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36.5] 피아노와 다른 매력, 하프시코드는 내 음악의 동반자

주성희 기자 2025. 12. 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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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서 활동하는 피아노연주자 김미정
미국 유학 시절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하프시코드로 13일 창원 성산아트홀 독주회

※ [주파수 36.5]는 문화체육부 기자들이 36.5도 생기 가득한 지역민의 삶에 주파수를 맞추고 들어보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평소 접하기 힘든 건반 악기 하프시코드(Harpsichord)를 지역 연주자의 연주로 들을 기회가 생겼다. 창원에서 활동하는 피아노 연주자 김미정(39)은 13일 창원 성산아트홀 소극장에서 하프시코드 독주회를 연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스승이 쓰던 하프시코드를 최근 어렵게 들여왔고, 이날 관객에게 첫 선을 보인다.
김미정 피아노 연주자가 자신의 하프시코드를 보여주고 있다. /주성희 기자

피아노의 전신이라고 알려진 하프시코드는 내부에 잭이라는 기다란 장치에 아주 짧고 얇게 달린 플렉트럼이 현을 튕겨낸다. 그래서 피아노와는 엄연히 다른 악기다. 피아노는 해머라 불리는 장치가 현을 두드려서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프시코드는 플렉트럼이 현을 튕겨내서 소리를 내 전자음악처럼 들리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금속의 소리가 짙은 것이다.

피아노와 다르게 페달이 없어 울리는 소리가 없다. 피아노 연주자들은 힘을 줘 강하게 누르면 큰 소리를 내는데, 하프시코드는 건반을 누르는 시간에 따라서 강함과 여림을 표현할 수 있다. 김미정은 "한 번 반짝하고 사라지지만 청명하고 예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정교함, 정확성이 피아노 연주보다 높으며 논리적이고 지적인 소리"라고 설명했다.

16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성행하던 악기라 바로크 시대에 살았던 바흐, 헨델, 스카를라티는 하프시코드로 작곡했다. 악보에 명시된 음표 외에 트릴, 턴 같은 다양한 장식음과 즉흥 연주로 음악에 감정, 표현력을 더하게 돼 있다.

미국 박사 과정 때 하프시코드 매력에 빠져

손이 작으면서도 빠른 김미정은 미국 노던콜로라도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거칠 때 하프시코드의 매력에 빠졌다.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하프시코드를 직접 보고 소리를 들으며 색다름을 경험했다. 그리고 빠른 손으로 하프시코드 연주곡의 특징을 잘 잡아내서 연주할 수 있었고, 부전공으로 하프시코드를 선택했다.

김미정은 "박사학위 학업 압박이 있던 중에, 피아노와 비슷한 악기인 하프시코드로 실험하고 연구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윤이상, 백병동이 만든 음악 중에 하프시코드와 피아노 두 악기 모두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을 분석한 <Two Works by Isang Yun and Byungdong Paik for Harpsichord or Piano>(2017)란 논문으로 연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미국에서 하프시코드 독주회를 열었고, 여러 공연에 초청받아 하프시코드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고향인 마산으로 돌아온 후 피아노 연주자로서 정체성을 단단하게 하고 또 후학 양성에 전념했지만, 하프시코드에 대한 결핍이 남아있었다. 실제로 지역에서는 연주 기회는 커녕 연주를 들을 기회도 잘 없었다. 부산에 하프시코드가 있다고 했지만 매번 가서 연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 미국에 있던 그의 스승이 건강상 이유로 연주를 중단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남겨진 하프시코드를 자신이 받겠다고 나섰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포장부터 관세까지 복잡한 절차를 거쳐 지난해 여름 그의 집으로 들이게 됐다.

