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탈선 공작하면 1470만원 줄게”... 러 간첩, 특수요원 대신 알바 쓴다

우크라이나 비방 전단 부착 5달러(약 7300원), 감시 카메라 설치 300~400달러(약 44만~59만원), 열차 탈선 공작 1만달러(약 1470만원). 폴란드 검찰이 지난 2일 자국 내 파괴 공작과 간첩 활동을 조직한 혐의로 러시아 국적 미하일 미르고로드스키(28)를 궐석 기소하면서 조사된 ‘간첩 용역 가격표’의 내용이다.
폴란드 검찰은 미르고로드스키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지시로 폴란드에서 파괴 공작과 정탐·선전 조직을 이끌었다고 보고 있다. 그는 2023년부터 텔레그램 메신저로 공작원 30여 명을 모아 ▲공항·기차역·군사 시설 등 주요 인프라에 감시 장치 설치 ▲친러시아·반우크라이나·반나토 전단 배포 ▲사회 곳곳에서 물리적 폭력 행사, 방화 ▲2023년 열차 탈선 모의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한 범죄 자금 조달 등을 지휘한 혐의를 받는다. 현재 폴란드 바깥으로 도주한 미르고로드스키는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수배 절차를 밟고 있다.
폴란드 국가안보부(ABW)에 따르면, 러시아는 방화나 주요 시설 파괴, 간첩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과거 정보기관에서 훈련된 간첩을 직접 투입하는 방식이 아닌, 현지인을 ‘용역 아르바이트’로 고용하는 방법을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른바 ‘쓰고 버리는’ 일회용(disposable) 간첩이다. 1인 총책은 텔레그램 등 소셜미디어 채팅으로 임무를 배당할 뿐, 실제 모습은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임무 수행이 지령에 따라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고 보상을 지급하는 과정 역시 ‘비대면 플랫폼’으로 진행됐다. ABW는 “간첩 조직은 암호화된 채널로 소통하며 완료 사항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전달했고, 수당은 암호 화폐로 지급했다”고 했다. 폴란드 검찰은 2023년 미르고로드스키의 지시를 받아 공작을 벌인 혐의로 16명을 체포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유럽 전역에서 러시아 소행으로 의심되는 방화, 시설 파괴, 유언비어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지난해 리투아니아의 한 이케아 매장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런던의 어느 창고에서도 불이 났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인근에선 ‘우크라이나에 파병된 프랑스 군인’이라고 적힌 실물 크기 관(棺) 5개가 발견돼 사회에 충격을 줬고, 폴란드 바르샤바의 대형 쇼핑 센터는 화재로 모두 불타기도 했다. 유럽의 군사력에 직접 타격을 주기보단, 사회 혼란을 조장하려는 목적이 크다는 분석이다.
영국 가디언은 “러시아가 정보 기관이 서방을 상대로 새로운 유형의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며 “현장에서 온라인으로 모집돼 암호화폐로 급여를 받는 사람들이 이런 행위를 저지른다”고 했다. 총책은 주로 소셜미디어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생활이 넉넉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접근한다. 이들에게 보상을 제시하며 전단이나 감시 카메라 부착 등 업무를 제안하면 생활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알바’를 수락한다는 것이다. ‘초보 알바생’을 위해 사제 폭탄 재료 조달 방법과 폭탄 제조법이 설명된 PDF 파일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 중 일부는 자신이 러시아의 간첩 공작에 동원됐다는 사실을 끝까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공작 임무가 완료되면 현지 총책은 폴란드의 미르고로드스키처럼 유유히 종적을 감추고, 모스크바 중앙 정보 기관의 책임자는 암호화 채널을 삭제하면서 꼬리를 자른다. 현장에서 검거되는 ‘용역 알바’는 자신에게 지령을 내린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기 때문에 유럽 당국과 정보 기관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유럽의 한 고위 안보 전문가는 “이런 종류의 공작은 우리 모두에게 광범위한 위험이 되고 있다”며 “오히려 외교관 신분을 가진 간첩이나 불법으로 체류하는 블랙 요원을 상대하는 것이 훨씬 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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