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중] 우원식 “12·3 비상계엄, 국민·국회가 막아낸 첫 사례...국회기록원에 전 과정을 남길 것”

MBC라디오 2025. 12. 3. 10:4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
- ‘민주화운동 기념일’ 지정, 필요한 일
- 헌법 전문 포함 방안도 논의해 볼 것
- 국회 민주주의 상징석 아래 타임캡슐 묻어
- 비상계엄 기록·100년 뒤 국회에 보내는 편지 봉인
- 국회, 계엄 해제권만 있고 승인권은 없어
- 국회의장 신병 노릴 것이라 직감
- 잡혔으면 2차 계엄까지 갔을 수도

■ 방송 : MBC 라디오 표준FM 95.9MHz <김종배의 시선집중>(07:05~08:30)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우원식 국회의장

“재석 190인 중 찬성 190인으로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 진행자 > 이 목소리의 주인공 우원식 국회의장을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의장님.

◎ 우원식 > 네, 안녕하세요.

◎ 진행자 > 지금 바바리를 입고 계시는데 지금 그 바바리가 1년 전 월담 할 때의 그 바바리 맞는 거죠?

◎ 우원식 > 네, 그렇습니다.

◎ 진행자 > 넥타이도 그대로고.

◎ 우원식 > 네, 넥타이 그대로입니다.

◎ 진행자 > 1년 딱 지난 지금 시점에서 소회가 어떠십니까? 그날을 생각하면.

◎ 우원식 > 그날은 사실 아주 평온한 날이었는데 그날 아주 일상적인 활동들을 하고 김장 담근 날이잖아요. 김장 먹느라고 아주 맛있게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는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만나서 만찬을 하고 그랬던 날인데 집에 들어와서 쉬려고 그러니까 비상계엄, 처음에 가짜뉴스라고 생각했죠. TV를 틀어서 보니까 진짜더라고요. 황당하게도 2024년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이라니, 38년 전에나 있었던 일인데. 그러고서 바로 생각나는 게 5.18 그 많은 희생 그게 생각이 나고. 그리고 지난 6개월 동안 대통령이 국회에 대해서 완전 무시했어요. 제가 몇 차례 얘기해서 더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국회를 협의의 대상이나 그렇게 보지 않고 아마도 그때 딱 느낀 게 아, 이거 하려고 그랬구나? 그러고 생각하니까 그 6개월이 제 손목만 보면 수갑 채우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완전 무시였죠. 그러고 나니까 6개월 준비했는데 위험한데 큰일 났다. 내가 얼른 국회로 가야지 이미 그전에 비상계엄과 관련된 헌법, 국회법, 계엄법 이런 걸 봤거든요. 비상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 국회고 내가 국회의장이고 그러니까 빠른 속도로 나는 국회로 가야 된다. 그렇게 해서 국회로 달려오고 문이 막혀 있어서 문 막혀 있으면 안 되면 담 넘어가는 게 보통 하는 일이니까요.

◎ 진행자 > 전 세계 국회의장 중에 담 넘어간 의장은 의장님이 처음 아닐까요?

◎ 우원식 > 그랬을 것 같아요. 좀 슬프더라고요.

◎ 진행자 > 그래서 의장님이 책을 내셨는데 책 제목이 <넘고 넘어>, 책 표지가 바로 월담하는 그 사진을 실으셨어요. 바로 이 바바리코트.

◎ 우원식 > 네, 그 코트가 이 코트입니다. 제가 30년 전부터 입던 옷인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옷이거든요.

◎ 진행자 > 30년 된 옷이에요?

◎ 우원식 > 네.

◎ 진행자 > 관리 잘하셨네.

◎ 우원식 > 중간에 노숙자한테 잡혀서 찢어진 데도 있고 옆에 다 닳고 그랬습니다.

◎ 진행자 > 그래요. 일단 이 책 수익금을 특별한 데 쓰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우원식 > 그 책은 독립유공자들 기념사업회나 독립운동하는 데나 수익금이 생기면 전액 거기로 보낼 생각입니다.

◎ 진행자 > 그러십니까? 여기서 책 제목이 <넘고 넘어>가 담도 넘고 내란도 넘고 이런 뜻으로 이해를 하면 되는 거죠?

