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중] 박찬대 “추경호, 내란의 밤 내 전화 안 받아. 계엄세력, 사면복권 불가 법에 못 박아야”

MBC라디오 2025. 12. 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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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추경호 구속영장 기각, 국민 시각에선 내란 종식 지연 중
-추경호, 12.3 밤 尹과 통화. 내 전화는 안 받아. 정떨어져
-24년 영수회담, 尹 헛소리 수준. 그 봄, 李 대표와 계엄 기시감 나눠
-이후 김민기 국회 사무총장과 계엄 대비 회의 여러 번
-내란의 밤, 급하게 담 넘다 창살에 다리 걸려 떨어져
-이재명 대표는 국회 모처 장소 바꿔가며 은신
-내란의 밤, 한동훈과 동병상련 느껴. 본회의장 들어오라 얘기
-서범수 당시 사무총장, 누군가에게 전화로 ‘빨리 들어오라’ 화내
-탄핵소추안 2차 표결, 표 확보하고 하자는 의견 다수. 국민 믿고 갔다
-계엄세력에 대한 관용-사면복권 없어야. 철저한 단죄 필요

■ 방송 : MBC 라디오 표준FM 95.9MHz <김종배의 시선집중>(07:05~08:30)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 진행자 > 12.3 내란을 온몸으로 막으면서 민주주의를 지켜냈던 주인공들을 만나오고 있는데요. 오늘은 이 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당시에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였던 박찬대 의원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박찬대 > 네, 박찬대입니다.

◎ 진행자 > 조금 전에 광고 나갈 때 ‘벌써 1년’이라고 했는데 진짜 벌써 1년이네요.

◎ 박찬대 > 예. 사실 어저께까지만 해도 방송에 나가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드렸는데요. 밤사이에 또 사건 사고를 보니까 안녕하시냐고 또 묻기에는.

◎ 진행자 > 그러면 그 질문부터 좀 드릴게요. 추경호 의원 구속영장 기각됐는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박찬대 > 어제 그 말씀 드렸어요. 국민의 시각으로 봤을 때 지금 내란 종식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법부가 독립성 얘기하고 신뢰성 얘기하고 있는데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고 있는 판단을 내린 것 아닌가 이 생각이 들고요. 특히 어제 영장전담판사, 사실 많은 분들이 우려하고 있지 않습니까? 수원지법에서 한꺼번에 옮겨왔던 중앙지법의 영장전담판사 세 분이 이 내란과 관련되어 있는 피의자들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지금 구속영장, 체포영장을 기각하고 있어요.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영장 기각했던 이정재 판사가 어제 또 추경호에 대한 기각을 했고요. 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구속 기각했던 정재욱 판사, 그다음에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구속에 대해서 기각을 했던 박정호 판사, 이례적인 인사조치를 통해서 수원지법에 있는 분이 한꺼번에, 그래서 처음에 제가 내란특별법을 낼 때만 해도 내란특별재판부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는데 최근에 법사위 소위에서 내란전담재판부뿐만이 아니라 영장전담판사도 별도로 만들어야 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늘 얘기하는 것이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인멸, 도주의 위험이 없다고 하는 일반적인 형사 사건의 법리를 자꾸 적용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민주 질서와 기반을 완전히 흔들어대고 있는 이 내란 사건에 대해서 이 논리를 계속 펴고 있는 것은 그것은 우리 내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기 위한 국민의 열망에 사법부가 조직적으로 사실 저항하고 있는 것 아닌가. 내란 극복을 위해서 아직도 국민의힘 지도부를 비롯해서 많은 사법부뿐만 아니라 제도적 저항이 아직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반증하지 않는가 생각이 되어서요, 더욱더 우리 민주 시민들과 함께 이런 의도를 저지하기 위해서 더욱더 뭉쳐야겠다.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를 하기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 진행자 > 추경호 의원은 의원님이 원내대표 역할을 수행할 때 카운터파트였잖아요.

◎ 박찬대 > 그랬죠.

