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삶을 묻다] 가장 낮은 곳이 가장 높은 곳 아닐까요?

이 세상에 온 존재자들은 다 고귀하다. 그가 하는 일을 어느 것이 높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높은 곳에 앉은 자들의, 부와 명예를 가진 자들의, 그것을 이루기 위해 오직 앞만 보고 가는 이들의 민낯을 봤을 때 보여지고 있는 것들을 재점검하게 된다.
재점검할 때 과연 어떤 것이 고귀하고 아름다운지에 대한 사유를 비로소 시작한다. 지시만 하고 책임이 없는 사람, 직책은 있는 데 오직 자신의 출세에만 관심이 있는 자들을 수없이 보게 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보여지는 것들의 화려한 가면을 벗기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본 모습일 것이다. 직책이, 권력이, 명예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는 초라한 극치의 본모습을 보게 된다.
이월춘 시인의 시 '염장이 강 씨'에서 염장이인 시적 화자는 '남이 안 하는 것 가장 하기 싫어하는 것을' 하고, '위를 보면 힘들지만 아래를 보면 견딜 만'하다고 한다.
인간은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생의 최종 마무리는 장례다. 장례를 치러줘야 제대로 이생을 떠난 것이다. 전쟁에서 적군에게 죽은 사람도 끝까지 추적해서 장례를 치러준다. 그것은 인간을 존엄하게 하는 제의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제의에서 필요한 사람이 있다. '염장이'다. 그러나 그 일을 하려는 이가 거의 없다.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고, 가장 고귀한 일을 하는 데도 특별한 명예는 없다. 화려하지도 않다.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면서, 가장 높은 곳에서 일해야 할, 인간의 죽음을 마무리하며 저승으로 보내는 작업을 한다.
그 작업 끝에는 '다 내려놓고 안녕히 가세요' 하며 술잔을 올린다. 비록 장례에 상주도 조문객도 없는 망자였지만 '평온한 얼굴로 가'신 모습을 보고, '본모습으로 돌아간 셈'이라고 시적 화자는 생각한다.
망자에게는 '염장이'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 외롭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역할이다. 시신을 정성을 다해서 염을 해줄 수 있는 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죽음도 다 같지는 않다. 코로나로 죽은 환자는 염하는 제의를 받지 못한다. 급하게 서둘러 화장한다. '가족도 못 보고, 유언도 없이 한 줌 재가' 된다. 애도 받지 못한 죽음도 있다.

염장이 강 씨
목욕시키고 갈아입혀 묶는 것을 염습이라고 하지요
코로나로 죽은 환자는 입은 옷 그대로
이중 비닐 팩으로 밀봉하고 입관해서 화장장으로 보내요
유족은 대개 격리 중이라 제가 대신하지요
심일장은 언감생심 세 시간 만에 화장해
영정도 위패도 없이 소독약만 잔뜩 뿌리고
애도 받지 못한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어요
어떤 이는 멀쩡하게 걸어 들어와 가족 얼굴도 못 보고
유언도 없이 한 줌 재가 되어 생이 마무리되었어요
남이 안 하는 것 가장 하기 싫어하는 것을 하지요
위를 보면 힘들지만 아래를 보면 견딜 만해요
죽음은 외면하고 혐오할 일이 아니지요
생졸生卒은 이어져 있어요 고독사와 무연고 망자는
상주와 조문객 없는 장례를 치를 때가 많지요
살아있을 때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지만
평온한 얼굴로 가시지요 본 모습으로 돌아간 셈이니
한 되 남짓 뼛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아갈 테니
다 내려놓고 안녕히 가세요 술잔 올리지요
-이월춘 시집 「바람 냄새 나는 사람」(2025, 시와시학)에서
Copyright © 경남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