◎ 우원식 > 그렇죠. 혼자 넘은 게 아니고 그날 많은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었고 또 많은 국민들이 비상계엄이라고 하는 엄청나게 높은 담, 혹시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위협의 담, 이걸 그날 그냥 넘어버렸잖아요.

◎ 진행자 > 그렇죠.

◎ 우원식 > 그래서 위기 때마다 위기를 넘어서는 우리 국민들 또 그날 12.3 비상계엄 때 막힌 담을 넘어온 국회의원들, 이렇게 했듯이 앞으로도 우리에게 부닥쳐 오는 그런 위기에 대해서는 국민들과 함께 담을 넘자 그런 뜻이 담겨 있죠.

◎ 진행자 > 조금 전에 들어왔던 소식에 따르면 추경호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이 됐습니다. 기각 결정에 대한 평가는 의장님이시니까 여쭤보지 않겠고 다만 그날 12월 3일 계엄해제 표결을 할 때 의장으로서 여당 원내대표하고 소통을 하셨을 거 아닙니까?

◎ 우원식 > 네, 당연히 했죠.

◎ 진행자 > 통화는 됐었습니까?

◎ 우원식 > 그럼요. 두 번 통화됐고요. 회의시간 잡는 게 일방적으로 잡는 게 아니고 교섭단체하고 협의해서 잡아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와서 12시 20분쯤 들어와서 처음 통과된 게 절차를 시작해야 되니까 절차 시작하기가 사실 굉장히 어려웠어요.
뭐였냐면 계엄한 쪽에서 계엄을 국회로 통고해야 됩니다. 통고한 그 계엄안이 안건이에요. 그 안건을 가지고 본회의를 소집해서 안건이 적법한지 아닌지를 심의하는 건데 통보를 보내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안건이 없는 거잖아요. 그거 가지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안건이 없으니까 못한다. 본회의를 못한다. 무슨 소리냐. 지금 비상계엄이 발동됐고 계엄군이 국회로 쳐들어와서 민주주의를 침탈하기 시작했는데 즉시 해야지, 그런 논의를 하다가 결론은 이것은 국회의장의 본회의장 안에서 의사정리권에 해당한다. 그래서 제가 들어가서 2시간이 다 되도록 지체 없이 통보해야 되는데 2시간이 다 되도록 통보하지 않은 것은 계엄한 쪽의 귀책사유다. 그러니 우리는 절차를 시작한다. 이러고 절차를 시작했는데 시작하면 처음에 해야 될 게 본회의 회의시간을 정하는 겁니다.

◎ 진행자 > 그렇죠.

◎ 우원식 > 회의 시간을 정하려면 교섭단체와 협의를 해야 돼요. 그걸 위해서 12시 28분에 추경호 전 원내대표하고 통화를 했어요.

◎ 진행자 > 뭐라고 하던가요? 그때는.

◎ 우원식 > 제가 그때는 1시간 준다고 그랬어요. 보통은 4시간 주는 겁니다. 부산이나 목포에 있는 의원들이 올라올 시간을 줘야 돼요. 비상인데 그렇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1시간 준다 그랬더니 시간을 더 달라고 의원들 모이는 시간을 좀 더 줘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건 지금 비상이어서 안 된다 그러고서 제가 안 된다고 끊었죠. 그러고 33분, 5분 후에 유리창을 깨고 계엄군들이 본청 안으로 들어왔어요. 그 얘기를 듣고 다시 추경호 전 원내대표한테 전화를 했는데 처음엔 통화를 안 듣고 그러고 막 본청 안이 시끄러워서 전화 온 걸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보니까 전화가 와 있더라고요.

◎ 진행자 > 추경호 전 원내대표한테?

◎ 우원식 > 네, 다시 통화한 게 38분에 통화가 됐어요. 사정이 변경됐다.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본청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더 상황이 급박해져서 30분 당긴다. 그게 38분부터 한 2분쯤 통화했는데 그렇게 얘기하니까 안 된다. 의원들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고 국회 정문이 막혀 있기 때문에 정문을 열어 달라. 그래서 이미 두 차례 열었거든요. 우리가 사무총장하고 경호기획관이 나가서 난리를 쳐서. 그러고 난 다음에는 연락도 안 됐습니다. 경찰 쪽이.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못 한다. 그러니 여당인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경찰하고 협조를 구해서 문을 열고 들어와라. 그렇지 않으면 나도 담 넘어 들어왔다. 그렇게 얘기를 했죠. 그랬더니 시간을 좀 더 달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건 안 된다 그리고 1시로 시간을 정한 겁니다.