◎ 진행자 > 그리고 12월 3일 계엄 해제 표결 들어가기 전에 여러 차례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안 받았다면서요?

◎ 박찬대 > 예, 전화를 제가 봐도 한 서너 차례. 제가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서 12시 반에 야당의원만으로 과반이 이를 때까지 한 1시간 반 정도가 경과 됐거든요. 그 사이에 제가 전화를 얼마나 많이 했겠어요.

◎ 진행자 > 근데 한 번도 안 받으셨어요?

◎ 박찬대 > 예, 한 번도 안 받으시더라고요.

◎ 진행자 > 그래요? 신호는 가는데?

◎ 박찬대 > 그렇죠. 일방적으로 피했던 것이죠. 물론 그 사이에 추경호 전 원내대표는 대통령하고도 통화하고 국무총리하고도 통화하고 여러 사람하고 통화하면서 계엄과 관련되어 있는 내용을 인지했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또 세 차례나 의총 장소를 변경해 가면서 결국 아무런 월동 준비도 하지 않고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내고 총칼을 맨몸으로 막아낸 시민들, 그리고 계엄군이 침탈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입법부, 사실 여당의 사령탑인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과연 면책될 수 있겠는가.

◎ 진행자 > 혹시 나중에라도 ‘그날 왜 그러셨어요?’라고 한번 물어보신 적 있으세요?

◎ 박찬대 > 사실 그 일이 있고 난 다음에 원내대표로서 우리가 그래도 한 7~8개월을 같이 협상파트너로 일을 했었는데 그 일이 있고 난 다음에는 사실은 정이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최근에 정무위에서 다시 만났어요. 이게 또 무슨 조우인가. 운영위의 파트너여서 정무위에서 다시 만났는데 사실 말을 건네기 심정적으로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 진행자 > 어떤 말씀인지 약간 이해는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알겠습니다. 다른 얘기로 넘어가겠는데요. 의원님이 지난해 이재명 당시 대표하고 처음으로 계엄을 언급한 게 봄이었다고 제가 들었어요. 지난해 봄? 이게 무슨 계기가 있었다고 그러는데 어떤 얘기입니까?

◎ 박찬대 > 제가 2024년 5월 3일 원내대표가 되었죠. 그리고 그 바로 직전에 4월 말에 대통령과 야당 대표 사이에 영수회담이 있지 않았습니까? 야당 전체 의석수가 192석에 이르고 여소야대가 심각하다 보니까 윤석열 입장에서는 영수회담이 필요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한 2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는데 거의 일방적인 대화였던 것 같아요.

◎ 진행자 > 일방적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혼자 다 얘기했다?

◎ 박찬대 > 네, 내용도 없고. 그래서 그 얘기에 대해서 조심스럽긴 했는데 나중에 파악한 바에 의하면 정치에 대한 어떤 의지도 없었던 것 같아요. 여소야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가 요구되어야 되는데 그런 게 아무것도 없었고.

◎ 진행자 >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라는 이런 제안도 없고?

◎ 박찬대 > 네. 거의 이런 말하기 국민 앞에 죄송하지만 거의 헛소리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120분 중에 110분 이상을 혼자 이야기를 했다고 해요. 이재명 대통령이 했던 말은 미리 준비해 갔던 원고를 가지고서 아주 냉정하게 얘기했던 부분 있지 않습니까? 그 이후에 이어졌던 대화는 거의 내용이 없었고요.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가 각종 개혁 법안들, 그다음에 김건희를 비롯한 측근들의 비리, 가족의 비리와 관련된 특검 법안들, 그리고 탄핵안들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어떤 정치적 고려도 없이 일방적이고 폭압적인 정치를 하는 것을 봤을 때 제가 조심스럽게 그렇게 말씀을 드렸어요. ‘이 사람들이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3년 뒤에 대선이 있을 텐데 민주적 절차를 지키겠느냐. 정권 유지와 비리를 덮기 위해서 모종의 수단, 아니 극단적인 수단을 쓸 가능성이 높은데 그것에 대해서 거의 확신이 오고 있다’ 이렇게 얘기했더니 대통령께서도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 진행자 > 그러면 윤석열 전 대통령한테 그걸 느꼈다는 얘기입니까?

