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석탄 마을의 한숨 "깨끗한 공기 원했지만…먹고 살 문제 막막"

보령(충남)=권다희 기자 2025. 12. 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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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탈석탄, 선언에서 이행으로
<2>'탈석탄' 출발지 보령 발전소 폐쇄 5년…실질적 정부 지원은 '아직'
주민들 "처음엔 기대했지만 지금은 막막"
[편집자주] 한국 정부가 지난달 '탈석탄' 의지를 공표하며 국제사회에서 '기후 리더십'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실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은 미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에 대한 지원과 석탄을 대체할 에너지 기반을 만들기 위한 로드맵 구축이 더 구체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탈석탄 선언의 의미와 실질적 이행으로 이어지기 위한 과제를 짚어본다.

중부발전이 운영하는 보령 소재 석탄화력 발전소 전경/사진= 권다희 기자

"처음에는 발전소를 폐쇄하면 공기질도 나아지고 좋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닫으니 일자리가 줄잖아요. 먹고 살 방편이 없어지니 문제지요."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서 대를 이어 수산업을 해 온 이경우(63세)씨는 5년 전 인근 지역 석탄화력발전소 2기가 문을 닫은 뒤 하루가 다르게 활기가 사라지는 지역 사회를 보며 느낀 절박함을 토로했다. 지난달 28일 주민들을 만난 오천면 청년회 사무실에서 차로 5분 남짓 이동하자 한국전력의 발전자회사인 한국중부발전이 운영하는 석탄화력발전소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 중 보령화력 1호기·2호기는 2020년 12월 폐쇄됐고, 내년과 2027년 각각 5호기와 6호기가 문을 닫을 예정이다.

빨래도 못 하고 김장도 못하는 마을 "처음엔 폐쇄 환영했지만…"
오천면 주민들은 누구보다 석탄발전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받으며 살아 왔다. 이경우씨는 "이 동네 빨랫줄이 없죠? 석탄분진 때문이에요"라며 "배추에 까맣게 석탄분진이 쌓여 김장도 이 지역 배추로는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40년을 살아온 이 지역 주민들은 건강과 환경 측면에서 석탄발전소 폐쇄를 처음엔 반겼다.

그러나 지역경제가 발전소에 의존하고 있던 터라 마냥 환영할 수만도 없었다. 어패류, 김 등 해양자원이 풍부했던 이 지역은 한때 부유한 어촌이었다. 그러다 1979년 정부 계획에 의해 석탄발전소 착공이 시작됐다. 그렇게 국내 첫 유연탄 전소 발전소인 보령화력 1호와 2호가 각각 1983, 1984년 세워졌고 총 10호기의 석탄발전소가 보령에 들어섰다. 이후 지역 경제는 불가피하게 발전소에 의지하게 됐다. 발전소 건설 후 해수 온도가 높아지고 토양이 오염되면서 어업과 농업을 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주민 대부분이 대기오염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석탄발전소 폐지에 찬성(하단 그래프 참조)하면서도, 경제적인 난관은 해결책을 찾지 못한 상태다. 발전소 폐쇄가 이뤄지고 5년이 흐른 지금 '대안이 없다'는 막막함은 더 커졌다. 오천면에서 농업에 종사해 온 조은원(65세)는 "5·6호기를 당장 내년, 내후년에 폐쇄하면 일자리가 갑자기 사라진다"며 "청소, 경비 다 발전소에 의지하고 사는데 대안이 없으니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조은원씨는 "정부가 석탄발전소 폐쇄 후 어떻게든 해 줄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아직 이뤄진 게 없다"고도 했다.

보령시 주민 대상 설문조사(554명)/그래픽=김지영
인구 급감, 세수 감소…흔들리는 지자체
보령이 처한 현실은 수치로 고스란히 나타난다. 당장 발전소 직원들이 지역을 떠나면서 공동화가 현실이 됐다. 지난해 작성된 '보령시 에너지전환에 따른 산업·지역 연계 육성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보령화력 1·2호기 폐쇄 직후인 2021년 1822명의 인구가 줄며 같은 해 보령시 인구를 10만명 이하로 처음 끌어내렸다. 보령화력 1·2호기의 직·간접 고용인원 361명을 3인 가구 기준으로 계산하면 총 1083명, 즉 2021년 보령시 인구감소 인원의 상당 부분이 발전소 폐쇄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당장 오천면 소재 초등학교 학생수도 10여 명으로 줄었다.