◎ 진행자 > 근데 조금 전에 박찬대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하고 인터뷰했는데 박찬대 당시 원내대표가 여러 차례 추경호 전 원내대표한테 전화를 했는데 일체 전화를 안 받았대요.

◎ 우원식 > 그 사정은 제가 잘 모르죠.

◎ 진행자 > 그래요. 근데 의장님 전화는 그렇게 받았네요.

◎ 우원식 > 제 전화를 안 받으면 아주 이상한 거죠. 그건 시간을 정해야 되는 협의 대상인데 그걸 안 받으면 몇 번 전화하다가 제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으니까요.

◎ 진행자 > 그래서 하여간 두 번 통화했는데 그때마다 늦춰달라라는 요구는 일관되게 계속 표결을 늦춰달라. 알겠습니다. 오늘 여러 가지 행사가 있는데 ‘12.3 다크투어’가 있습니다. 의장님이 해설자로 나서신다고요? 다크투어뿐만이 아니라 오늘 행사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전체 제목은 ‘빛의 민주주의 꺼지지 않는 기억’ 기억식입니다. 그래서 오전에는 국제적인 석학을 모셔다가 12.3 비상계엄이 세계 민주주의사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하는 학술 세미나를 할 거고요. 그리고 오후에는 외국에 나가 보면 중요한 건물에는 건물의 정신이 새겨져 있잖아. 국회에는 그런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그동안의 과정 이런 걸 다 생각해보면 국회 건물에다 이제는 국회의 정신을 새겨 넣어야 되겠다.

◎ 진행자 > 본청에?

◎ 우원식 > 네, 그래서 글을 만들어서 오늘 현판식을 합니다.

◎ 진행자 > 그렇습니까?

◎ 우원식 > 그렇게 하면서 국회의원들한테는 국회의원들이 당연히 국회로 들어와서 비상계엄 해제해야 되니까 감사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기억하자. 기억패를 담 넘어 들어와서 비상계엄 해제 의결했던 190명한테는 기억패를 주는 그런 일을 할 거고요. 그리고 다크투어를 하는데 다크투어는 비상계엄에 의해서 국회가 침탈당했던 장소, 결국 침탈을 뚫고 빛의 혁명을 이룬 역사인데 우선 기억은 오늘은 침탈당한 거잖아요. 12월 3일은 비상계엄의 날이고 12월 4일이 비상계엄을 해제시킨 날이고 그래서 오늘은 이 비상계엄 이 침탈한 장소, 또 거기에 우리의 국회 직원들 시민들이 싸웠던 장소, 그리고 그걸 해제시켰던 장소 이런 역사적인 장소, 유리창 깨고 들어온 장소,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비상계엄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건지 이걸 다시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게 하지 말자라고 하는 취지로 그런 투어를 할 생각입니다.

◎ 진행자 > 근데 국회 행사면 정당도 참여를 해야 되는데 국민의힘이 참여한답니까?

◎ 우원식 > 글쎄 참여하라고 그랬는데 모르죠.

◎ 진행자 > 올지 안 올지는 모릅니까?

◎ 우원식 > 네.

◎ 진행자 > 공식 초청까지는 이루어진 거죠.

◎ 우원식 > 그럼 다 얘기했죠.

◎ 진행자 > 만약에 안 오면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 겁니까?

◎ 우원식 > 국회의장으로서 그 해석까지야 제가 얘기하는 건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 진행자 > 그건 국민이 해석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탁현민 국회의장 행사기획자문관하고 인터뷰를 했는데 지금 의장님이 넘었던 그 담벼락이라도 헐고 하자 이렇게 했는데 어제 김민기 사무총장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 우원식 > 이번에 허는 데까지 가지는 않고요. 글쎄요. 제가 좀 고민이에요. 저는 국회의원 초선 때부터 국회 담장 허물자, 이런 주장을 했어요.

◎ 진행자 > 민의의 전당이니까

◎ 우원식 > 다른 나라 어디 나가 봐도 국회라고 하는 건 국민들 선출에 의해서 뽑혀진 사람들이 국민을 대신해서 일하는 곳이잖아요. 그 마당이 아주 좁습니다. 이걸 문을 개방을 해서 주장하고 싶은 사람들도 와서 주장도 하고 가족들이 와서 나들이도 하고. 사실은 그래서 제가 국회의장을 하면서 그런 행사를 많이 했어요. 지난 8월 14일에는, 제가 감기가 걸려서 목이 좀.

