확하게 기술되고, 먼 미래 우리 후손들이 같은 일을 겪을 때 이를 교과서처럼 활용하면서 더 나은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획 최한솔·김세욱·이한울 PD/글 문준영 기자
더 자세한 내용은 〈시사IN〉제951호 종이책과 전자책, 뉴인 페이지(sisain.co.kr/newin)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문준영 기자 jun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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