◎ 박찬대 > 그렇죠. 합리적으로 유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요. 그때부터니까 12월 3일부터 거의 6개월 전부터 대통령과 저는 그것에 대한 마음의 대비가 되어 있었고요. 지금 특검을 통해서 발견된 것들을 보게 되면 아주 구체적으로 언급된 건 2024년 3월부터 있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총선 전부터 그게 있었고 2022년 말에도 ‘싹 쓸어버리겠다’라고 하는 얘기가 나왔던 것을 보면 윤석열은 2022년도 대통령에 취임하고 난 이후에 그해 말부터 비상대권으로 언급하면서 정치는 포기하고 결국은 가족, 김건희의 비리를 덮고 자기들의 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계엄에 대한 필요성을 가졌던 것이 나중에 발견된 것이죠.

◎ 진행자 > 영수회담 그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도 뭔가 좀 이상하다 이거 계엄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얘기인데, 혹시 비상대권의 ‘비’자라든지 계엄의 ‘계’자라든지 이런 것들이 나왔습니까? 아니면 그냥 그 느낌이었던 겁니까?

◎ 박찬대 > 그런 건 전혀 없었죠. 나 비상대권 할 거야 이렇게 얘기할 정도로

◎ 진행자 > 야당대표한테는 그런 얘기 안 하겠죠?

◎ 박찬대 > 예, 그랬죠. 근데 사실 기시감이라든가 합리적 예측은 있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말씀을 드렸을 때 거기에 대해서 공감하셨어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진행자 > 그럼 그 뒤부터 대비에 들어갔던 겁니까?

◎ 박찬대 > 사실 마음의 준비뿐만이 아니라 국회 사무총장이었던 김민기와 이 부분에 대해서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 진행자 > 그래요? 어제 저희가 모셨는데.

◎ 박찬대 > 그렇죠. 김민기 사무총장은 사실 국회의 살림과 보안, 행정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 아닙니까? 저는 국회의 운영위원장으로서 김민기 사무총장하고는 또 막역한 사이이다 보니까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계엄법에 대해서 개정의 필요성을 느낀다든가 막상 예기치 못했던 불행한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여러 번 대화를 나눴고 필요하다면 매뉴얼도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도 가졌는데 막상 12월 3일 그것이 탁 터지니까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사실 계엄해제 필요성에 대해서 진행하려면 누구를 해야 됩니까? 국회의장과 야당 교섭단체 대표인 제가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국회의장과 우리 당대표의 사실은 신변 동선 확인을 했죠.

◎ 진행자 > 그것까지 그러면 김민기 사무총장하고 같이 숙의를 하고 대비책도 세웠던 겁니까?

◎ 박찬대 > 여러 번 얘기를 했기 때문에 신속하게 계엄해제를 위한 준비는 우리 둘 사이에 마음속에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다만 그 날짜가 12월 3일인지는 우리가 예측은 할 수는 없었죠.

◎ 진행자 > 어제 김민기 사무총장이 저희 인터뷰에서 ‘염두 훈련’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염두 계획도 세우고 염두 훈련도 여러 번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의원님하고 상의도 많이 했던 거군요.

◎ 박찬대 > 저하고 여러 차례 했죠.

◎ 진행자 > 그래요?

◎ 박찬대 > 매뉴얼을 만들어볼까 까지도 생각했는데 그 매뉴얼을 만들면 이게 사실은 문서화되기 때문에

◎ 진행자 > 어제 그 얘기하더라고요.