◎ 진행자 > 목이 좀 안 좋으시네요. 오늘 행사도 많은데 어떻게 해요.

◎ 우원식 > 8월 14일 저녁에는 광복절 전야제 3만 명 들어와서 축제도 했고 그 후에 가족들 캠프 하는 것도 했고요. 얼마 전에는 작은 음악회도 열기도 하고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하고 있어서 국회 마당을 국민들한테 돌려보자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래서 결국은 국회 담장을 허물어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데 잘될 수 있을지 그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 진행자 > 근데 그날 밤에 의장님도 혹시 계엄군 침탈에 대비해서 여기 저기 옮겨다니시고 막 이러셨어요? 그날.

◎ 우원식 > 그렇죠. 우선은 담 넘어서 의장실에 들어가서 회의를 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절차를 어떻게 개시할 건지, 아까 얘기했던 통고가 오지 않았는데 이걸 안건으로 시작할 수 있는가. 또 안건은 법안으로 할 거냐 결의안으로 할 거냐 그게 고민이었어요. 법안으로 하면 법적 효력은 갖는데 국무회의를 통과해야 되잖아요. 국무회의 통과될 가능성이 없잖아요.

◎ 진행자 > 공포 절차가 있어야 되니까.

◎ 우원식 > 결의안으로 하면 국회에서 통과는 되는데 법적 효력은 없어요. 그 어느 걸로 해야 되나 고민했는데 그때 정명호 우리 의사국장이 ‘사례가 있습니다. 1964년 6.3 사태 때 그때 비상계엄을 발동을 했고 다 진압을 하고 난 다음에 7월 24일 여야가 합의해서 비상계엄 해제결의안을 냈습니다. 그걸 통과해서 해제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럼 그것대로 하자’ 그래서 결의안이 됐죠. 그런 논의를 하는 절차가 있었고 그리고 바로 기자회견을 했어요.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국회가 비상계엄을 헌법과 법률의 절차에 따라서 처리합니다. 국회를 지켜봐 주십시오. 국회의원들은 즉각 본회의장으로 모여 주십시오. 군경은 동요하지 말고 자기 자리를 지켜주십시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그러고 나니까 제 위치가 노출됐잖아요. 그래서 5층으로 숨었습니다.

◎ 진행자 > 5층에 뭐가 있었는데요?

◎ 우원식 > 5층은 6층 7층으로 가면 본회의장하고 너무 멀고 제 사무실이 3층이니까 4층은 위험하고 그래서 가장 가까이 본회의장으로 가기 쉬운 5층 쯤으로 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 진행자 > 여차하면 바로 본회의장으로 가게.

◎ 우원식 > 네, 거기가 농해수위 전문위원실이에요. 제가 거기 들어갔고 불을 켜고 앉으니까 경호대장이 제 방 앞에 서서 거기 서가지고 서울의 봄 김오랑 생각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저희 직원들은 제가 불 켜고 앉아 있으니까 국회 전체 방에 불을 켜러 다녔어요. 저를 감춘다고.

◎ 진행자 > 그렇죠. 여기만 켜져 있으면 딱 노출이 되니까.

◎ 우원식 > 그래서 그날 밤 국회가 환하게 밝았던 이유가 저를 감추느라고 켠 불 때문에 그랬는데 그게 민주주의를 지키는 불이었고 비상계엄의 어둠을 뚫는 그 빛이었습니다.

◎ 진행자 > 근데 그때 본청에 들어왔던 계엄군이 5층까지 올라오지 않았었나요? 그날.

◎ 우원식 > 올라왔는데 제 방을 못 찾은 거죠.

◎ 진행자 > 그래요. 이렇게 싹 비껴갔던 겁니까?

◎ 우원식 > 그건 잘 모르겠어요.

◎ 진행자 > 체포명단에 의장님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12월 6일에 아셨을 거 아닙니까? 홍장원 전 1차장이 공개를 하면서 그때 어떤 생각 드셨어요?

◎ 우원식 > 저는 당연히 체포명단에 들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 진행자 > 왜요?

◎ 우원식 > 국회의장을 막아야 국회의장을 잡아야 본회의를 못 열잖아요.

◎ 진행자 > 그런 면에서.