지역 경제도 직격탄을 입었다. 보령시 지역내총생산(GRDP)은 2020년 4조1900억원에서 2021년 3조8520억원으로 8%(3380억원) 감소했다. '전기, 가스, 증기 및 공기조절업', 즉 발전 생산량이 1년새 4869억원 감소한 게 주 원인이다. 2021년 석탄발전과 관련한 세수 역시 전년대비 226억원 감소했다. 보령의 재정자립도도 충남 인근 지역 대비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체감하는 변화의 속도는 급격한데 반해 발전소 폐쇄가 대비할 수 있는 과제였다는 점은 주민들의 아쉬움을 배가시키는 대목이다. 통상 석탄발전소는 30~40년이면 노후화로 문을 닫는다. 1980년대 지어진 석탄발전소들은 2020년대 중반부터 순차적으로 수명이 끝난다. 정부는 향후 15년간 발전원 등을 어떻게 구성할 지 등의 계획을 2년마다 '전력수급 기본계획(전기본)'으로 발표하는데, 이미 2017년 나온 8차 전기본에 본격적인 탈석탄 계획이 담겼다. 보령화력 1·2호기는 미세먼지 문제로 애초 예정한 2025년 5월 보다 5년 앞당겨 폐쇄되긴 했으나, 기존 폐쇄 예정 시점이 지난 올해 말까지 정부는 대체 발전 계획 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보령시 지역내총생산(GRDP) 변화/그래픽=김지영
지자체 차원 대안 마련 동분서주…중앙정부 지원 없이 진척 안 돼

보령시 차원에서는 2021년부터 석탄발전소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전국 첫 공공주도 해상풍력 단지 설립을 위해 1.3기가와트(GW) 규모 입지를 마련했고, 블루수소(천연가스에서 탄소를 제거하고 추출한 수소) 생산기지와 연계한 수소발전소를 구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안도 짰다. 보령에는 SK이노베이션E&S의 LNG터미널과 중부발전이 석탄 운송에 쓰던 항만이 있는데, SK가 수입하는 LNG에서 추출한 블루수소를 중부발전의 발전원으로 쓰겠다는 계획이었다.

보령시는 기존시설을 활용하면 새로운 비용을 투입하지 않고 가동이 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수소발전을 계속 추진했다. 그러나 블루수소 및 수소발전에 대한 논쟁 속에 대안 없이 수년이 흘렀다. 해상풍력 역시 보령시가 자체적으로 입지를 선정했지만 복잡한 인허가 절차와 국방부 협의 등 지자체에서 해결이 어려운 문제들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으며 발전사업허가도 얻지 못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경우씨는 "발전소가 폐쇄되면 당연히 대체 발전소가 들어서고 그에 따른 일자리도 늘어나고 지역경제도 더 좋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이뤄진 게 없다"고 했다.

지자체 입장에서 무엇보다 아쉬운 건 중앙정부의 지원이다. 지역경제가 입는 타격은 발전소 폐쇄 시점부터 즉각적이지만 아직 지원을 위한 근거법 조차 국회에 계류 중이다. 문혜경 보령시 에너지과 그린에너지팀장은 "발전 공기업은 타지역으로 인력 재배치를 하면 되지만 협력기업들에서 일하는 지역 인재들은 바로 일자리가 사라진다"며 "특히 자녀가 있는 청장년층이 이 지역에 미래가 없다고 보고 떠나면서 지역경제와 인구가 즉각적인 타격을 입는다"고 했다. 또 문 팀장은 "에너지 정책은 하나를 이루기 위해 10년 이상이 걸리는만큼 석탄발전을 대신하기 위한 대안 마련과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길 바란다"고 했다.

보령(충남)=권다희 기자 dawn2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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