◎ 박찬대 > 상대방에 대한 경계도 유발시킬 수 있어서 사실은 김민기와 저의 마음속에는 사무총장과 국회 운영위원장인 우리 둘 사이에는 여기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고요. 이건 우리뿐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10월부터 국정감사가 진행될 때는 우리 김민석 총리라든가 또 김병주 최고위원이라든가 부승찬 의원이라든가 이런 의원들에 의해서 사실 공식적인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질의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 진행자 > 그러면 어제 김민기 사무총장하고 인터뷰할 때 김민기 사무총장이 말씀해 주신 게 계엄선포 보고 국회로 의장실에 갔더니 김영진 의원이 와 있더라.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럼 혹시 김영진 의원도 일정하게 그 준비 내지 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정한 롤이 있었던 겁니까?

◎ 박찬대 > 김영진 의원은 개인적으로 김민기 총장하고는 워낙 가깝고 속을 터놓고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둘 사이에 얘기할 수 있는데 우리 셋이 같이 모여서 한 적은 없었고요. 김민기하고 나, 또 김민기하고 김영진 했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어요.

◎ 진행자 > 그래요.

◎ 박찬대 > 다만 저도 제일 먼저 국회로 달려가고 난 다음에는 사실은 대표의 안전성 확보하고 의장님의 동선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고 그리고 바로 국회의장실에서 김민기 총장과 함께 어떻게 대비할 건지를 준비하고 그러고 나서 의원들이 오는 것을 확인을 하고.

◎ 진행자 > 바로 그 지점인데 대표의 안전을 말씀 주셨는데, 이재명 당시 대표가 국회에 있는 게 맞느냐 아니면 피신을 시키는 게 맞느냐 고민을 하셨을 거 아닙니까?

◎ 박찬대 > 아닙니다. 국회에는 무조건 우리가 모이기로 했고요.

◎ 진행자 > 국회에는 있는데,

◎ 박찬대 > 제가 계엄 선포 터지고 나서 한 10여 분 있다가 ‘전 의원들 국회로 모여라’라고 얘기를 했고요. 그리고 제일 먼저 통화한 사람이 나한테 알려준 사람은 김용민 의원이었고 그다음에 바로 통화한 게 대표였죠. 국회로 모이자 의원들을 국회로 전부 소집해야 된다.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담을 넘었고요. 대통령도 담을 넘었고 국회의장도 담을 넘었죠.

◎ 진행자 > 그때 다치셨다면서요?

◎ 박찬대 > 아닙니다. 다 각각 행동을 했습니다. 몰려다니면 안 되기 때문에.

◎ 진행자 > 넘다가 좀 부상을 입으셨다면서요?

◎ 박찬대 > 다쳤다, 예. 엊그저께 한번 그 담장을 가봤더니 그렇게 높지 않은 담장이라 평소에 몸놀림이라면 아주 가볍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그때는 많이 당황했던 것 같아요.

◎ 진행자 > 그건 자기 합리화 아닐까요? 평소에 몸놀림을 말씀하신 것은.

◎ 박찬대 > 아닙니다. (웃음) 사실 그래서 나름대로 안전하게 국회 대문이 통제되기 전에 넘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그래서 제일 안전하게 생각했던 게 2문과 3문 사이에 국회경비대 건물 있는 데거든요. 등잔 밑이 어둡지 않습니까? 넘는 중에 경찰하고 대치가 되는 상황이 벌어져서 급하게 뛰어넘다가 창살에 다리가 다 걸려서 거꾸로 떨어졌어졌습니다.

◎ 진행자 > 얼굴부터?

◎ 박찬대 > 예, 얼굴부터 떨어지고 신발은 바깥으로 떨어지고 발톱도 빠지고 발가락은 다 쥐 뜯긴 그런 상태였는데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나중에 정회가 되고 거의 산회 되는 수준에서 그때 통증을 느꼈으니까 아마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그리고 풍전등화의 국가 위기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안 아팠다.

◎ 진행자 >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이재명 당시 대표의 그러면 신변 안전이 확보가 돼야 되는 거잖아요. 국회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하다 이렇게 판단을 하셨던 건가요?