◎ 우원식 > 우리 헌법 77조가 비상계엄의 요건이 있어요. 전시 사변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 그렇게 돼 있는데 77조 5항에 보면 ‘국회 과반에 의해서 해제를 할 수 있다’ 이렇게 돼 있거든요. 승인권이 없어요. 승인받게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게 적법한 비상계엄인지 아닌지. 승인권이 없으니까 비상계엄을 하려면 해제를 못하게만 하면 비상계엄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게 국회의장 잡으면 해제를 못하니까 그래서 저를 잡으러 올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근데 막상 명단에 있었고 영현백 뭐 이런 얘기 나오고 하니까 참 끔찍하다.

◎ 진행자 > 그러니까요. 모골이 송연해진다는 그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 우원식 > 그때 들어갈 때 죽을 각오를 하고 들어간 거니까 꼭 그럴 것도 아닌데 굉장히 기분 나빴습니다.

◎ 진행자 > 계엄 해제 의결이 된 다음에 의장 공관에 공수부대원들이 계속 있었잖아요. 이걸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받아들이셨어요?

◎ 우원식 > 제가 계엄 해제하고 공관을 들어가면 잡아가려고 그랬던 거죠.

◎ 진행자 > 2차 계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하나의 방증이 되는 거죠?

◎ 우원식 > 그렇죠. 2차 계엄, 제가 들어가다가 잡혔으면 그러면 국무회의 의결도 좀 더 빨랐을 수도 있어요. 빨리 해제하고 바로 2차 계엄. 그다음에 막을 방법이 없으니까.

◎ 진행자 > 그렇네요. 의장님의 신변이 엄청 중요했었네요. 그렇네요. 진짜로.

◎ 우원식 > 그랬을 거라고 봅니다. 근데 제가 안 들어갔죠. 우리가 그런 일,

◎ 진행자 > 그때 국회에 며칠이나 머무셨죠? 계속 국회에 계셨죠.

◎ 우원식 > 한 일주일? 2차 비상계엄의 위험이 없어질 때까지.

◎ 진행자 > 계엄해제 의결을 할 때 어제 김민기 사무총장도 말씀 주셨는데 의장님한테 쌍욕을 했던 의원들이 몇 명 있다고 혹시 신원 파악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 우원식 > 물론 신원 파악했는데요.

◎ 진행자 > (웃음) 어떻게 레이저 눈빛 한 번 안 쏘셨습니까?

◎ 우원식 > 그때는 그런 정도 욕해야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 아니겠어요?

◎ 진행자 > 그냥 통 크게 이해하고 넘어가시는 겁니까?

◎ 우원식 > 그럼요. 빨리 해서 비상계엄 해제하고 그리고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된다고 하는 절박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 진행자 > 물론 그렇죠.

◎ 우원식 > 저를 온전히 믿었어도 되는데 저한테 못 믿는 마음이 좀 있었던 모양이죠.

◎ 진행자 > 어제 김민기 사무총장은 사과해야 된다고 얘기하던데요, 그분들이.

◎ 우원식 > 저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또한 표현이었겠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내란특검 수사가 진행이 되고 있고 또 재판도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근데 그건 사법적 절차고 정치적 절차라는 건 따로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것과는 별도로 내란의 진상을 다 조사를 해서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진상규명을 목적으로 해서 기록으로 남기고 그 기록을 국가기록으로 공식적으로 채택하는 절차가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 우원식 > 당연히 해야죠. 이번 사태를 기록으로 잘 남기는 일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 진행자 > 그렇죠.

◎ 우원식 > 그동안 기록으로 잘 남기기가 어려웠거든요. 비상계엄이 성공했잖아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투옥되고 다치고

◎ 진행자 > 5.16, 12.12 말씀하시는 거죠?

◎ 우원식 > 그렇죠. 말도 못하는 시기를 한참 거치고 그 얘기만 하면 구속되고, 저도 1981년 5월에 1980년 광주 이야기하다 구속됐거든요. 그래서 기록을 남길 수가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비상계엄하고 2시간 반 만에 국민이 국회를 지키고 국회의원이 빠른 속도로 국회로 모여서 국회에서 의결로 의사봉을 두들겨서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했단 말이에요. 그리고 그 이후의 과정들이 다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 이 과정을 제대로 잘 정리해서 그것을 후대에 남겨야 됩니다.