김미정은 "건조한 미국에 있다가 여름이 습한 우리나라에 오니까 팽창과 수축을 여러 번 하면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며 "악기가 이제는 한국에 잘 적응해 정확한 소리를 낸다"고 말했다.
김미정 피아노 연주자가 갖고 있는 하프시코드를 개방한 모습. /주성희 기자
김미정 피아노 연주자가 갖고 있는 하프시코드를 개방한 모습. /주성희 기자

그저 피아노가 좋아서 달려온 길

하프시코드의 한국 적응기와 김미정의 음악 여정은 사뭇 닮아있었다.

준프로급으로 드럼을 연주하던 아버지 덕분에 음악을 가까이 하던 김미정은 5세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했다. 막연하게 텔레비전 속 연주자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여서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초등학생 고학년쯤 피아노를 그만두게 됐는데 피아노가 잊히지 않았다. 중학생 1학년 때 막무가내로 피아노 콩쿠르에 지원해 심사받기도 했다.

마산여자고등학교를 다니던 그는 창신고등학교와 연합으로 만들어진 합창 동아리에 참여했는데, 반주를 하겠다고 자원했다. 이때 피아노를 항상 곁에 두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피아노 연주로 입시 방향을 완전히 틀게 됐다.

김미정은 "피아노 연주가 즐거워서 선택했지만 입시를 위해 공부하다 보니 작품을 대하는 방법, 연주 기술을 연마해야 했고 감정을 표현해야 했기에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며 "그럼에도 클래식 음악의 깊이가 계속해서 궁금해졌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대학을 수석 입학하고, 4년동안 장학생이었으며 졸업도 수석으로 했다. 그가 미국 유학을 결심한 것 역시 처음 피아노를 접할 때처럼 우연이었다.

석사과정 중에 독일 트로싱겐유라시아음악축제에 참가했다. 여행도 하고, 마스터클래스를 경험하고, 많은 연주를 보는 데 의의를 뒀는데 뜻하지 않게 우수연주자로 선발됐다. 그는 "우수연주자로 선발될 줄 몰랐기 때문에 의상이 없어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며 "석사과정 때 음악학을 전공해서 피아노 연주와 밀접하지 않았을 때인데도 우수연주자로 선발된 것이 자극이 됐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 피아노 연주로 입시를 결정했던 것처럼 그는 피아노 연주학을 공부하러 미국으로 향했다.
김미정 피아노 연주자가 자신의 하프시코드로 연주하고 있다. /주성희 기자

음악을 통해 지혜로운 삶을 가르치다

현재 창원을 중심으로 연주활동을 하며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김미정은 "이른바 '음악 영재' 절차를 밟지 않았고, 피아노 연주를 그만뒀다가 다시 하면서 힘들었던 경험들이 쌓이면서 현재 가르치는 학생들의 면면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학생들의 기술력, 감정 표현, 개인적인 문제들을 공감하고 관리하는 선생님이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하프시코드, 피아노 연주와 교육으로 클래식 음악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싶다. 유학 당시 색다름을 전해줬던 하프시코드가 한국에서는 그가 가는 음악의 길에 동반자가 될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김미정은 "나의 연주와 교육으로 다른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뿌듯하다"며 "음악으로 사람을 다독이며,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삶은 '음악해서 뭐 먹고 살래'에 대한 해답을 찾는게 아닌,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라며 "음악은 무엇이 우리를 가치 있고 아름답게 만드는지, 또 어떤 이상향을 둘지 묻고 고민하게 한다"라고 가르친다. 이런 질문 속에서 음악과 예술의 가치가 높게 평가받고, 사랑받지 못했던 예술 분야가 오랫동안 유지됐던 이유를 찾아내고 있다.

그가 지역에서 하프시코드 독주회를 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미정은 "바로크 시대 음악이 화려하지 않아 대중들의 마음을 얻기가 힘들지 몰라도, 듣고자 하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16~17세기 유럽 귀족이 되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13일 오후 5시 창원 성산아트홀 소극장에서 열리는 김미정 하프시코드 독주회 포스터. /김미정

/주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