◎ 박찬대 > 두 가지 목적이 같이 있었죠. 계엄이 해제가 의결되기 전에 본회의장에 같이 있다가 사실 먼저 계엄군이 들어올 수 있지 않습니까?

◎ 진행자 > 그렇죠.

◎ 박찬대 > 계엄군이 침탈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의결한다고 하는 가능성은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만 반대의 경우가 생길 때 그럴 때 대체할 수 없는 우리의 깃발인 당대표만큼은 보호해야 된다.

◎ 진행자 > 그렇죠. 그렇죠.

◎ 박찬대 > 그렇기 때문에 국회로 다 이미 넘어온 상태에서 국회의 모처에 사실은 장소를 바꿔가면서 은신을 했고요.

◎ 진행자 > 국회 경내 안에 은신 장소?

◎ 박찬대 > 그렇죠. 이미 대통령께서도 넘으셨고 저도 넘었고 의장도 넘었는데 의장도 동선을 보시게 되면 막 옮겨 다니세요. 의원회관에도 계셨다가 본관 5층에도 계셨다가 3층에도 계셨다가. 그래서 두 분 다 본회의장에 나타난 것은 딱 야당의원으로 과반이 되는 거의 시점이에요. 저는 11시부터 본회의장을 지켰는데 0시 30분, 계엄이 터지고 2시간쯤 됐을 때 야당의원이 한 150여 명 정도가 있었거든요. 그 바로 직전에 의장님도 본회의장으로 오셔서 개의를 준비하셨고요.

◎ 진행자 > 의결 성원이 될 때까지 이재명 당시 대표도 여기저기 옮겨 다니거나 은신하고 있었던 겁니까?

◎ 박찬대 > 그럼요. 한두 사람의 의원과 함께 사실은 국회 내의 내밀한 곳을 옮겨 다니고 있었죠. 그래서 저한테 전화 많이 왔어요. 몇 명이나 모였냐, 언제쯤 되면 과반이 차느냐, 사실 저도 답답하죠. 마냥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데.

◎ 진행자 > 이재명 당시 대표가 그렇게 전화를 많이 했어요?

◎ 박찬대 > 그렇죠.

◎ 진행자 > 어디였는데요? 근데 그곳이.

◎ 박찬대 > 다음에 또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 진행자 > 저도 그래서 그 질문을 드릴까 말까 했는데 다음에 그런 일이 또 벌어지면 안 되니까.

◎ 박찬대 > 처음에는 일부 다른 의원실에 있다가 나중에는 나와서 사실 우리 국회 내에 숲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숲이라든가 연못 근처라든가 지하 통로라든가 이런 데를 여러 번 옮겨 다니면서 은신해 계셨고 저하고는 국회 본회의장의 상황에 대해서 계속 통화를 나누었죠.

◎ 진행자 > 옆에 이른바 속칭 호위대들도 있었고요?

◎ 박찬대 > 호위대라기보다는 긴급하게 연락된 의원들하고 같이 있었죠.

◎ 진행자 > 그래요.
◎ 박찬대 > 그때 이해식 의원이 비서실장이셨기 때문에 같이 있었죠.

◎ 진행자 > 그렇게 된 거고.

◎ 박찬대 > 한준호 의원도 같이 계셨고.

◎ 진행자 > 그래서 표결 직전에 본회의장으로 가셨고.

◎ 박찬대 > 그렇죠. 이제 150명이 딱 차는 걸 보면서 빨리 들어오십시오. 그래서 12시 반 바로 직전에 대표께서 들어오셨는데 바로 중앙 통로로 들어올 때 그때 계엄군하고 막 스쳐 지나갔으니까 굉장히 아슬아슬했죠.

◎ 진행자 > 그러네요.

◎ 박찬대 > 그다음에 국회의장께서도 12시 반 근처 되셔서 입장하셨고.