◎ 진행자 > 그 주체는 국회가 되는 겁니까, 정부가 되는 겁니까?

◎ 우원식 > 국회가 우선 남겨야죠.

◎ 진행자 > 국회가 먼저.

◎ 우원식 > 국회도 이번에 국회기록원을 만듭니다.

◎ 진행자 > 아, 그래요?

◎ 우원식 > 제가 처음부터 국회의장 되자마자 추진했던 일인데 국회에 중요한 기록들이 굉장히 많고 300명 한 명 한 명이 다 헌법기관들이고 일상적인 활동 토론회 기자회견 굉장히 중요한 게 많은데 다 없어지거든요. 그런 걸 기록으로 다 남기자. 그리고 후대에 그런 기록이 넘어가져야 그때 무슨 고민을 했는지 그게 다 나오지 않겠냐. 근데 이번 비상계엄을 치르는 과정, 그 이후에 국회에서 진행된 과정 이거 다 남겨야죠.

◎ 진행자 > 그렇죠.

◎ 우원식 > 결국 그것을 국가 기록으로 잘 보존해야 됩니다. 처음 밝히는 겁니다만 이번에 민주주의 상징석 세웠잖아요. 그 밑에다 타임캡슐을 심었습니다. 100년 후에 열어보라고.

◎ 진행자 > 뭐가 담겨 있는 겁니까?

◎ 우원식 > 그 안에 지금 국회에서 쓰는 일상적인 물품들도 담겨져 있고 또 이번 비상계엄에 관련된 사진 기록들도 담겨져 있고 저, 그리고 각 당 원내대표들이 쓴 편지, 100년 후 의장과 원내대표들에게 보낼 편지, 이런 것들도 담겨져 있습니다. 거기에 일단 기록이 들어가 있습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지금 민주당은 ‘12월 3일을 민주화운동 기념일로 지정하자’ 이런 얘기를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우원식 > 저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보통날이 아니거든요. 지금까지는 비상계엄을 당하고 정말 오랜 기간을 거쳐서 민주주의를 회복했는데, 이날은 비상계엄, 계엄군 그야말로 확 밀고 들어왔는데 그걸 그날 국회에서 국민과 함께 국회가 해제했단 말이죠. 이 얘기는 다시는 우리나라에서 비상계엄을 할 그런 무식하다고 할까? 함부로라고 할까? 그런 사람 나오기 어렵습니다.

◎ 진행자 >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드릴게요. 개헌 얘기가 또 언젠가는 불붙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개헌은 두 가지 하나는 아까 계엄승인 그다음에 해제 과정에 약간 빈틈이 있다는 말씀 주셨으니까 그에 대한 보완 그게 하나의 과제고, 헌법전문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이나 6.10 민주항쟁 정신을 담자는 얘기가 있었는데 혹시 거기에 12.3도 포함이 될 수 있는 건지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의장으로서.

◎ 우원식 > 12.3은 생각해 보지는 못했고요.

◎ 진행자 > 헌법전문에 담는 건.

◎ 우원식 > 논의를 해봐야죠. 단지 헌법전문에 5.18을 넣고 부산 민주항쟁을 넣자는 이유는 이번에 우리가 12.3 때 비상계엄을 막을 수 있었단 말이에요. 국민이 나서고. 사실 굉장히 무서운 일이거든요.

◎ 진행자 > 그럼요.

◎ 우원식 >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는 일인데 국회로 확들 달려왔어요. 이 이유는 뭐냐 하면 12.12 군사 쿠데타, 5.18 이때 굉장히 많은 피해가 있어서 다시 그런 피해를 겪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있고 또 하나는 그때 군사쿠데타, 비상계엄을 일으킨 자들이 결국 처벌당했거든요. 역사는 승리한다는 게 확실해졌기 때문에 그때 과거에 있었던 일이 현재를 살린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다시는 이런 비상계엄과 같이 민주주의 질서를 쓰러뜨리려고 하는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헌법전문에 반드시 넣어야 된다. 12.3 비상계엄에 관해서는 좀 더 논의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들어야 될 것 같네요. 오늘 행사가 많은 것 같은데 목이 안 좋으셔서 관리 잘하시기 바라고요.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장님.

◎ 우원식 > 네.

◎ 진행자 > 우원식 국회의장과 함께했습니다.

[내용 인용 시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Copyright © MBC&iMBC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학습 포함)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