◎ 진행자 >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 본회의장 들어오잖아요. 본회의장 들어오는 경위에 대해서 말이 약간 다른데 의원님이 들어오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 박찬대 > 그렇죠. 제가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한동훈 전 대표 의원은 아니었지만 국힘당 의원도 한 18명 정도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근데 저희는 그분들이 들어와는 있지만 100% 가결에 찬성할 거라고 하는 확신은 없었기 때문에 야당의원이 과반이 될 때까지 기다렸는데 그 시간이 0시 30분 정도였어요. 그 전에 로텐더홀하고 본회의장 사이에 휴게 공간이 있는데 거기에 국힘당 의원들과 한동훈 전 대표가 같이 있었는데 그쪽이나 우리나 초조하고 사실은 빨리 계엄이 해제돼야 된다고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동일한 동감을 갖고 있었죠. 하지만 계엄군이 침탈하고 로텐더홀 밖에서는 시민이라든가 당직자, 기자들과 함께 충돌이 벌어지고 유리창을 깨고 이런 상황이 있으니까 상당히 아마 불안했을 거예요.

◎ 진행자 > 그렇겠죠.

◎ 박찬대 > 특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내부 정보가 있을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 진행자 > 그렇죠. 그렇죠.

◎ 박찬대 > 사실 저는 당대표, 저, 국회의장은 기본적으로 체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서 담을 넘었는데 한동훈 전 대표도 나중에 보니까 체포명단에 이름이 있지 않았습니까? 만약에 내부정보가 있었다면 상당히 불안했을 거라고 생각이 됐고, 그 순간만큼은 약간의 동병상련을 느꼈죠. 안으로 들어오시라, 들어오시라 제가 그 얘기를 했고요. 그때 사무총장 서범수 의원 같은 경우에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서 빨리 국회로 소집하라고 막 화를 내는 그 장면을 우리가 여러 번 목격했는데 아마 상대방은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추측이 됩니다.

◎ 진행자 > 그래요?

◎ 박찬대 > 추경호 전 원내대표는 아까 주요 요인 3명과 통화도 했지만 아마 국힘당 의원들하고도 여러 번 통화했을 텐데 교섭의 파트너였던 저하고는 단 한 차례도 사실은 전화통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었죠.

◎ 진행자 > 그래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한테 들어오라고 손짓하거나 이런 게 CCTV 영상에 남아 있겠네요.

◎ 박찬대 > 그 안쪽에는 CCTV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휴게 공간에는. 근데 분명히 들어오시라고 같이 들어가자고 그래서 같이 들어갔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다른 발언을 한다고 하는 것은 기억이 다른 것이 아니라 저희 입장에서는 좀 황당하죠.

◎ 진행자 > 황당하다?

◎ 박찬대 > 그럼요.

◎ 진행자 > 12월 7일 1차 탄핵 표결이 성립이 안 됐잖아요. 그리고 일주일 뒤에 가서나 성립이 됐는데 그 과정도 참으로 지난했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원내대표로서는 마음을 엄청 졸였을 것 같은데.

◎ 박찬대 > 아니요. 저희는 가차 없이 탄핵안을 올려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12월 7일 108명의 의원들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소하면서도 사실 3명밖에 들어오지 못했잖아요.

◎ 진행자 > 그때 계획했던 겁니까, 그냥 즉석에서 호명해야겠다고 생각하셨던 겁니까?

◎ 박찬대 > 사실 여러 가지 안들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여러 가지 안들이 모여서 조합은 즉흥으로 일어났어요.

◎ 진행자 > 그래요?

◎ 박찬대 > 처음에는 이들이 다 빠진다고 하니까 못 나가게 몸으로 막자 이런 얘기도 있었고 피켓팅이나 샤우팅으로 망신을 주자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은 절절한 마음으로 호소하는 게 맞지 않겠냐. 기다리자, 또는 서 있자, 또 이름을 불러서 망신을 주자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나왔는데 그때 제가 사실 텅 비어 있고 안철수 의원 한 명만 앉아 있는 그 빈 좌석을 보면서 한 사람 한 사람 호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 진행자 > 그 순간에?

◎ 박찬대 > 네, 그때 그 명단 하나 가지고 들어가서 그 이름을 외쳤을 때 우리 의원들도 다 같이 일어나서 외쳤고 나중에 영상을 보니까 밖에 있는 시민들도 TV를 보면서 같이 외쳤어요.

◎ 진행자 > 맞아요.

◎ 박찬대 > 그렇지만 우리가 8명의 국힘당 의원의 표를 확보하지 못하고 했던 탄핵인데요. 사실 두 번째도 표를 확보했냐라고 하는 선배 의원들의 질책들이 많았습니다.

◎ 진행자 > 그때 그 목소리도 있었잖아요.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니냐 표 확보한 다음에 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그 주장도 좀 있었잖아요, 사실.

◎ 박찬대 > 그 주장이 많았죠. 하지만 저는 계엄을 막아내고 그리고 탄핵을 시켜야 되는 절차를 먼저 밟아야 되기 때문에 역사와 국민을 믿고 갈 수밖에 없다. 이 생각으로 8명의 확보는 없었지만 국민을 믿고 가자라고 했는데, 그다음 주에 한 200여만 명이 여의도에 모이지 않았습니까? 국회를 포위하고 국민의힘을 압박했죠. 결국 국민의힘 의원들이 국회로 들어와서 표결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고, 비밀투표를 통해서 12명 이상의 국힘당 의원이 가결표를 던지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때가 아니었으면 놓쳤을 거라고 봐요. 물론 12월 14일 안 돼도 21일, 21일이 안 돼도 28일, 저는 계속할 계획이 있었는데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12월 14일이었기 때문에 204표로 가결할 수밖에 없었다.

◎ 진행자 > 의원님의 정치 여정에서 그때가 가장 큰 기억과 사건으로 기록이 될 것 같은데 개인적 기록 말고 대한민국에서 12월 3일 그날은 어떻게 기록이 돼야 된다고 생각을 하세요?

◎ 박찬대 >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침탈될 수 있는 위기를 가지고 있구나. 근데 역시 그것을 극복하는 것도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서 극복이 된다는 생각이 들고요. 45년 만에 일어난 이 비상계엄, 이 내란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더욱더 촘촘한 우리 깨어 있는 국민의 조직된 힘이 역시 요구되고 있다. 이제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부분에 법과 제도를 분명하게 세워야 된다. 그리고 한 가지 우리 역사에서 아쉬웠던 점은 계엄 세력에 대한 관용이라든가 사면복권은 이제는 다시는 이루어지면 안 된다. 철저한 단죄,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는 부분이 필요하다.

◎ 진행자 > 사면복권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 박찬대 > 법으로 못 박아야죠.

◎ 진행자 > 법으로 못 박아야 된다. 그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내란 세력에 대한 사면복권 안 된다라고 법에 명시해야 된다?

◎ 박찬대 > 네, 그게 제가 7월에 발의했던 내란특별법의 내용 중에 하나가 ‘사면복권은 불가능하게 만들자’.

◎ 진행자 > 그래요.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선고되는 그 형량을 모두 채우도록 해야 된다 이런 것이고 그래서 그것이 사실은 하나의 본보기 삼아야 된다 이런 말씀이신 거잖아요.

◎ 박찬대 >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친일을 청산하지 못하다 보니까 아직도 여러 가지 갈등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극복하지 못하고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내란 사건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역사적 심판을 내려서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진행자 > 그러게요. 국회의 존재 이유를 유감없이 보여준 게 바로 12월 3일 그날 계엄해제 표결하는 그 과정이 아니었나, 그다음에 그 뒤에 진상규명하는 과정 아니었나 이런 생각도 개인적으로 한번 해봤고요. 고생 많이 하셨다는 말씀드리면서 오늘 인터뷰 마무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원님.

◎ 박찬대 > 네, 감사합니다.

◎ 진행자 >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했습니다.

[내용 인용 시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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